
비가 흩날리는 텍사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7번 홀 주변엔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은 갤러리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으레 들고 있어야 할 두툼한 텍사스식 바비큐 샌드위치 대신, 다소 낯선 음식을 들고서. 유용욱 셰프의 ‘김치 타코’는 비 오는 날의 습기를 뚫고 기분 좋은 매콤함을 피워 올린다. 갓 튀긴 치킨에 얹어진 크리미 소스는 흐린 하늘 아래서도 촉촉한 윤기를 잃지 않는다.
18번 홀 ‘두루미’ 부스 앞. 금발 머리 아이가 포테이토 치즈 콘도그를 덥석 베어 문다. 길게 늘어나는 모차렐라 치즈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 옆에서, 백발의 노부부는 바삭한 김치 나초를 안주 삼아 묵묵히 맥주를 넘긴다.

비를 피해 ‘HOUSE OF CJ’로 들어선 이들도 마찬가지다. 보랏빛 우베 도넛의 달콤함이 오틀리 콜드브루와 섞여 부드럽게 넘어간다. 누구도 이 낯선 메뉴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흩날리는 빗방울 속에서도 텍사스의 피크닉 풍경 위로 한국의 맛이 마찰 없이 스며들었다.

미국에서 골프 대회는 승패만 확인하고 일어서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온 가족이 잔디밭에 텐트나 의자를 펴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소풍에 가깝다. 갤러리들은 우산 아래서 비를 피하면서도 코스를 따라 이동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나눈다.
K푸드는 이 여유로운 시간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그저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 아니라, 궂은 날씨의 피로를 녹이고 하루의 포만감을 책임지는 든든한 ‘식단’이 됐다. 갤러리들이 잔디 위에 머무는 긴 시간은, 낯선 음식이 친숙하고 맛있는 기억으로 변하는 경험의 시간이 된다. 잔디 위에서 보내는 주말이 ‘K미식의 여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현지인들이 K푸드를 이토록 쉽게 받아들이는 비밀은 메뉴판에 숨어 있다. 타코, 나초, 콘도그, 도넛. 미국인이라면 눈 감고도 그 맛과 질감을 상상할 수 있는 친숙하고 대중적인 형태다. 그 안락한 뼈대 위에 김치의 매콤함이나 고추장 소스 같은 새로운 ‘K풍미’를 정성스레 채워 넣었다. 모양이 주는 익숙함으로 경계심을 허물고, 맛의 새로움으로 혀끝에 기분 좋은 자극을 남기는 식이다.

여기에 배즙을 넣은 ‘페어 페니실린’이나 쌀소주를 섞은 ‘라이스 소주 리키’ 같은 K칵테일이 곁들여진다. 늘 마시던 칵테일의 질감 속에 은은한 한국의 향을 숨겨 놓았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교차하며 궂은 날씨 속에서도 미식의 즐거움을 더한다.
갤러리들이 무심히 쥐고 있는 음료 컵과 입술에 닿는 빨대 역시 예사롭지 않다. CJ제일제당이 이번 대회에 맞춰 전격 도입한 생분해 소재(PHA) 친환경 용기들이다. 늘 마시던 칵테일의 질감 속에 은은한 한국의 향을 숨겨 놓았듯, 평범해 보이는 일회용 컵과 종이컵 안에도 자연으로 무해하게 돌아가는 친환경 기술을 이물감 없이 녹여냈다. 맛과 환경, 어느 쪽에서도 튀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궂은 날씨 속 맛의 즐거움을 더한다.

음식은 마음을 여는 가장 다정한 언어다. 화면 속 영상으로 문화를 엿보는 것이 안전한 거리에서의 관찰이라면 직접 씹고 삼키며 포만감을 나누는 과정은 낯선 문화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체화의 방식이다.
우연히 미각을 스친 기분 좋은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하물며 비 내리는 텍사스의 골프장, 축축한 잔디 위에서 맛본 따뜻한 포만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김치 타코의 매콤함과 치즈 콘도그의 짭짤함을 알아버린 이들에게 비비고나 두루미, TLJ는 이제 인스타그램에 과시할 만한 이국적인 해프닝이 아니다. 그저 궂은 날씨에 출출해서 사 먹었는데 꽤 입맛에 맞았던, 아주 납득할 만한 한 끼다.

한 번 혀끝을 통과한 맛있는 기억은 일상 속에 꽤나 실용적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며칠 뒤 크로거나 월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지나칠 때, 이들은 낯선 아시안 푸드 코너를 그냥 지나치는 대신 은근슬쩍 그 익숙해진 로고 앞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THE CJ CUP은 K푸드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텍사스 사람들의 평범한 장바구니 리스트에 새로운 선택지 하나를 조용히 밀어 넣었다. 아주 스무스하고, 꽤나 맛있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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