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모든 것은 한정된 크기의 사각형 공간에서만 일어난다. 물론 이 제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공연을 ‘한계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으로 콘서트 등을 온라인으로 보고 있는 요즘, 전 세계 팬들은 이 한계를 더욱 절감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을 화면으로 줄곧 응시하다 보니 많은 답답함과 피로함을 느낀다.
이런 단점을 지우듯, 지난 6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글로벌 음악 시상식 ‘진행된 글로벌 음악 Mnet ASIAN MUSIC AWARDS(이하 ‘MAMA’)는 이 모든 한계를 해체한 무대였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새로운 무대 연출과 구성으로 200여개 지역의 K팝 팬들을 사로잡았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언택트 시대에 걸맞는 MAMA의 변신
MAMA의 무대는 기존 온, 오프라인 공연들과 달랐다. 무한한 확장성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각 무대를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티스트가 서 있는 곳이 때론 우주가 되고, 때론 바다가 됐다. 아티스트의 움직임에 따라 무대 바닥에 있던 빛이 이동했고, 아티스트 손끝에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기도 했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인 7대의 AR 전용 카메라가 동원돼,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올해의 가수’ 등 8관왕을 휩쓴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들은 먼저 월드컵경기장에서 대규모 마칭밴드와 함께 선보였다. 무대를 벗어나 탁 트인 공간에서 미리 녹화를 해 탁 트인 해방감을 선사했다.
이곳에서 선보인 거대한 스케일의 군무는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어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부를 땐 그래픽 폭죽이 터지며 화려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에선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연출됐다. 어깨 수술로 불참한 멤버 슈가가 갑자기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대상을 촬영, 실사에 입체 영상을 입히는 ‘볼류메트릭(Volumetric) 기술을 활용한 무대였다. 예상치 못했던 감격스런 장면에 팬들은 찬사를 보냈다.
콘텐츠, 첨단기술 그리고 발상의 결합
코로나19 시대, K팝이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수준 높은 온라인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비대면 공연은 처음엔 그 자체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프라인에서 하던 걸 온라인으로 옮겨왔다는 것만으로도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조차 곧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플랫폼만 달라졌을 뿐 오프라인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K팝이 가는 길은 달랐다. 콘텐츠와 첨단기술에 차별화된 발상을 더했다. 덕분에 팬들은 K팝을 생생하게 느끼고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며,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콘텐츠와 기술은 어느 지역에나 흐르고 있다. 그러나 발전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엔 발상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콘텐츠와 기술만 결합해 거대한 스케일로 무대를 만든다고만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결합은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디어로 정교하게 연결돼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슈가를 기술로 무대에 서게 한 것은 그 정점을 찍는 발상이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솔로 부문에선 각 후보의 소개를 각국 팬들이 직접 만든 댄스 커버 영상으로 한 것도 ‘연결’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아이디어였다. 이들은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적극 응원하는 주체가 됐다. 그래서인지 팬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실시간 투표를 포함한 전체 누적 투표 수는 5억 3,000만건에 달했다. 각자의 공간에 있지만 이들이 보낸 열띤 반응과 함성 소리는 MAMA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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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뿐 아니라 올해 6월과 10월 두 차례 진행된 ‘KCON:TACT’도 그랬다. K팝 공연 뿐 아니라 한국 문화 자체를 알려온 ‘KCON’은 온라인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코로나19로 국경 간의 장벽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각국의 팬들은 영상으로 게임, 푸드, 패션 등 다양한 장르의 한류를 즐길 수 있었다.
다른 한 걸음이 만들어낸 폭발적 에너지
한류 발전을 이끌어 온 MAMA와 KCON 행사는 애초에 ‘달라야 한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졌다. 1999년 ‘Mnet 영상음악대상’으로 시작된 MAMA는 한국에서만 시상식을 연다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최초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했다. 올해 선보인 첨단기술과의 결합도 이미 조금씩 시도해 왔다.
언택트 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인 2016년 국내 최초로 무대에서 AR 기술을 선보였다. 올해 완성도 높은 무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번의 시도와 보완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KCON도 다른 K팝 공연들과 달랐다. 공연 뿐 아니라 댄스, 뷰티 등 다양한 문화를 아시아가 아닌 미국에서부터 소개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런 차별화된 시도가 없었다면 한류의 확산은 보다 더디게 진행됐을 것 같다.
이 같은 발상엔 한국 고유의 특성이 깔려 있다.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밀집성’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물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좁은 땅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이 밀집성은 기본적으로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단 하나라도 다른 것을 고민하고 더해야 했다.
이 노력의 힘은 강했다. 어느 날, 한번 한류의 봇물이 터지자 응축됐던 에너지가 폭발적인 위력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K팝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신명 나는 흥에 참신한 아이디어, 정교하게 다듬은 시스템이 결합돼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위기에도 찬란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1969년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열었던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많은 국내 팬들이 공연장에 모여 환호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해외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기성 세대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이 일은 아주 오래전 일이 였다. 지금은 해외 팬들이 한국 아티스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다. 직전 걸음과 조금은 다른 한 걸음, 또 다른 한 걸음이 모여 어느새 세계로 통하는 커다랗고 튼튼한 길이 만들어졌다.
『지난 시리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