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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쟁력은 세상에 없던 것을 처음 만드는 데서만 비롯되지 않습니다. OECD가 주목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처럼, 기존 자원과 기술을 끊임없이 개선·조합·재설계하는 ‘최적화 역량’에 주목합니다. K푸드·K뷰티·K콘텐츠를 관통하는 혁신의 공통 원리를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경쟁력의 관점에서 알아봅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만화는 종이책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디지털 화면에서도 독자는 종이책처럼 페이지를 넘기며 만화를 읽어야 했다. 한국의 창작자들은 이 익숙한 방식에 변화를 시도했다. 화면을 아래로 내리며 읽는 ‘세로 스크롤 웹툰’의 등장이다. 단순한 변화였지만 그 효과는 컸다. 페이지의 제약이 사라지자 작가들은 장면 사이의 여백을 활용해 새로운 연출을 시도했고, 독자들은 화면을 아래로 내리는 것만으로 만화를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이 세로 스크롤에 맞춰 만화를 그린다. 한국에서 시작된 형식이 글로벌 웹툰의 표준이 된 것이다. 웨이크메이크 심리스 웨어 쿠션 [사진=wakemake 홈페이지] 비슷한 변화는 화장품에서도 나타났다. 2008년 한국에서 탄생한 ‘에어쿠션’이다. 기존에는 액상 화장품을 손에 덜어 바르거나 별도의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면, 에어쿠션은 용기와 어플리케이터의 구조를 바꿔 휴대성을 높이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화장을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파운데이션으로 확대됐고, 글로벌 브랜드들도 잇달아 쿠션형 제품을 출시하면서 하나의 주요 화장품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기존 화장품을 담고 바르는 방식의 변화가 세계 뷰티시장의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혁신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로 평가받아 왔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세상에 없던 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인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선도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의 논리다. 그러나 시장을 처음 개척한 기업이 반드시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만화도, 파운데이션도 처음 발명하지 않았다. 대신 기존 제품의 사용 방식을 바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혁신 연구에서는 기존 기술과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을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혁신의 기회는 전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데만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제품에서 소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산업의 표준을 바꿀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온 배경에도 이러한 최적화 역량인 ‘K-Optimizer’가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한 끗’을 발견하고, 이를 기술과 설계, 제조 역량으로 구현해 기존 제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능력이다. OECD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의 85.9%가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개선을 혁신 목표로 삼았으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도입을 목표로 한 비율은 39.8%였다.1 한국 기업의 혁신이 기존 제품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은 기존 제품을 개선해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하는 혁신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최적화 역량은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치가 구매 결정의 주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강조된다. 맥킨지와 BoF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자의 63%는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2 브랜드의 명성이나 높은 가격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실질적인 차이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의 성공을 이끌어 온 최적화 전략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한국 기업들은 기존 인기 제품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스핀오프(Spin-off)’를 적극 활용해 왔다. 기존 제품을 완성된 결과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속성을 변주하며 새로운 소비 가치를 탐색한다. 국내 주요 제과기업 3곳에서 기존 제품을 활용해 출시한 새로운 맛의 제품은 2020년 199종에서 2025년 283종으로 약 42% 증가했다.3 익숙한 라면을 매운맛과 크림맛으로 변주하거나 아몬드에 허니버터, 와사비, 군옥수수 등 다양한 맛을 입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CJ제일제당의 ‘햇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제품 자체를 세분화했다. 영양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위한 ‘솥반’, 소식 수요에 맞춘 ‘미니밥’, 단백질 섭취 제한이 필요한 소비자를 위한 ‘저단백밥’까지, 하나의 즉석밥을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필요에 맞춰 정교하게 최적화한 것이다. CJ제일제당 (위)햇반 미니밥·저단백밥·솥반과 (아래)김부각·김스낵 이미지 최근에는 맛뿐 아니라 식감과 크기, 형태도 중요한 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에 바삭한 토핑을 더하거나 디저트에 쫀득한 식감을 입혀, 익숙한 제품에서도 새로운 먹는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스낵’은 기존 조미김보다 바삭함을 높이고 한입에 먹기 좋은 스틱 형태로 재구성해 김을 간식으로 즐기려는 글로벌 소비자를 공략했다. 김에 익숙하지 않은 글로벌 소비자들도 친숙하게 즐길 수 있도록 식감과 형태를 최적화해 새로운 소비 수요에 대응한 것이다. K뷰티에서도 크림이나 립 제품을 젤리, 푸딩, 무스 등 다양한 제형으로 선보이며 바르는 감촉과 재미를 차별화하고 있다. 제품의 효능을 넘어 사용 과정의 감각적 즐거움을 강조하는 이른바 ‘스킨터테인먼트(Skintertainment)’ 현상이다. 최적화의 단서는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에서도 발견된다. 최근 SNS에서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쩝쩝박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제품을 취향에 맞게 변형해 소비하는 ‘모디슈머(Modisumer)’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들의 자발적인 시도에는 기존 제품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가 담겨 있다. 한국의 식품기업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해 인기 있는 조합을 정식 제품으로 출시하거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며, 소비자의 창의적인 활용법을 제품 혁신의 기회로 삼고 있다. 원더바스 ‘슬라이스 세럼’ [사진=CSA코스믹] 최적화는 제품의 핵심 기능뿐 아니라 그동안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요소에서도 이뤄진다. 제품의 내용물 자체를 바꾸지 않고 용기나 도구 등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종의 ‘주변부 혁신(Peripheral Innovation)’이다. 2026년 글로벌 뷰티시장에서는 이른바 ‘아이패치 게이트(Eyepatch-gate)’가 화제가 됐다. 여러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회전식 아이패치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는데, 서로 다른 브랜드가 동일한 용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 패키징 기업이 개발한 디스펜서가 있었다. 용기를 돌리면 하이드로겔 패치가 한 장씩 분리되어 나오는 구조다. 브랜드마다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강조했지만, 정작 소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내용물이 아닌 용기였다. 화장솜에 토너를 적시는 번거로움을 없앤 토너패드 역시 내용물보다 사용 방식을 개선한 사례다. 두 사례는 제품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용기와 도구가 소비자가 차이를 체감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주변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발전시켜 왔다. 한국 기업들의 최적화 전략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가치를 반드시 새로운 제품에서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제품의 속성을 변주하고, 소비자의 활용 방식에서 개선의 단서를 발견하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요소를 차별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처럼 기존 제품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온 역량은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최초의 발명을 넘어 더 나은 해법으로 경쟁하는 것, 그것이 K-Optimizer의 힘이다. 1 OECD(2023), OECD Reviews of Innovation Policy: Korea 2023, Chapter 3, Section 3.1.3. 한국기업혁신조사(KIS 2020) 인용.2 McKinsey & Company·The Business of Fashion(2025), The State of Fashion: Beauty, Volume 2, “Customers Want Beauty Brands to Prove Their Worth.”3 매일경제(2026.5.4), 국내 주요 제과기업 3곳의 기존 브랜드 맛 변형 제품 출시 현황. 전다현 소비트렌드 전문가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리테일 환경의 소비자 행동과 소비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학력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석·박사 경력 (現) 트렌드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前)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자문위원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7》 외 시리즈 공저《2025 K-Consumer Trend Insights》 공저《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2》 공저 ARTICLE INFO 작성 전다현 소비트렌드 전문가 관련 기업 CJ제일제당, CJ올리브영 주요 사례 세로 스크롤 웹툰, 에어쿠션, 햇반 제품 세분화, 비비고 김스낵, 뷰티 제형 및 패키징 혁신 등 콘텐츠 유형 산업 트렌드 분석, 전문가 칼럼, 글로벌 소비·혁신 전략 인사이트 핵심 키워드 K-Optimizer,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 제품 최적화, 소비자 중심 혁신, 스핀오프, 모디슈머, 주변부 혁신, K푸드, K뷰티, 글로벌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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