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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만들기 전 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만든 테리 길리엄의 말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25년을 바친 그는 몇 번의 고배를 마신 뒤 가까스로 완성, 작년 칸 국제 영화제 폐막작으로 무사히 상영을 마쳤다. 그리고 오는 2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감독의 필생 프로젝트라 불리는 영화의 개봉에 앞서 꼭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정보를 소개한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노장이 되어버린 악동, 테리 길리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로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테리 길리엄(좌측에서 두 번째)과 배우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대학시절 정치학을 전공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20대는 폭력의 시대였다. 1960년대 LA 흑인 폭동, 베트남 전쟁은 감독 자신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결국 미국에서 영국으로 국적을 옮긴 그는 ‘몬티 파이튼’ 코미디 그룹에 합류한다. 1969년부터 이어졌던 ‘몬티 파이튼’ 코미디 쇼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노골적으로 소재 삼아 온갖 종류의 코미디 장르를 넘나드는, 말 그대로 하이퍼 코미디 쇼. 감독은 이곳에서 애니메이터로 시작해 배우로, 쇼를 영화로 만들어 연출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연출의 시작이 부조리 코미디극이었다는 점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에게 현실은 제정신으로는 이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폭력의 세계였다. 어쩌면 미친 듯 돌아가는 세계가 그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트리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대표작 <브라질> <12 몽키즈>(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브라질>(1985)은 이러한 감독의 세상을 향한 시선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주인공 샘(조나단 프라이스)이 커다란 날개를 달고 중세 기사가 되어 공주를 구하는 판타지에 빠진 순간 관객 모두 그와 함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또 다른 현실을 잠시나마 꿈꿀 수 있었다. <브라질>의 성공과 <12 몽키즈>(1995)를 통한 할리우드 입성을 거쳐 그는 곧바로 소설 ‘돈키호테’ 영화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서사와 캐릭터, 막대한 제작비는 장애물이었다. 간신히 제작비를 마련하면 배우가 병 들었고 배우가 의지를 내면 자연 재난이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그는 돈키호테처럼 포기하지 않고 돌진해 작품을 완성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원작의 힘! 세르반테스의 17세기 소설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을 열어젖힌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고, 수많은 작가들의 찬사 속에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사랑 받았던 건 이유는 중세와 근대를 연결 짓는 경계 선상에 놓여 있었고, 그 시절 마법과 모험, 사랑으로 가득한 기사도 문학을 통해 부조리한 종교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를 만끽했던 대중들의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인 층에 속했던 세르반테스는 이런 기사도 문학이 대중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생각했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했다. 기사 이야기에 심취해서 결국 본인을 편력기사인 돈키호테로 만든 알론소 키하노는 결국 세르반테스가 시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였던 셈. 소설 ‘돈키호테’가 나온 이후 돈키호테를 주인공을 한 아류작들이 쏟아졌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작가의 생각과 달리 소설 발표 후, 오히려 대중은 기사도 문학에 더욱 열광했다. 오히려 소설 ‘돈키호테’가 기사도 문학의 인기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어 돈키호테를 주인공을 한 여러 모험담들이 아류작으로 쏟아졌다. 세르반테스는 10년 뒤 후속작을 집필, 돈키호테가 환상에서 깨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을 썼다. 자신이 기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 알론소 키하노는 더 이상 삶의 의지를 갖지 못한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돈키호테로 만든 건 힘든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 좀 더 용기 내어 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결국 그를 영원히 돈키호테로 만들었고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돈키호테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곱씹도록 만들었다. 소설 ‘돈키호테’는 상상력이 비극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무엇이든 가능한 시공간으로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예찬한다. 거대한 풍차를 거인으로 인식하고 달려든 돈키호테의 무모함은 우리에게 (비)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현실 돌파의 힘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건 폭력으로 만연한 세상, 그래서 퇴폐 향락으로 빠지게 만드는 세상에서 벗어나 원작이 지닌 이상향을 다시금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극중 잘 나가는 CF 감독으로 활동하는 토비(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힘들게 만든 영화가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지니고 있을까? 글쎄, 비관적 태도를 취하기 십상이다. 영화 속 주인공 토비(아담 드라이버)도 마찬가지였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토비의 졸업 작품 제목이다. 이 영화로 현재 인정받는 CF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막상 작품에 열과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 열심히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 다는 듯한 자세로 말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과거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마주치면서 조금씩 현실의 냉혹함과 대면한다. 배우를 꿈꿨던 안젤리카(조아나 리베이로)는 사교장 파트너 일로 연명하고 있고, 돈키호테 역을 맡았던 하비에르(조나단 프라이스)는 영화 출연 후 자신이 돈키호테라 믿으며 환상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아담 드라이버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케미스트리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토비는 이런 현실의 이면을 하비에르의 세계 속에서 ‘산초 판사’의 입장에서 경험한다. 원작에서 산초가 돈키호테와 동행할 수 있었던 건 돈키호테가 약속한 부와 명예 때문이었다. 그는 돈키호테가 미쳐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순진함과 어리석음을 지닌 자였다. 또한 돈키호테와 현실 세계를 연결해주는 역할임과 동시에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이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이 토비를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로 만든 것은 바로 관객들도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환상의 세계 속에서 겪는 모험이 안겨주는 에너지를 동시에 지니길 바랐던 것. 결국 감독은 불가능으로 가득한 세상에 판타지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려는지도 모르겠다. 토비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돈키호테의 죽음을 마주한 소설 속 인물들과 많은 독자들이 품었던 꿈처럼 말이다. 토비는 정확히 10년 만에 자신의 초심을 잃고 현실의 불가능성 속에서 방탕한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25년 동안 영화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고집은 알론소가 스스로를 돈키호테로 만들었던 믿음과도 비교된다. 그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뤄냈다. “철의 시대에 잊혀진 기사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돈키호테의 선언은 곧 감독의 선언이자 우리의 선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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