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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거장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연출작이자 배우 양조위의 첫 유럽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루나 웨들러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4월 15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포함한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침묵의 친구> 리뷰 영화 <침묵의 친구> 메인 포스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침묵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온갖 소음으로 둘러싸인 세상 속에서 우리의 시선은 매 순간 어딘가에 집중되어 현실을 감각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내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분념들이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면, 우린 잠을 자고 있는 순간에서조차 침묵하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침묵의 친구라니, 침묵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침묵의 친구를 상상해 보라는 것은 조금 과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그 상상의 시작으로부터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음을 제안한다. 그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어떻게 <침묵의 친구>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잠시 들여다본다.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기 독일의 대학에서 강연하는 토니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마음을 여는 것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았으면 했다” 2017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만들고 난 이후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연출 의도였다. 1989년 <나의 20세기>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고 <더 매직 헌터>(1994), <마법사 시몬>(1999)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연출을 이어오던 그녀가 1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을 두고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의 중요성을 논하고자 했다는 말은 18년이 그녀에게 중요한 시기였음을 짐작게 한다.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혔듯이 그녀는 이 시기 동안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고 여러 번의 고비를 마주해야 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은 자가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만큼 강한 메시지가 또 어디 있을까! 또다시 상처받더라도 그 상처를 딛고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는 관계가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 강한 울림을 안긴다. 교감의 확장 창밖으로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는 토니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처럼 <침묵의 친구> 또한 소통에 대한 주제를 공유한다. 단, 전작에서의 소통이 성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침묵의 친구>는 어린아이로부터 자연 전체로 확장된다. 2020년, 어린아이의 뇌 반응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 토니(양조위)는 교환교수 자격으로 독일의 한 대학을 방문한다. 수업과 연구를 진행하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하고 학교는 폐쇄되자 갈 곳 없던 그는 홀로 캠퍼스에 남아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한밤중 우연히 식물의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엘리스(레아 세이두)의 테드 강연을 듣는다. 곧바로 엘리스에게 연락한 토니는 그녀의 도움으로 캠퍼스에 있는 나무들의 신경세포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말 못 하는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경험하는지 관심 갖던 토니에게 식물 연구는 소통의 경험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소통의 도구, 과학의 계보 은행나무의 신경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기계 장치를 설치하는 토니 2020년의 토니 이야기는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1908년과 1972년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독일 최초로 이 학교에 입학했던 여학생 그레타(루나 웨들러), 공과대학생이었지만 식물을 연구하는 여학생을 짝사랑하며 점차 식물과 교감하게 되는 하네스(엔조 브룸)까지, 각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가 중첩되며 식물과 인간과의 교감 가능성은 점차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 가능성으로까지 확장된다. 성차별로 인한 편견 속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그레타는 남성들의 혐오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구를 계속 이어간다. 사진이란 매체를 만나 사진으로 된 최초의 식물도감을 제작하고 그 도감은 1972년의 하네스에게까지 전달된다. 화분에 담긴 꽃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착안한 것은 그가 지닌 공학 기술 덕분이었다.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하네스의 방법론은 2020년 토니에게까지 확장되어 디지털 시각 이미지로 은행나무의 신경세포를 연구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시대를 거듭하며 타 존재와의 소통 가능성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침묵의 친구>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기술은 중요한 소통의 도구로 적극 활용되고 이것이 하나의 영화적 미학으로까지 펼쳐진다. 흑백, 필름, 디지털 이미지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하네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때 연출가라면 한 번쯤 과거를 흑백 이미지로, 현재를 컬러 이미지로 재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색이 지워진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거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이러한 뻔한 선택에 자신만의 의도를 좀 더 세심하게 심어 넣는다. 흑백으로 표현되는 1908년은 그레타가 흑백 사진으로 식물을 기록하는 시대였다. 감독이 선택한 흑백은 그레타가 촬영한 식물 사진에 대한 배려이며 동시에 그레타가 표현한 식물 이미지를 현재의 관객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도구다. 1972년을 표현한 필름 이미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식물과 교감하려 했던 하네스에 대한 배려다. 하네스는 전류가 흐르는 장치들을 바탕으로 꽃이 자신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발견해 냈다. 감독은 하네스의 노력들을 좀 더 현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아날로그 이미지를 선택하고 현재의 관객들이 하네스와 꽃의 소통 과정을 그 시대적 감각으로 마주하길 요구한다. 2020년의 디지털 이미지는 디지털 도구들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비가시적인 세포의 흐름을 연구하는 토니에 대한 배려다. 디지털 이미지의 강점은 이미지가 현실에 대한 지시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시각만이 전부라 생각해 왔던 인간의 인식을 벗어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감독은 토니가 만들어내는 식물의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서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란 점을 드러낸다. 익숙하게 받아들여 왔던 세계를 전복시켜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확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태도다.  그림자, 바람, 빛 그리고 침묵 시간이 흘러 노랗게 변한 단풍나무 일디코 엔예디 감독에게 인서트는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상황을 설명하고 장면과 장면의 전환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기존의 인서트와 달리 감독에게 인서트는 하나의 세계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침묵의 친구>에는 유독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식물의 아름다운 곡선, 나뭇잎 사이로 분사되는 빛들을 담은 인서트가 가득 담겨있다. 도서관과 식당의 커다란 창밖으로 흔들리는 나무들을 주목하는 카메라 속에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모두 다른 곳에 집중해 있다. 성인의 뇌가 하나의 상황에 주목할 때 뇌는 다른 감각들을 차단한다는 사실이 감독의 인서트에 정확히 담겨있다. 반면 어린이의 뇌와 마찬가지로 식물은 세상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그 감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1908년과 1972년, 2020년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오랜 시간 나무들은 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각 시대속의 인물들을 바라보고 품어 안는다. 침묵의 친구를 만들어내기 캠퍼스의 오래된 은행나무 곁에 머무는 토니 일디코 엔예디 감독은 이를 위해서 침묵할 것을 요구한다. 침묵하고 세상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바라봄의 시간을 좀 더 길게 유지해 봄으로써 우리는 외면해 왔던 대상들과 소통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이를 위해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인식의 전환을 적극 수용한다. AI로 대표되는 과학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를 불투명하게 바라보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과학기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의 도구로 환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감독은 이를 인간과 소통하는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드러낸다. 언어가 없다 생각한 존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겪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하나의 종이 다른 종을 짓밟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결국 감독은 우리를 침묵의 친구로 초대한다. 침묵의 곁에서 잠시 머물러보는 것, <침묵의 친구>를 통해 한 번 경험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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