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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몇 개의 단서가 있다. ‘감독의 또 다른 눈’, ‘기억과 기록의 소유자’, ‘컷과 컷의 연결고리’. 이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고민하다 셜록홈즈와 영화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 대만(권상우)의 추리력을 주입! 그 답이 ‘스크립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잠깐! 감독, 조감독 등은 알아도 스크립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그렇다면 최근 <탐정: 리턴즈>를 포함해 18년 동안 다수의 영화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한 이순혜 님의 이야기를 주목하시길.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연결고리를 하고 있는 스크립터의 세계는 가히 놀라웠다. 편집이 좋아 시작했다가 스크립터가 된 사연? 스크립터로서 잔뼈 굵은 이순혜 님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영화를 좋아서 이 일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순혜 스크립터는 다르다. 강원도 홍천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보단 TV 방송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다. 아예 직접 방송을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친구들끼리 기획부터 촬영, 편집, 송출까지 담당했던 것. 특히 촬영영상을 톤앤매너에 맞게 이어 붙이고 옮기며 완성본 만드는 편집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대학도 편집과에 들어갔다. 2000년 겨울, 대학 졸업을 앞둔 그에게 <잎새>(2001) 촬영팀원으로 현장 참여 기회가 열렸다. 편집은 아니었지만 현장을 경험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 그는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들고 뛰며 힘든 첫 스태프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버티기 힘든 곳이라 생각한 끝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때 스크립터 제안이 들어왔다. 솔깃했다. 촬영팀보다 일의 강도가 낮고 수월해 보였기에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하고 2002년 <굳세어라 금순아>를 통해 스크립터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때부터 새로운 고난이 시작되었다. 스크립터의 업무 영역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쉽게 생각했던 스크립터의 주요 업무를 살펴보면 크게 프리 프로덕션, 촬영 현장, 후반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프리 프로덕션에서는 시나리오를 포함한 각종 회의록, 콘티 정리, 디테일한 연출 변동 사항 체크 등을 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스크립지에 당일 촬영 씬의 기본 정보는 물론, 특이 사항, 앞뒤 씬과의 톤앤매너를 유지하기 위한 체크 포인트 등을 적는다. 마지막 후반작업에서는 정리된 스크립지와 콘티북을 갖고 편집 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개인의 의견을 덧붙인다. 최근 표준 계약으로 변경 된 후 스크립터 업무의 영역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감독의 조력자로 영화 전체를 봐야 하고 꼼꼼하게 체크하며, 마스터 필름이 완성될 때까지 많은 것을 관여해야 하는 업무의 본질은 변함없다. 처음부터 스크립터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한다는 걸 몰랐어요. 쉽지 않았죠. 하지만 포기보단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스크립터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스크립터에게 현장은 기록과 기억의 전쟁터? 월드컵 시즌에 개봉했음에도 315만 관객을 끌어 모은 <탐정: 리턴즈>의 대만과 태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크립터로 11번째 참여작인 <탐정: 리턴즈>는 셜록홈즈 덕후인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와 광역수사대 레전드 형사 노태수(성동일)가 탐정사무소를 개업하고 첫 의뢰인의 사건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코믹 범죄 추리극이다. 추리를 바탕으로 하는 수사극이지만, 주인공들의 코미디가 주를 이룬다. 마치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하듯 대만과 태수의 버라이어티한 말싸움, 여기에 보기만 해도 웃긴 여치(이광수)의 합류로 코미디의 강도가 세졌다. 추리와 코미디의 적절한 균형감을 보여준 이 작품은 월드컵 시즌에 개봉했음에도 약 315만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장르마다 스크립터의 기본 업무는 변함이 없지만 코미디 영화는 좀 다르다.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 감각에서 분출되는 애드리브가 어느 정도 허용되기 때문에 스크립터의 눈과 손은 바쁘다. 행동이나 대사가 조금씩 바뀌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기 때문에 컷마다 표시와 체크를 해둬야 한다. 그래야 편집을 할 때 감독에게 이를 인지시켜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립지와 콘티북에 빼곡히 적은 이순혜 스크립터의 체크 포인트 스크립터로서 이전 컷과 바로 다음 컷의 톤앤매너가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연결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촬영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상황에 맞게 배우들의 목소리 톤이나 의상, 소품, 세트, 동선 등이 일관 되야 한다. 이를 위해 이순혜 스크립터는 스크립지 보단 콘티북에 직접 메모나 표시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해당 씬을 떠올릴 수 있고, 감독 이하 스탭들에게 보다 빨리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편집 등 후반작업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에게 이번 작업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냐고 물었더니, 대만과 태수의 횟집 장면을 꼽는다. 극중 대만이 태수와 말싸움을 벌이며 먹고 있는 회를 뱉는 장면인데, 이건 다 권상우의 애드리브.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장면에서 ‘퉷’하고 뱉음으로써,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대만과 이에 미안함을 느끼는 태수의 관계를 재미있게 해준 요소라고. 리액션을 담당한 성동일 또한 매 컷마다 다양한 표정 연기로 코믹한 장면을 완성시켰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탐정: 리턴즈>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오류동 기찻길을 다시 찾은 이순혜 스크립터 이순혜 스크립터는 현장을 좋아한다. 필름 시절부터 몸에 베인 일의 방식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현장은 배움터이자 일에 기준을 확립시켜준 고마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굳세어라 금순아> 때는 스크립터의 역할을 정립했고, <신석기 블루스>는 인물과 씬의 원활한 연결 방법,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는 초단위 편집의 효과, 그리고 <대한이, 민국씨> <상의원>에서는 적극적인 의견 피력의 중요성 등 갖가지 노하우를 현장에 모두 익혔죠. 그만큼 현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언제 어디서나 질문공세가 펼쳐진다. 궁금한 게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바로 물어본다. 가끔 직설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아 스탭들의 당황지수(?)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그래야 감독과 같은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고, 극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유지할 수 있다고. 그가 현장을 좋아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멋진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의 인연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작품성’보다 스탭들의 ‘의리’가 먼저라고 말하는 그에게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그와 함께 힘듦과 기쁨을 나눈 전우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노력하는 스탭들의 노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아요. 영화를 보신 후 엔딩크렛딧을 끝까지 봐주셨으면 해요. 100여명의 스탭들이 몇 개월 동안 노력해 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한 번이라도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인을 꿈꿉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등 모두 영화 스탭 초년 시절에 각각 김성수, 박찬욱 감독 영화의 스크립터를 맡았다. 다수의 스크립터 경험을 비춰봤을 때 감독으로서 이름을 올린 만도 한데, 아직 메가폰을 잡은 일은 없다. 앞으로의 계획에 감독 활동이 껴 있을까? 저에게 감독은 외도인 셈이에요. 전 스크립터 일이 좋거든요. 어느 위치에 서있느냐 보다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이순혜 스크립터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수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의견이 선택되건 안되건 간에 상관없다. 단순히 기록만 하는 게 스크립터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눈치와 센스를 무기 삼아 치열한 영화 현장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바로 이런 노력 덕분이 아닐까. 그의 바람처럼 현장에서 스크립터로서 빛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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