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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콘스탄틴>, <컨저링>, <곡성>, <검은 사제들>…. 뛰어난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은 국내외 대표 ‘오컬트’ 영화들이다. 하지만 오컬트는 장점만큼이나 한계가 분명한 장르로 꼽힌다. 어둠, 공포, 광기 등 오컬트 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이미지로 인해 대중적 확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같은 장르적 한계를 극복한 작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그런데 그 견고한 벽을 무너뜨린 영화가 국내에서 탄생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9월 27일 개봉하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다. 네이버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예매율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귀신을 믿진 않지만, 귀신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이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사건을 맡으며 시작된다. 가족이 다 같이 극장을 찾을 시기에 개봉하는 퇴마 소재의 오컬트 영화가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원작을 변주해 오컬트, 코믹, 액션,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결합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리하고 독창적인 영화인 셈이다. 덕분에 한가위 극장가엔 화려하고 풍성한 성찬이 차려졌다. 장르의 벽을 깨부순 감독 x 장르가 된 배우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참신한 시도가 가능했을까? 그 배경엔 감독과 배우의 탁월한 조합이 자리하고 있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메가폰은 김성식 감독이 잡았다. 김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으로 일했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명감독들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익혔으며, 그 계보를 이어갈 신인 감독이 탄생한 것이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초반에 <기생충> 배우 박명훈, 이정은이 출연하는 장면은 이를 알리는 역할이기도 하다. <기생충>의 세계관과 작품을 연결하는 기발한 장면인 동시에 김 감독이 가진 정통성을 드러내는 설정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봉 감독과 박 감독의 연출 기법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기생충>, <헤어질 결심>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 개봉을 앞두고 열린 스페셜 GV에 직접 참석한 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조감독이 이렇게 박력 있고 활기 있는 영화를 만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 본인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 강동원이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주인공을 맡아 큰 시너지가 났다. 강동원은 <전우치>, <검사외전>, <검은 사제들> 등을 통해 코믹부터 액션, 오컬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왔다. 이를 통해 폭넓은 감정선을 펼쳐 보여온 강동원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쾌하면서도 내면엔 아픔을 갖고 있는 천박사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감독과 배우의 시너지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에서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 시퀀스에서 극대화된다. 천박사는 귀신을 잡는 칠성검을 휘두르며 악귀 범천(허준호 분)이 빙의된 인물들과 계속해서 싸운다. 범천은 한 인물에만 빙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에도 빙의될 수 있다. 천박사가 범천이 빙의된 인물 한 명을 물리치면, 어느새 범천이 빙의된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나 천박사를 공격한다. 여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이 액션 시퀀스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게다가 좁은 골목길 안 어디서 악귀가 나타날지 몰라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온라인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적들을 하나씩 물리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강동원은 대역 없이 강도 높은 액션을 완벽하게 해내 그 생생함을 더한다. 퇴마는 샤머니즘? 아니, 심리!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기존의 오컬트 영화와 기본 설정 자체가 다르다. 단순히 귀신을 쫓으며 샤머니즘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심리를 파고든다. 그래서 더욱 공감하기 쉽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천박사는 영험한 당주집의 장손이지만, 신력은 없다. 대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동료 인배(이동휘 분)와 함께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눈속임으로 가짜 퇴마의식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거액을 들고 찾아온 유경(이솜 분)의 의뢰를 받게 되고, 이 사건으로 천박사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인 원수 범천과 마주하게 된다. 천박사와 범천의 대결 중 일부는 심리전의 양상을 띤다. 그중에도 범천은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취약점인 ‘가족’을 활용한다. 영화는 천박사의 꿈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꿈은 천박사의 할아버지와 동생이 범천의 계략에 빠진 순간을 보여준다. 이후 범천은 천박사의 마음속 상처와 불안을 활용해 혼란에 빠뜨린다. 영화는 천박사의 가족과 유경의 가족을 대칭 구조로 활용한다. 천박사가 범천에 의해 할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듯, 유경 역시 범천에 의해 동생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이를 통해 천박사와 유경의 상황을 연결하고, 퇴마를 뛰어넘는 색다른 심리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영화 곳곳엔 인간의 심리를 그린 장면들이 배치됐다. 인배는 악귀들로 인해 자신의 발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는 악귀를 두려워하는 심리를 노린 범천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결국 모든 공포와 불안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속편마다 <천박사> 열풍 불까? <어벤져스> 시리즈의 히어로 군단처럼 캐릭터 간의 조화와 균형도 어우러진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유경은 신력이 없는 천박사의 능력을 보완하는 캐릭터로서 손색이 없다. 인배 역시 웃음만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기술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황사장(김종수 분)은 천박사 집안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자, 천박사를 적극 돕는 관록을 가진 캐릭터로 활약한다. 여기에 배우 박정민, 블랙핑크 지수까지 열연을 펼쳐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한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앞으로 보다 폭넓은 세계관의 확장과 속편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뛰어난 장르적 변주, 화려한 비주얼, 깊이 있는 스토리, 매력 있는 캐릭터의 향연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골고루 장점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컬트라는 마니아적 성향이 강한 한 장르로 출발해 이토록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한국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 반갑다. 올 추석뿐 아니라, 속편이 나올 때마다 극장엔 천박사를 만나려는 관객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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