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를 비롯해 영국 런던 프라이트페스트, 일본 도쿄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며 주목받았다.
- 배우 정해인, 강하늘, 이청아, 유재명 등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 ‘아가미’는 오는 9월 9일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아가미> 리뷰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가 영화화되었다. 2025년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파과>를 떠올리면 얼핏 범상하게 들리는 소식이다.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장편영화는 드물지 않다. 질문의 범위를 조금 더 좁혀보자. 한국문학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이라면?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봄봄>, <소나기>, <무녀도> 등 5편의 단편 소설이 각각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바 있다.
그렇다면 장편 소설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사례는? <아가미>가 처음이다. 사실 이 문단에 언급된 애니메이션을 모두 만든 것은 단 한 사람, 안재훈 감독이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있다면, 가능하면 소설을 먼저 읽는 편이다. 소설을 읽고 내 인상과 감상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 비로소 영화를 본다.
감독은 기계적으로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기술자가 아니라 가장 능동적인 독자로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고, 작품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스크린에 펼쳐내는 예술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영화의 미덕은 내 기억과 기대를 충실하게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재해석, 배치, 의도적인 누락과 강조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데 있다. 더구나 <아가미>는 스크린에 보이는 모든 요소를 창조하는 애니메이션이니까.

소설과 애니메이션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간의 변화다. 2011년에 발행된 소설 <아가미>가 경기도 모처로 짐작되는 이내촌을 배경으로 삼는다면 애니메이션 <아가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즈넉한 마을을 오간다. 유럽 도시와 풍경을 배경으로, 한국식 상황이 펼쳐지고 인물들은 한국어 대사를 주고받는다. 얼핏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이 이미지들은 감독의 고뇌 끝에 나온 선택이다.

안재훈 감독은 ‘특정한 것을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원작의 공간과 지역 배경을 그대로 시각화 했을 때, ‘가난으로 꾸며진 공간’이 마치 장식처럼 인물을 방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자살, 폭력, 소외, 가족의 해체, 방임, 마약, 고립, 홍수, 죽음으로 이어지는 원작의 ‘숨 막히는 세계’ 가 오히려 <아가미>를 이곳이 아닌, 먼 곳의 이야기로 만든 셈이다.

문장의 묘사와 이미지의 재현 사이에서 안재훈 감독의 갈등과 선택이 드러나는 대목은 또 있다. 원작 소설에서 해류가 ‘불행을 전시하는 것 같다’고 읊조리던 대사를 영화는 ‘행복을 전시하는 것 같다’로 슬쩍 바꿔 놓았다. 진짜 고통스러운 사람은 쉽사리 제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해류의 통찰은 사라지고, 대신 타인의 행복을 폄하하고 시기하는 꼬인 속내만 남은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변화 덕분에 관객들은 스크린 위에서 취객의 난동이 아니라 카페 손님들의 웃음을 지켜보게 된다.
안재훈 감독은 원작의 정서와 느낌을 존중하고 충실하게 재현하되, 이미지가 관객들을 압도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하고, 노련한 암시와 압축을 통해 이를 표현한다.

<아가미>는 ‘현실에서 희생된 사람이 만약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는 구병모 작가의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물에 빠진 아이가 그 순간 살아남았다면. 이 판타지적 상상력이 아이에게 ‘아가미’를 달아주었다. 아가미는 물 속에서 곤을 살게 하지만, 땅 위에서는 눈에 보이는 상처가 되고, 차이가 되고, 감춰야 할 비밀이 되어 그를 고립시킨다.
안재훈 감독은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상징하는 아가미와 비늘을 표현하는데 각별히 공을 들였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좀처럼 떠올리지 못했던 구체적인 풍경들 – 깊고 고요한 물속의 어둠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구름과 눈동자 같은 이미지들을 스크린에서 만나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