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OTT의 결합이 만든 팬덤 경제 시너지

이제 콘텐츠의 경계는 팬덤을 통해 재편되고 있다. 과거 경계가 분명했던 콘텐츠의 영역들은 이제 같은 팬덤을 공유하거나 결합하는 것으로 그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티빙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원수는 외야석에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야구장에서의 소개팅이라는 이례적이고도 과감한 콜라보를 선보인 이 예능 프로그램은 라이벌 구단을 응원하는 남녀의 ‘직관 소개팅’이 콘셉트다. 야구와 연애 프로그램은 과거라면 도무지 접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이질적인 콘텐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4050 남성이었던 야구의 주 팬층이 최근 몇 년간 2030 여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와 연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만남은 그렇게 팬층을 공유함으로써 더 이상 이상하지 않게 됐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완벽한 이종 교배를 보여주는 <원수는 외야석에서♥>는 그래서 이질적이기는커녕 2030 여성 야구 팬들을 두 배로 설레게 만든다. 찐팬들의 경기 직관이 주는 설렘에 소개팅의 설렘이 얹어지기 때문이다. 응원 팀이 다른 남녀는 경기 흐름에 따라 감정이 복잡하게 요동치고, ‘상대방과의 사랑’과 ‘자산의 팀 시즌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파격적인 갈등 구조는 야구팬이자 예능 시청자인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팬덤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너지다.
그런데 이러한 이종 결합이 자연스러워진 팬층의 변화에는 2024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티빙(TVING)이 체결한 중계권 계약이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십수 년간 이어진 포털 중심의 무료 중계 시대가 막을 내리고, OTT 기반의 유표화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 계약은 도입 초반만 해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시즌이 지난 현재 시장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KBO는 사상 최초로 1,2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대흥행을 기록했고, 티빙은 스포츠를 전면에 세우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나아가 이 계약은 단순한 중계 플랫폼의 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팬덤 이코노미(Fandom Economy)’ 생태계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서로 다른 두 팬덤의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이다. 전체 관중의 56,7%를 차지하며 주류 야구 관람객으로 급부상한 2030 여성들은 새로운 소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오프라인의 거센 여풍(女風)은 OTT로도 고스란히 옮겨져, 티빙의 KBO 중계 초반 여성 이용자 비중을 43%까지 끌어올렸다. 야구 중계를 보기 위해 가입한 새로운 팬들은 경기가 없는 시간대에 자연스럽게 예능과 드라마를 시청하고, 역으로 티빙의 핵심 고객층이었던 2030 여성가입자들은 메인 화면의 야구를 클릭하며 새로운 야구팬으로 유입되었다. 주 6일 매일 열리는 야구의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 덕분에 티빙의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는 지난 4월 기준 전월 대비 17.2%나 급증한 189만 명을 기록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OTT 시청이 이용자들의 일상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스포츠 소비의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과거 포털 시절 엄격히 금지됐던 중계 영상의 2차 가공을 티빙이 전면 허용하면서, 40초 미만의 숏폼 영상과 재치 있는 밈(Meme)들이 소셜 미디어를 장악했다. 대중의 알고리즘을 타고 퍼진 밈 문화는 야구를 모르는 이들까지 야구장으로 이끄는 강력한 마중물이 됐다. 단순 관중이 아닌 팬덤형 소비 관중들은 오프라인에서의 야구 소비 방식에도 변화을 일으켰다. 야구 굿즈가 단순한 응원 도구를 넘어 하나의 ‘팬덤 패션’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백화점이 진행한 프로야구 구단 팝업스토어는 방문객의 80%를 백화점 신규 고객으로 채우며 2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인근 상권의 패스트푸드 매출이 1,000% 이상 폭증하는 등 한 시즌에만 1조 1,121억 원의 경제 효과가 창출됐다. 스포츠 IP가 그 어떤 유통 브랜드보다 강력한 모객 수단이자 경제적 파워를 지니게 된 것이다.
물론 유료화에 따른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그러나 플랫폼의 대규모 투자는 곧 고품질 서비스라는 혜택으로 팬들에게 돌아갔다. 최대 여섯 경기를 동시에 보는 ‘멀티뷰’, 이동 중에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모드’, ‘타임머신’ 기능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스포츠 중계 시청 경험이 도입되었다. 더불어 신규 가입자의 약 39%가 선택한 광고형 요금제(AVOD)는 시청자의 가격 저항을 성공적으로 낮췄을 뿐만 아니라, 긴 체류 시간을 십분 활용한 타깃 광고로 이어져 실질적인 실적 견인의 든든한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KBO와 티빙이 낸 시너지의 정점은 티빙의 오리지널 기획력이 빛난 스핀오프 콘텐츠들이다. 스포츠 중계 비즈니스는 태생적으로 비시즌 기간의 이용자 대거 이탈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티빙이 오리지널 스핀오프 콘텐츠들을 선보이면서 비시즌 기간은 이제 이용자가 대거 이탈하는 시간이 아니라, 야구 팬덤을 보다 충성 고객으로 만들어내는 ‘스토브 리그’ 기간이 됐다. 전국 800만 ‘방구석 감독’들을 대변해 10개 구단 대표 팬과 레전드 선수들이 모여 난장 토론을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 <야구대표자:덕후들의 리그>, 2024년 KBO리그의 역대급 기록 행진, 10개 구단 주장들의 리더십, 야구 팬덤의 이면 등을 깊이 있는 시각으로 다각도에서 조명한 다큐멘터리 <퍼펙트리그 2024> 같은 스핀오프 콘텐츠들이 비시즌에도 팬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모은 것이다. <원수는 외야석에서♥> 같은 과감한 콜라보 실험이 돋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은 이런 흐름이 이제는 정착단계에 들어와 있다는 걸 말해준다.
KBO와 티빙의 만남은 스포츠와 OTT가 만나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포털이 제공하던 무료 중계는 쉬운 접근성의 장점이 있었지만, 스포츠를 고립된 전통적 생태계에 머물게 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OTT와 결합한 야구는 스포츠 IP의 가치와 팬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숏폼 2차 가공의 전면 허용과 OTT 특유의 맞춤형 중계 인프라는 2030 여성이라는 신규 시장 개척은 물론이고 ‘팬덤 패션’으로 대변되는 팬덤 경제의 파급효과까지 만들었다. 티빙 역시 텐트폴 대작 오리지널 콘텐츠에만 의존하던 불안정한 트래픽 모델에서 탈피해, KBO를 통해 매일 접속하는 일상형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AVOD 수익화 모델을 성공시키며 흑자 전환을 달성함으로써 글로벌 OTT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질적이었던 두 세계의 결합이 만들어낸 새로운 팬덤 경제의 시너지는, 향후 여타의 분야에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 경력
- 2015~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
2021~ MBC 시청자평가원 - 저서
-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 - 유튜브 채널
- 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 기고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관련 기업
- CJ ENM, 티빙(TVING)
- 관련 콘텐츠
- <원수는 외야석에서♥> <야구대표자> <퍼펙트리그 2024>
- 핵심 키워드
- 스포츠 중계, 팬덤 경제, O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