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카메라’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51회 시애틀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작품이다.
- 영화 ‘미쓰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아역배우 김시아가 주인공 ‘여름’ 역을 맡아 청춘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 오는 6월 24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여름의 카메라> 리뷰

한국 퀴어 영화의 역사에서 변곡점이 있었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20년대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종로의 게이바가 등장했던 1995년 <내일로 흐르는 강>을 시작으로 트랜스젠더 남성을 카메라에 담은 <3xFTM>(2009)을 거쳐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소수자성을 주목한 <3670>(2025)까지, 한국의 퀴어 영화는 가시화의 길을 넘어 존재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시선을 향해 점차 나아가고 있다. <여름의 카메라>(2026)는 그 궤적 속에서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내가 아닌 관계에서 사유하려는 최근의 작품들과 결을 같이 한다.
게이 커뮤니티의 포용 가능성을 탐구한 <3670>,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의 우정을 그린 <대도시의 사랑법>(2025), 고령화 사회 속에서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역할을 희극으로 풀어낸 <이반리 장만옥>(2026)까지, 동시대 퀴어 영화는 더 이상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머물지 않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시선을 넘어 다양한 관계의 확장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여름의 카메라>는 일련의 퀴어 영화 흐름 속에서 혐오의 시선조차 과감히 걷어낸다. 대신 먼저 세상을 떠난 자를 애도함으로써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앞날을 고민한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여름(김시아)은 아버지의 유품인 카메라로 짝사랑하는 연우(유가은)를 찍는다. 연우에게 사진을 건네기 위해 현상을 맡기자 숨겨왔던 아버지의 사진들이 발견된다. 그 사진 속에 찍힌 한 앳된 남성의 얼굴. 여름은 그 남성을 찾아가 아버지의 과거와 조우한다.
아버지의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여정으로 그려질 법한 <여름의 카메라>는 손쉽게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며 다른 방향으로 서사를 선회한다. 아버지의 비밀이 미스테리 서사 구조의 핵심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여겨질 정도로 <여름의 카메라>의 서사는 애초에 그 모든 것들을 비밀로 감추지 않는다. 일반적인 퀴어 영화에서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이 반전 효과로 등장해왔던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여겨진다.
대신 <여름의 카메라>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연우를 짝사랑하는 여름의 감정이다. 그녀들의 관계가 어떻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자신의 성 정체성이 주변과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영화의 서사는 오직 성소수자로서 여름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름의 시선 또한 아버지의 그것과 굳이 중첩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대비되며 여름만의 시선이 두드러진다. 사랑하는 대상을 포커스조차 맞추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진과는 반대로 여름의 사진은 사랑하는 연우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녀의 일상을 사진 속에 오롯이 담아낸다.
아버지가 학창 시절 겪었던 동성애적 감정을 숨기고 감추었다면 여름은 오히려 드러내고 수용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히 반응한다. 아버지의 것이었던 카메라로 자신의 시선을 정확히 응시하는 태도가 카메라를 여름의 것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여름이 아버지의 짝사랑이었던 마루를 찾아간 것도 그 이후에 벌어지길 기대하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며 두 사람은 손쉽게 친구가 되고, 현재를 고민한다.
과거의 존재로서 마루는 아버지의 비밀을 밝히는 중요한 열쇠임에도 이미 오래전의 추억으로 남아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현재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를 마루가 대신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저버리며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유사 가족의 형태가 아닌 흡사 우정을 나누는 친구의 관계로 묘사한다.
이로써 <여름의 카메라>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 사건을 통해 아버지의 과거를 구원하는 영화임을 거부하고 아버지의 과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여름의 모습에 더욱 집중한다.
여름이 어머니와 절친인 민정이에게 커밍아웃하는 순간조차도 <여름의 카메라>는 어떤 극적인 드라마로 그려내지 않고 일상의 대화 속에 고백을 포함시켜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지 않는다.
성 정체성을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쉽게 드러낼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이러 한 <여름의 카메라>가 지닌 태도는 충분히 과감하고 도전적일 수 있다. 커밍아웃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영화 속 현실은 지극히 판타지로 다가오겠지만 그 판타지가 주는 대리 체험이 자신의 성체성을 긍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힘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여름의 카메라>는 고통 속에 머물 생각이 없다. 대신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이별까지도 성숙의 과정으로 포용하려는 긍정적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 태도가 자칫 영화로서 지녀야 할 극적 긴장감을 품지 못하는 한계로 내비쳐 질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여름의 카메라>가 지향하는 바는 관객들의 기대를 수용하고 이를 통해 영화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여름의 카메라>는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고민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들의 미래를 응원한다. 충분히 설득력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적 태도임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