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LAR NOW

01

<2024 MAMA AWARDS> 월드클래스급 시상자 라인업 공개!
2024.10.28

02

“올리브영 메이트에서 점장까지, 나를 움직인 원동력”
2024.11.07

03

사이다, 설렘, 감동, 흥분! 11월 CJ ENM 신규 콘텐츠
2024.11.01

04

‘안정 속 쇄신’ CJ그룹 2025년 정기임원인사
2024.11.18

05

CJ대한통운이 만들어 나가는 ‘커피 물류’의 기준
2024.11.01
고대 그리스의 3대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 ‘안티고네’는 소녀 안티고네와 그의 삼촌이자 테바이의 왕인 크레온의 갈등을 다룬다. 이 이야기가 연극이 아닌 영화에서, 게다가 현대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소포클레스의 희곡과 같은 제목을 가져온 소피 데라스페의 영화 ‘안티고네’는 보편적 이야기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새롭게 보여준다. 퀘벡 영화 속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 ‘안티고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안티고네’의 공간적 배경은 캐나다 퀘벡주의 한 도시다. 퀘벡은 캐나다 연방에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으로, 이 언어와 문화로 인해 독자적인 민족을 이루고 있다. 영화 또한 캐나다 영화 또는 북미영화로 묶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언급된다. 퀘백 영화는 특정한 소재들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그 예로 아버지의 부재 상태,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낯선 이의 등장, 자신의 혼종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 등을 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동시대 퀘벡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자비에 돌란의 영화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퀘벡에 다수의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퀘벡 감독 드니 코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령마을’(2018)에서 이방인의 등장으로 주민들에게 발생한 반감이나 공포의 감정을 초현실적인 필치로 그려낸 바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퀘벡 감독, 소피 데라스페가 퀘벡의 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 ‘안티고네’를 가져왔다. 이야기 속 가족은 알제리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실제 퀘벡에는 1991년부더 2002년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알제리에서 온 난민들이 많다. 그들이 같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 일곱 소녀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세 살 때 알제리에서 부모님을 잃었다. 내전 중 정치적 이유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다. 남은 가족은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었고, 할머니(라치다 오사사다)는 어린 4남매를 데리고 퀘벡 몬트리올에 난민으로 이주해 왔다. 어린 안티고네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학교에서 우등생이고 연애를 하게 되었으며 가족들과 단란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안티고네에게 이 땅의 타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잔인하게 깨닫게 하는 사건이 생긴다. 큰 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가 경찰이 진압 중 우발적으로 쏜 총에 죽고 만 것이다. 현장에 함께 있던 둘째 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제인)는 흥분한 나머지 경찰을 폭행하여 수감된다. 그리고 사법부는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그를 추방하려 한다. 추방은 곧 죽음이라 여긴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를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대범한 계획을 세운다. 형사는 폴리네이케스가 처벌받아야 할 이유를 증거로 내보이지만 안티고네는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소피 데라스페의 ‘안티고네’로 재탄생하기까지 안티고네는 큰 오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을 이방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극중 안티고네가 맞닥뜨린 가족의 죽음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미국에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흑인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 영화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전에 만들어졌지만, 이슈가 되기 전에 이미 소피 데라스페는 공권력이 이 사회의 타자를 가려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비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만 고전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고대부터 지속되어 온 사회와 인간 사이의 보편적인 갈등에 관심이 있다. 소포클레스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은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다. 이 작품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안티고네가 바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셋째 딸이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눈을 파낸 그 인물이다. 동명 희곡과 같은 이름인 안티고네의 둘째 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제인). 그가 감옥에 수감되면서 안티고네의 인생은 뒤바뀐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안티고네’ 이야기는 아버지인 오이디푸스가 죽은 뒤, 두 아들이 왕좌를 놓고 서로 다투는 데서 시작한다. 이후 형 폴리네이케스는 타국의 군대를 끌어들여 테베를 공격하다 죽고, 동생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지키다가 명예롭게 죽는다. 결국 왕좌는 그들의 외삼촌 크레온이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만을 성대히 치러준다. 그리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 짐승들에게 먹히게 하고 시신을 거두는 자에게 사형을 내리겠다는 엄포를 내린다. 폴리네이케스를 가엽게 여긴 안티고네는 여동생 이스메네에게 시신을 함께 매장하자고 하지만 이스메네는 거절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홀로 시신을 묻어 법정에 세워진다. 그곳에서 안티고네는 자신의 양심이 왕이 만든 법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굴에 감금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자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도 그녀를 따라 목숨을 끊는다. 뒤이어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와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까지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영화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의 두 오빠와 언니의 이름, 그리고 애인 하이몬의 이름까지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다. 왕의 법을 만든 크레온은 하나의 인물에서 사법부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체된다. 영화에서 하이몬의 아버지 크리스티앙은 크레온은 아니지만,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실정법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하이몬이 그린 아버지는 검게 패인 눈을 하고 앞으로 손을 내민 무서운 모습이다. 소피 데라스페가 고전을 모티프로 현대극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08년 몬트리올에서 있었던 한 사건이었다. 열 네 살 소년이 공원에서 경찰에게 총을 맞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함께 있던 형이 경범죄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그리고 그들은 난민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매우 잔인하고 인종차별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여기서 데라스페는 많은 사람들이 희곡 ‘안티고네’를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를 현실과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소년에게 여동생이 있다 상상하고 그녀가 안티고네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지를 상상하게 된다. 영화 ‘안티고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틱톡 영상은 오늘날의 코러스! 안티고네는 법정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안티고네’는 우리 사회를 이루는 법의 권위에 대항하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안티고네의 꿈에 나온 테레자(신화 속 맹인 예언자의 이름)가 말하듯 마음의 법과 인간의 법 사이의 싸움은 영원히 풀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법은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바뀌고 사라질 성격의 것이지만, 사회의 안정성을 위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심지어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안티고네는 자기 자신에게 진실 하기 위해 이 법을 어긴다. 세속적인 바깥의 법이 아니라 사랑의 법, 내면의 법을 주장한 것이다. 소녀이자 한 인간의 외롭고도 무력한 투쟁이지만, 안티고네는 답이 없는 싸움을 이어 나간다. 그 대범함과 강인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안티고네가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티고네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가 틱톡 스타일의 영상클립으로 등장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에서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빠른 리듬으로 몽타주 된 ‘틱톡’ 스타일의 클립영상이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것이다. 이 영상들은 안티고네를 둘러싼 뉴스가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코멘트와 같은 것이다. 감독은 고대 그리스 연극을 구성하던 ‘코러스(chorus)’를 소셜 미디어 스타일을 활용한 동시대적 스타일로 번역했다. 코러스라는 것은 극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그룹이다. 영화 ‘안티고네’에서는 코러스 영상이 나온 후, 새로운 단계가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는 안티고네의 존재가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소피 데라스페는 온라인에 의해 매개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꾸준히 관심이 있다. 전작인 ‘아미나 프로필’(2015)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시리아와 몬트리올이라는,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두 여성이 온라인상으로 맺게 되는 관계를 드러낸다. 특히, 시리아 여성이 납치되자 몬트리올에 있는 여성과 전세계 행동가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구조 활동을 벌이는 부분에서 온라인상의 관계와 발화가 얼마나 힘을 갖는지를 볼 수 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쩌면 우리는 ‘코러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