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J CUP Byron Nelson 개막을 하루 앞두고, 코스 위에서 만난 두 사람
합쳐서 예순 해. 댈러스의 스티브 밴 암버그와 닷지 카터가 빨간 바지를 입어온 시간이다. 두 사람을 따로 만났지만, 결국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었다. 골프 대회 하나가 어떻게 한 도시의 일상이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이 입는 빨간 바지는 단순한 옷이 아니다. 두 사람이 속한 댈러스 지역 봉사 단체, ‘댈러스 세일즈맨십 클럽(SCD, Salesmanship Club of Dallas)’의 결속을 상징하는 오랜 유산이다. 1920년에 만들어진 600여 명 규모의 이 클럽은 지역 아이들과 가정의 정신건강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THE CJ CUP Byron Nelson’은 바로 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원들이 직접 자원봉사 해온 PGA TOUR 공식 대회다.

하트가 새겨진 바지, 100년의 약속 위에 선 CJ
스티브의 이야기는 그의 외할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1936년 외할아버지가 SCD에 가입했고 그 뒤를 아버지가 이었고, 1984년부터는 스티브가 빨간바지를 입었다. 한 가족이 9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는 걸 날씨 이야기하듯 무심하게 꺼냈다. 18년 전 처음 빨간 바지를 입게 된 닷지 역시, 사실상 이 대회와 함께 자란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5월이 되면 도시 어딘가에서 늘 대회가 열렸고, 어느 순간 자신도 대회 속에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입는 빨간 바지에는 작은 하트가 새겨져 있다. 아이들과 가정의 정신건강을 돕는 클럽의 상징이다. 닷지는 이 옷을 두고 가벼운 농담 하나를 보탰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텍사스의 5월에는 조금 덥다는, 소박한 푸념이었다. 싱거운 투덜거림이야말로 이 붉은 옷이 삶에 얼마나 완벽하게 밀착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거였다. 내 몸처럼 익숙해진 것들 앞에서는 어떤 거창한 수사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CJ가 타이틀 스폰서로 함께한 지 3년째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스티브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보통 후원사가 바뀌면 사람들은 무엇이 새로 생겼는가를 말한다. 그는 무엇을 지켜왔는가를 말했다.
“우리가 오래 지켜온 건 골프가 아니에요. 골프를 통해서 댈러스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이는 한 주를 만드는 일이었죠. CJ가 들어온 다음부터, 그 시간이 댈러스만의 것이 아니게 됐어요. 한국의 하루와 댈러스의 하루가 한 주 동안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된 거죠”
그는 이것을 헤리티지의 진화라고 불렀다. 헤리티지란 지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자신이 되는 거라고. 한 세기 가까이 빨간 바지를 입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진짜 ‘헤리티지’.

식탁과 화장대와 거실에 도착한 CJ
닷지는 같은 변화를 다른 장면으로 풀었다. 작년에 한국 셰프들이 부스에서 메뉴를 펼쳐놓고 대접한 적이 있다고 했다. 만두를 가장 좋아한다며, 처음엔 덤플링이라 부르다가 ‘MANDU’라는 발음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만두, 만두를 정말 사랑합니다” 익숙한 말 대신 만두라는 낯선 발음을 굳이 따라 해보는 그 모습이 비비고에 대한 애정이었다.
닷지의 이야기는 음식에서 가족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한국에 다녀오며 올리브영에서 화장품을 아내에게 잔뜩 사다줬고, 아내가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며느리에 선물한 것도 다들 좋아하더란다. “저는 CJ만 알지 화장품 브랜드는 잘 몰라요. 아내가 아주 잘 알죠” 브랜드 이름을 끝내 정확히 대지 못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이, 한국의 무언가가 이미 집에 들어와 있다는 가장 다정한 표시였다.
여섯살 손녀 엘시 이야기로 가자 닷지의 표정이 풀렸다. 거실에서 화면 속 한국 가수들을 따라 춤을 춘다고 했다. 한국에서 받아온, 손주들을 위해 만들어진 굿즈 옷을 아이들이 늘 챙겨 입는다고도 했다. 할아버지 집에 올 때면 꼭 그 옷을 입는다며 웃었다. 여섯 살 아이가 텍사스의 거실에서 한국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장면. 그런 장면 앞에서는 ‘K컬처의 확산’ 같은 말은 외려 초라해진다. 확산이라는 말은 너무 크고, 거실은 너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닷지가 스스로 정리하듯 한마디를 했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묶으면 결국 라이프스타일이라고.

골프를 보러 와서, 한국의 하루를 살다
“누구나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잖아요. CJ는 사람들이 고를 수 있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하나 더 내놓는 회사예요. 이 대회는 음식, 화장품, 빵집 등 한국의 하루를 한자리에 펼쳐 보이는 자리고요. 사람들은 골프를 보러 와서 한국의 하루를 한 번 살아보고 가는 거예요”
골프를 보러 와서 한국의 하루를 살아보고 간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그것이 이 대회가 향하는 방향을 가장 짧게 요약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이 대회를 광고판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일부터 나흘간 수십 만 명이 이 잔디 위를 지나갈 것이고, 사람들은 돌아가는 길에 한국의 맛과 생활 양식, K팝을 한 번 더 떠올릴 것이다. 그 일이 매년 5월 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상 안으로 걸어 들어온 K라이프스타일

스티브의 어머니는 올해 아흔여덟이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인터뷰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가 따라오고 싶다고 하셨단다. 대회 후반에 모시고 오기로 했다고 했다. 90년을 이어온 빨간 바지, 그리고 THE CJ CUP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아흔여덟의 어머니. 이쯤 되면 이건 골프 대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도시가 한 세기에 걸쳐 함께 지켜온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안으로 한국의 하루가 정중하게 걸어 들어온 이야기다.
이 대회가 그에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스티브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번 주가 끝나면 더 정확히 답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그 답을 현장에서 찾는 중이라고. 그러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가 오래 지켜온 게 있고, CJ가 새로 가져온 게 있어요. 오래된 것과 새것이 부딪히지 않고 한자리에 같이 서 있기가 제일 어려운데, 이 대회에선 그게 됩니다”
해가 기울 무렵 스티브가 자기 구역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그는 18번 홀 옆 화려한 건물을 가리켰다. HOUSE OF CJ였다. 한 세기가 지켜온 잔디 위에 한국에서 온 한 채의 집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오래 지켜온 것과 새로 들어온 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같은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문이 열리면,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 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표정 위로 비로소 드러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