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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세계. 모든 풍경은 화사한 파스텔 톤으로 이뤄져 있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마치 만화 속 존재들처럼 묘사되는 세계. 그래서 마치 현실과 철저히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의 이면을 꼼꼼히 드러내는 이질적인 세계. 바로 웨스 앤더슨의 작품 속 세계다. 그의 신작 ‘프렌치 디스페치’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전의 작품 ‘개들의 섬’(2018)에서 제기된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해서 였을까?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좀 더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영화 속을 끌고 들어온다. 과연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같으면서도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서 좀 더 살펴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의 반성과 고민의 흔적 극중 프렌치 디스패치가 위치한 건물 외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웨스 앤더슨의 세계는 철저히 현실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있다. 모든 시공간은 그 명칭부터 가상으로 표상된다. 영화 속 세계는 철저히 세트화 되거나 100% 세트에서 구현되어 더욱 현실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이러한 그의 영화적 세계는 하나의 ‘월드’로서 관객들에게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함으로써 큰 만족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월드가 현실의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엔 역설적으로 문제화될 수밖에 없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작품이 2018년작 ‘개들의 섬’이다. ‘개들의 섬’이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이후, 이 작품은 끊임없이 오리엔탈리즘에서 한치도 벗아나지 못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서양 캐릭터인 트레이시가 일본 도쿄로 상징되는 메가사키 시에서 버림받은 강아지들을 구원해낸다는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서양에 의한 동양의 구원 서사와 일치했다. 특히 일본인 캐릭터들은 일본어를 구사함에도 영어로(또는 한국어로) 전혀 번역되지 않으며, 주된 캐릭터들인 강아지들은 영어를 구사하며 영미권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철저히 타자화된 일본인 캐릭터들, 그에 더해 서구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 문화의 재현들은 100% 가공된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에서 더욱 문제적으로 다가왔다. 모세 로젠탈러의 그림을 보기 위해 교도소로 들어가는 예술계 거물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개들의 섬’은 이러한 문제적 가능성들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린다. 그래서 이 작품에 제기된 비판 또한 일면 합당해 보인다. 이를 감독 또한 인정해서일까?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전과는 달리 좀 더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건들, 실재적 사건들을 모티프로 영화화 했다. 그리고 감독 스스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들에 대해 조심스레 돌아보며 자기 나름의 고민의 흔적들을 고백하듯 드러낸다. ‘뉴요커’와 ‘프렌치 디스패치’ 사이에서 편집장 아서 하워처 주니어(빌 머레이)와 로벅 라이트 기자(제프리 라이트), 경찰서장 웨스 엔더슨 감독은 영화 속 잡지사 ‘프렌치 디스패치’가 미국을 대표하는 문예지 ‘뉴요커’에서 영감을 받은 것임을 여러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뉴요커는 하나의 성격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다뤄낸다. 일반적으로 뉴욕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과 생활상을 다루긴 하지만 이 기사들은 결국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사회적 단면들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중범죄자로 감옥에 수감된 프랑스의 뿌리파 화가, 모세 로젠탈러(베니치오 델 토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또한 ‘뉴요커’에 기재된 단편소설, 문학, 미술 비평, 수필과 시, 르포르타주와 만화 같은 다양한 대중문화적 컨텐츠들은 그 자체로 당대의 대중적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웨스 앤더스는 이러한 ‘뉴요커’의 다양한 얼굴들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기입해 넣는다.   영화 속 소품과 풍경은 ‘뉴요커’에 실렸던 만화와 광고, 사진들을 참고했고 영화 속 사건들 또한 직접 뉴요커의 기사들을 참고해서 극화했다. 영화 속 인물들,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의 중요 기자들, 편집자들은 감독이 애정하는 실제 작가와 기자, 뉴요커의 공동 창립자 등, 실제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해냈다. 특히 정치면에 해당하는 영화 속 이야기는 프랑스의 68혁명과 정확히 연결되어 더욱 흥미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러한 실재적 사건과 인물들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새롭게 창조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계속해서 역사를 다루는 이유 프렌치 디스패치 기자와 편집자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여기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질문, 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좀 더 과감하게 직접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왔을까? 웨스 앤더슨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을 만든 뒤에 이뤄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진정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백은 자신이 너무도 철없는 영화광에 불과했음을, 그런 태도로 영화를 만들과 순수하게 영화적 세계에서 살기 좋아했던 사람이었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자각에 대한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의 설익은 서사들, 과잉된 캐릭터들과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메인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웨스 앤더슨 감독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적극 끌고 들어와 유럽 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수자 차별을 비판한다. 영화를 통해 유럽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일면 합당해 보인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발생은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였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유럽 각국의 태도는 충분히 이기적이라 비판 받을 만 했으니까. 하지만 웨스 앤더슨은 자신의 비판적 시선들을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영화적 세계로 표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현실로부터 더욱 소외시켜 버린다. 결국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현실의 모순들은 현실로부터 구별된, 그 자체로 대상화된 목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영화 ‘개들의 섬’ 스틸 이미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개들의 섬’ 에선 그 문제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감독은 독감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쓰레기 섬으로 밀려난 강아지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은유한다. 고바야시 시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을 강제로 희생시켰고, 그 희생 위에 쌓아 올린 부패 권력은 결국 미국인 활동가 트레이시에 의해 무너진다.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자를 생산하는 시스템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초국적 사태로 고착된지 오래다.(‘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예를 생각해보라) 이를 (백인 남성) 감독이 (동양인) ‘일본’이라는 특정 사회 속에서 재현해내고 마치 그 특정 사회 내부의 고질적 병폐처럼 묘사한다. 일면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국가에 만연한 소수자 차별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특정 국가를 향한 이미지로 녹여낸 감독의 의도는 역설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고, 그 특권은 트레이시로 대표되는 ‘백인’ 국가 체제만이 오롯이 취득해 버린다. ‘프렌치 디스패치’ 메인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났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문제적 태도는 ‘개들의 섬’을 통해 더욱 극명한 한계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횡보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현실을 끌고 들어와 자신의 영화적 세계에 녹여 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또 다른 도전적 시도이자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겠다는 그만의 뚝심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과연 ‘프렌치 디스패치’가 그의 이전 영화들에 재기된 현실의 중요한 문제들을 한낮 우화로 만들어버린다는 비판을 과연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렌치 디스패치’에 담겨진 웨스 앤더슨의 아름다운 영화적 세계는 거부하기에 너무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란 점이다. 한없이 아름다운 그의 영화적 세계 속에서 표현된 실재적 사건과 인물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지, 이제 그 몫은 관객들에게 넘어갔다. 만약 이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서 그의 세계에 매료된 관객들이라면 이번 역시 헤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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