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투! 원! 폭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불길이 치솟는다.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가 있으니 특수효과 전문업체 ‘이펙트스톰’의 김도형 실장이다. 특수효과 베테랑인 그가 참여한 올 추석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도 폭파를 비롯해 차량 전복, 화재 등 특수효과를 통해 구현한 장면들이 포진되어 있다. 화끈한 영화만큼 특수효과의 세계는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터미네이터 2>가 이끈 무비 월드~~
올해 추석 극장 최고 흥행작은 <나쁜 녀석들: 더 무비>다. 개봉 3주 차에 450만 명 돌파(10월 2일 기준)에 성공했다.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오구탁(김상중), 박웅철(마동석) 등 기존 드라마 캐릭터를 만나는 반가움과 ‘나쁜 놈들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는 쾌감, 그리고 드넓은 스크린으로 꽉 채우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가 즐비한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호쾌한 액션 구현에 힘을 쏟은 김도형 실장이 특수효과의 세계에 발을 들인지 올해로 13년째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500번 이상 봤다는 <터미네이터 2>가 영화 세계로 이끈 작품이다. 덕후 기질을 살짝 내비친 그는 극중 제철소 액션 장면에서 인조피부가 벗겨지는 T-800(아놀드 슈왈츠네거)를 따라하기 위해 은박지를 꽤나 썼다고. 그만큼 자신에게 이 영화가 주는 임팩트가 컸던 것. 대학 시절 미술 전공 후 특수분장으로 가게 된 것도 다 아놀드 형님 덕분이었다는 그는 <싸움의 기술> <가발> <짝패> 등 다수의 영화에 참여했다.
그랬던 그가 특수효과로 넘어간 건 2006년의 일이었다. 당시 사무실 안에서 작업하는 게 답답했고, 영화 현장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갔다. 힘들지만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찰나, 아는 선배의 부름에 특수효과를 시작했다고. 특수효과로서의 첫 작업 작품은 <예의없는 것들>. 당시 팀원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그는 영화에 특별 출연한 김민준(발레 킬라 역)이 하늘을 보고 도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가져온 턴테이블 장치 설치 업무를 담당했다. 영화의 일부분이지만, 인물의 감정선을 오롯이 내보이는 중요한 장면이기에 열심히 임했다.
<나쁜 녀셕들: 더 무비>, 리얼리티 구현을 위한 남모를 노력?
특수효과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각종 폭파, 차량 전복, 화재 효과, 눈, 비, 바람을 불어주는 자연 효과, 총격 장면 효과 등 영화에 보이는 상황을 실제로 믿게끔 도와주는 ‘연출된 효과’라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이펙트스톰 스튜디오에는 특수효과에 필요한 비를 뿌리는 살수차, 눈을 표현하는 스노우머신, 안개 효과를 주는 스모그 머신, 대형 강풍기 등이 들어차 있다.
보통 특수효과팀은 영화 사전 준비 단계부터 크랭크업 때까지 참여하는데, 사전 준비 단계에서는 특수효과가 들어가는 장면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실현 가능성과 영상 완성도에 대한 생각을 연출부, 무술팀, CG팀 등 관련 부서와 논의한다. 장소 헌팅에 따라가 각 장소에 맞게 특수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지 현장 체크도 필수. 촬영에 들어가면 각 장면에 필요한 물품과 소품을 준비해 현장에서 원활한 작업이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의 경우, 초반부 고속도로 버스 전복, 경찰차 폭파 장면, 중반부 성당 화재 장면, 후반부 옥상 격투 장면(강풍기 효과)에 주요 특수효과가 들어간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차 폭파 장면을 꼽았다. 차 폭파 장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일명 ‘깡통차’가 필요한데, 보통 엔진을 들어내고 차체만 있는 자동차가 회사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일주일 동안 폭파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을 한다. 이후 촬영 당일 작업한 차량을 현장에 가져가 정해진 곳에 화약을 설치하고, 간단하며 중요한 리허설 진행 후, 폭약 스위치를 누르면 끝!
열심히 준비한 결과인지, 경찰차 폭파 장면이 CG처럼 나왔다는 말을 현장, 후반 작업 스탭들에게 들었다고. CG만큼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것에 기분이 좋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게 찍은 실사 장면이 CG로 오인당하는 게 아쉽다고 웃픈 소회를 밝혔다.
특수효과 담당자들이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상황 대처 능력이다. 워낙 현장에서는 변수가 많이 작용하다 보니 이 능력은 필수란다. 이번 영화에서 성당 화재 장면은 이런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 부분. 극중 불이 난 성당 기둥 묶인 특수범죄수사과인 박웅철, 곽노순(김아중), 고유성(장기용)이 탈출하는 장면이었는데, 시나리오상 박웅철의 괴력으로 기둥이 부려져 인물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기둥이 세트로 만든 속이 빈 기둥이었기에 부러진 나무 단면을 새로 만들어야 했던 상황. 그는 발 빠르게 발사목(Balsa wood)을 구해 그걸 잘게 부순 후, 빈 공간에 나무 조각을 채워 넣었다. 아쉽게도 현장에서 재수정되어 기둥이 쓰러지면 피하는 거로 변경되었지만, 극중 완성도를 위해 팀원들과 노력했던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고 말한다.
적시 적소에 터지고, 불타고, 전복되는 등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두 번은 없다. 기회는 딱 한 번뿐. 김도형 실장은 출연진과 스탭들의 안전을 위해 확인 또 확인한다. 폭파 장면일 경우에는 회사에서 폭파 컨트롤 박스를 확인하는 건 기본, 배우 동선을 체크하고 화약이 터지는 곳에 깃발을 설치한 다음 리허설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
화재 장면 경우, 호러 장르는 찐한 불꽃색이 나는 경유를, 멜로 장르는 맑은 불꽃색이 표현되는 알코올 등 장르에 따라 어떤 걸 사용할지 선택한다. 불을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트는 대부분 얇은 나무라 빨리 끄는 것도 중요하다. 순간 방화범이 되었다가 바로 소방 요원로 변신하는 그와 팀원들. 그만큼 언제나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현장을 배움터로, 정확성과 전문성에 올인!
한 해 기준으로 이펙트스톰이 참여하는 영화는 약 20편. 이 중 5편 내외를 김도형 실장이 맡고 있다. 지난해 작업했던 영화 중 올해 개봉한 작품만 살펴봐도 <나쁜 녀석들: 더 무비>를 비롯해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악인전> <우상> <증인> 등이 있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해오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몸으로 부딪히면서 얻은 값진 노하우를 통해 특수효과의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단독으로 첫 특수효과 실장을 맡았던 <탈주>, 전쟁 영화 폭파 노하우를 얻은 <서부전선>, 총격 장면과 피탄(피와 비슷한 액체주머니)이 터지는 장면의 절묘한 합을 경험했다는 <강철비> 등 그에게 현장은 곧 실전 이자 배움터로 활용되고 있다.
그가 다양한 특수효과 중 자신 있는 건 자연효과다. 팀원들에게 농담처럼 “빗방울에도 감정을 실어서 뿌려야 해”라고 말할 정도라 나름대로 ‘비부심’이 있다. 그만큼 실제 비가 오는 것처럼 구현해야 관객이 믿는다고. 비, 눈, 바람 등 자연효과를 잘 보이기 위해서는 많이 뛰고, 장비를 옮기는 등 성실함이 갖춰져야 한다고. 이런 전문성을 얻기 위해 비나 눈이 오면 하염없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 직업병도 생겼다 말한다.
김도형 실장에게 엔딩크레딧은 두 가지 의미로 존재한다. 한 편을 또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의 자랑거리다. 어느 날 아들이 자신이 참여한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다가 아빠의 이름이 나오자 좋아했고, 이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는 일화를 아내에게 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일의 보람이 이젠 나만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의 것으로 커졌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엔딩크레딧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일에 매진하는 김도형 실장은 현재 최민식, 박해일 주연의 <헤븐>이랑 김영광 주연의 <미션 파서블>에 참여 중이다. 두 영화 모두 올해가 가기 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특수효과라는 일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상상하는 걸 현실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어려움도 있지만, 해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가 아닌 리얼리티를 살리는 주요 요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오래도록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한 편의 영화에서 특수효과는 맛있는 음식의 고명과도 같은 존재다. 빼도 맛에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놓으면 음식의 시선이 가고 맛을 보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 어쩌면 특수효과는 영화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가장 안전한 촉진제로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짧은 장면이라도 영화 속 가장 사실적이고 임팩트 강한 효과를 주기 위한 그의 노력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