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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하얀 설탕이 쏟아지던 날.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습니다. 종합식품회사에서 식품·생명공학·유통·엔터테인먼트의 4대 사업군을 선도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CJ가 걸어온 도전과 개척, 창조와 성취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3화. 국내 첫 공채, 일류인재의 산실이 되다 해마다 기업들은 뛰어난 인재 확보를 위해 매년 공개채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우수 인재들을 만날 기회이며,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무대가 되는데요. 이런 공개 채용 제도를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CJ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 최초 공개 채용이 있었던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뽑는 인재사관학교 제당전국시대가 한창이던 1957년에 당시 일반화되어 있던 연고 채용방식이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 채용 시험이 열렸습니다. 그해 1월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상대에는 무려 2,000여 명의 응시자가 몰렸는데요. 영하 15℃의 강추위가 몰아쳤지만, 수험장은 국내 최고 기업에 입사를 꿈꾸는 젊은 인재들의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시험 두 달 전부터 각 대학 게시판에는 제일제당과 무역·모직 부문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가 게재되었습니다. 학연과 지연을 보지 않고 오직 실력 있는 인재만을 뽑겠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의도가 담긴 행보였죠. 이전까지는 공개 채용 형식의 신입사원 모집이 국내에 없었으므로, 이 시도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시험은 필기(영어·논문·상식)에 이어 1~2단계로 나눠 면접시험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첫 시험 결과 모두 27명의 합격자가 선발됐습니다. 그들은 배정받은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는데요. 교육의 백미는 제일제당에서 시행한 3개월간의 현장 실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당 창고에서 무거운 설탕 부대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작업 현장의 어려움부터 배웠습니다. 제일제당에서 성장한 인재들은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제일모직 설립 당시 12명의 임원 가운데 8명이 제일제당 출신이었죠. 제일제당 공장장이었던 김재명 취체역(이사)은 제일모직에 뒤이어 한국비료 건설 때도 핵심 인력으로서 설립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삼성 CEO의 9%가 제일제당 출신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인재 산실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제일제당은 내부적으로도 우수한 인재 양성소 역할을 했지만, 업계에서도 인재사관학교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업계에서는 드물게 사내 판매대학 등을 운영, ‘최고 전문 인력 양성소’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얻었습니다. 한 언론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사관학교’로 제일제당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기업의 자산 중 으뜸은 사람’이라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인재관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도 혁신적입니다. 제일제당의 공개 채용 방식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제일제당의 눈부신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제일제당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죠. 제일제당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사원 수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1960년대 말 500명이 채 되지 않던 인력은 1968년 1,200여 명, 1980년에는 3,000여 명으로 늘었고, 1987년에 이르러서는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에 걸맞게 인재 선발과 교육, 인사관리 등도 합리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룹 인사제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승격 기준을 최초로 정한 것은 1966년이었습니다. 당시 준사원에 해당하는 4급 사원에 대한 승격과 승진 규정을 제정함으로써, 승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식품업계 최초로 당시 일반적이었던 ‘12시간 2조 2교대’ 제도를 ‘8시간 3조 3교대’로 변경해 근무 시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며, 이는 국내 기업들이 모범이 되고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사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972년에는 전 사원에 대한 직무 분석을 실시했는데요. 사원 채용, 적성에 따른 배치전환, 업무 편람화, 급여제도 개선 등 방대한 분량의 모든 인사 관련 자료를 검토했고, 이때의 직무 분석 결과는 CJ가 모범적인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정립하는 데 토대가 되었습니다. 제일제당은 1983년 직급체계 조정에 이어 대리직과 2급 직제를 신설하는 등 직제를 개편하는가 하면 학력, 직종 간의 임금 격차와 저임금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직급의 호봉 체계도 개편했습니다. 그룹 출범 직후인 1996년 2월에는 모든 임직원을 조직에 필요한 전문가로 육성한다는 목표하에 새로운 개념의 신인사제도를 도입했는데요. 다원적으로 운영해온 직군을 통합, 새로운 평가 방법을 적용해 연공서열 우선이던 것을 개인 능력 중심의 체계로 전환했습니다. 신인사제도는 사원의 능력 향상 도모는 물론, 그에 걸맞은 성취와 보상이 따르는 합리적인 제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000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율과 창의의 젊은 기업문화 1999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복장 자율화를 비롯해 2000년 ‘님’ 문화를 도입한 기업도 CJ그룹이었습니다. 옷차림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생각이 오가는 젊고 미래 지향적인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발상의 전환이었죠. 복장 자율화는 ‘님 ‘호칭 제도 도입을 이끌어내 기존의 직급체계와 호칭에서 느껴지는 권위감이 사라지는 등 진취적이고 개성이 존중되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CJ는 입사 후 10년 만에 임원이 될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 도입(2012), 임원직급을 ‘경영리더’ 단일 직급으로 통합(2021)하는 등 기업 인사제도 혁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CJ의 인사 운용 방침은 CJ만의 독특한 기업문화에서 비롯됩니다. 2005년 CJ 경영진과 신입사원들이 함께하는 ‘지식박람회’ 광경은 일반적인 시작에서 바라봐도 매우 이채로웠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이재현 님은 CJ CGV의 극장용 의자를 개선하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이재현 회장은 “김○○ 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하기 때문이죠. 신입사원들은 입사 직후 교육 현장에서부터 타 기업과는 차별화된 기업문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제품 개발이나 기존 제품 및 서비스 개선 방안을 자유롭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지식박람회에서 전시·발표할 수 있었으며, 신입사원들의 제안이 직접 경영에 응용되기도 했습니다. 인재제일의 경영 ‘하고잡이’들이 함께 성장하는 일터를 만들다 CJ그룹이 오늘날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인재였습니다. CJ그룹은 정직과 열정, 창의를 3대 핵심 가치로 내걸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공을 들여왔습니다. 이 같은 ‘인재제일(人材第一)’ 경영 철학은 지난해 CJ그룹이 발표한 중기 비전 선포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CJ 이재현 회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인재”라며 ‘하고잡이’들이 다양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그동안 다른 기업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보상을 받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또, “인재들이 오고 싶어 하고, 일하고 싶어 하고, 같이 성장하는 CJ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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