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1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하얀 설탕이 쏟아지던 날.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습니다.
종합식품회사에서 식품·생명공학·유통·엔터테인먼트의 4대 사업군을 선도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CJ가 걸어온 도전과 개척, 창조와 성취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7화. 따뜻한 밥 위의 ‘백설햄’… 국민 반찬을 바꾸다
1980년 12월 9일 경기도 이천 제일제당 육가공공장 앞마당. 흰 위생 모자를 쓴 직원들이 양옆으로 도열했습니다. 그 가운데로 냉동차 한 대가 멈췄습니다. 트럭 앞부분엔 꽃으로 장식한 화관과 함께 흰 바탕에 파란 글씨로 크게 적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백설햄 첫 제품 출하’.
당시 제일제당 대표이사가 제품 한 박스를 직접 차량으로 옮겼습니다. 이윽고 제품을 가득 실은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출발했지요. 직원들은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분홍 소시지’를 기억하시나요? 값비싼 고기 대신 생선 살과 밀가루를 뭉쳐 만든 옛날 소시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햄’ 하면 모두 이 분홍 소시지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요즘 눈높이로 보면 저품질의 소시지였지만 이마저도 먹기 어려워 부유층에서나 먹는 고급 식품이란 이미지가 강했지요.
우리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저가의 분홍 소시지 대신 고기로 만든 햄, 육류의 풍미가 있는 햄을 선호하기 시작했지요. 여기엔 제일제당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맛과 품질을 인정받으며 오래도록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제일제당의 백설햄. 그 역사를 짚어봅니다.
육가공사업 본격 진출, 종합 식품 계열화를 이루다
제일제당이 육가공 사업을 처음 검토한 것은 1974년입니다. 우리 국민의 식생활 패턴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하던 시기였죠. 1976년 7.7kg이던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이 1978년 10.2kg까지 늘었습니다. 소고기 위주의 소비 패턴도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으로 확대되고 있었고요.
식품의 고급화·간편화 바람이 불던 이 시기를 제일제당은 가공육 사업을 시작할 적기로 판단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 등에 돼지고기를 수출하고 있었는데요. 제일제당은 용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양돈장을 세우며 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79년 12월 제일제당은 기획개발실 내에 육가공 사업팀을 발족했습니다. 당시 한두 업체를 제외하면 관련 시설이나 가공 기술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습니다. 설비와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잠재수요를 적극 발굴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사업이었죠.
제일제당은 곧바로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덕평리 일대에 공장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1980년 5월 시작된 공사가 6개월 만에 완공됐습니다. 햄, 베이컨, 소시지 등 10여 종의 육가공 제품을 하루 15t씩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당시 국내 육가공 제품의 일일 생산량이 50여 t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준이었죠.
무엇보다 종합식품 계열화의 꿈을 실현한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용인 양돈장을 건설해 축산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인천2공장의 배합사료공장 건설로 사료를 자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 육가공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완전 자립 순환’의 사업 구조를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백설햄 첫 출시, “독일의 맛을 살린 정통 햄”
1980년 12월, 드디어 첫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제일제당은 이미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백설’의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를 십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브랜드명을 ‘백설햄’으로 정한 것입니다.
당시 최대 경쟁 상품은 3개월 먼저 시중에 나온 롯데햄의 ‘살로우만’이었습니다. 후발 주자였던 제일제당에겐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했죠. 제일제당은 햄의 본고장 독일의 맛을 살린 ‘독일 정통 햄’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기술제휴를 맺은 라스팅사는 독일 현지 육가공업체 맛 테스트에서 4년 연속 우승한 저력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이를 부각하기 위해 TV 광고에도 독일인 요리사를 출연시켰습니다.
판매망도 새롭게 구축했습니다. 슈퍼마켓, 백화점 등 대형 거래처를 확보해 직접 제품을 공급하면서 중간 유통망을 줄였습니다. 콜드시스템을 갖춘 탑차를 운행해 안전상, 위생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원천 차단했고요. 가정주부들이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소포장 위주로 상품화하고, 시식코너·무료 증정 행사 등 적극적인 판촉 행사도 벌였습니다.
육가공업계 최초 매출 100억 원 돌파… 흔들림 없는 1위
백설햄의 판매 실적은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공급량이 모자랄 정도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일제당 이천공장은 24시간 풀가동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신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죠.
당시 육가공 제품은 어육 중심의 혼합제품과 햄·베이컨 등의 축육제품으로 나뉘었습니다. 제품 소비 양상은 혼합제품에서 축육제품으로 바뀌는 추세였죠.
사업 출범 1년 만에 제일제당은 축육제품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34.8%를 차지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 육가공 업계에 가장 늦게 진출한 후발 주자가 1년 만에 이룩한 성과였습니다. 1982년엔 축육제품 시장점유율이 49%까지 뛰었습니다. 전년 대비 100% 이상 늘어난 수치였죠. 혼합 제품도 5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제일제당은 출범 2년 만에 국내 육가공 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명실공히 업계 1위로 도약하게 됩니다. 어육 중심의 혼합제품이 주종을 이루던 국내 육가공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
부유층 식탁에만 올랐던 스팸, 제일제당이 만들다
1980년대 중반 국내 육가공업계는 1위 기업인 제일제당을 필두로 롯데햄, 진주햄, 한국냉장 등 여덟 개 업체의 경쟁 체제였습니다. 제일제당은 국민 식생활 패턴에 맞는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1985년 13개 품목을 출시한 데 이어 1986년 14종, 1987년 16종의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그중 ‘스팸’의 인기가 단연 높았습니다. 스팸은 1986년 3월 제일제당이 미국 육가공업체인 호멜사와 라이선스 생산 계약을 맺은 제품이었죠. 이전까지 한국에서 스팸은 미군과 부유층이 먹던 고급 식자재였습니다.
제일제당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서 스팸은 가까운 슈퍼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육가공품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제품을 출시한 1987년 첫해에만 스팸 500t이 팔렸죠. 당초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실적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매출이 두 배로 늘었고요.
“세계적인 명성, 세계적인 품질! 스팸을 제일제당이 만듭니다”. 당시 제일제당의 첫 광고 문구에선 ‘빠른 경제성장을 일군 한국이 직접 스팸을 만들어 파는 시대가 왔다’는 자부심이 엿보입니다. ‘따뜻한 밥 위에 스팸 한 조각’을 광고 문구로 내세운 백설햄 스팸은 곧 캔 햄의 대명사가 됐고, 제일제당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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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도 공인받은 최고의 품질
제일제당은 1985년 11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휘장 사업 공식 공급업체로 선정됐습니다. 당시 휘장 사업권은 한 품목당 한 개 업체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국내 육가공 제품 중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었죠. 1987년 3월엔 제일제당의 ‘백설햄 비엔나소세지’와 ‘후랑크소세지’가 국내 최초로 KS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내 육가공 식품의 소비량이 급속도로 늘었지만 업계 사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1987년 캔 제품 시장이 개방되고 올림픽 이후 수입자유화가 본격화되면서 값싼 수입품들이 국내시장에 쏟아졌습니다. 원료육 가격은 폭등했고요.
제일제당은 일본, 독일 등 해외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신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다방면으로 기술을 축적한 끝에 1990년 11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육가공의 본고장인 독일 농업협동조합(DLG) 품질 평가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의 맛 ‘백설표동그랑땡’, 히트 상품의 탄생
1990년 제일제당은 ‘백설표동그랑땡’과 불고기 맛을 살린 ‘백설표불고기후랑크’를 개발했습니다. 수입 개방으로 요동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해 “잊혀가는 향토음식을 복원하자”라는 모토로 내놓은 제품이었습니다. ‘동그랑땡’ 이름을 상품명에 그대로 넣어 인지도를 높이고 전통의 맛을 살렸죠.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가장 인기가 좋았던 냉동만두시장을 빠르게 대체하며 판도를 바꿀 정도로 고객의 사랑을 받았죠. 1992년 동그랑땡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82.5% 늘었습니다. 육가공업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중에도 단연 백설햄 동그랑땡의 인기가 높았지요.
이후 후발 주자들이 나와 경쟁이 치열해지자 제일제당은 신제품을 대거 출시했습니다. ‘새우동그랑땡’과 ‘왕동그랑땡’을 시작으로 ‘핫도그골드’ ‘더블후랑크’ 등 다양한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 2만 8228t을 생산해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삶과 맛의 즐거움을 구현하는 라이프스타일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를 휩쓴 화두 가운데 하나는 ‘웰빙(Well-being)’ 이었습니다. 식품을 비롯해 모든 생활 트랜드를 “잘 먹고 잘 살자”라는 깃발을 내건 ‘웰빙족’이 휩쓸었지요. 새로운 소비문화의 탄생이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던 육가공 시장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돼지고기, 소고기 등 신선육 소비는 증가하고 냉장햄 소비는 위축됐죠. 특히 식품첨가물 이슈가 불거지면서 안전한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날로 커졌습니다.
제일제당은 ‘무첨가’ ‘신선유통’ ‘건강’ 콘셉트를 강조하며 난관을 정면 돌파했습니다. 2007년부터 신선식품 대표 브랜드인 ‘프레시안’ 런칭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안전하고 신뢰 가는 원료만 사용한다’ ‘맛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삶의 즐거움을 구현한다’. 당시 프레시안의 미션이었습니다.
2010년엔 5월엔 프레시안의 ‘The더건강한 햄’이 탄생했습니다.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햄에 많이 들어가는 합성아질산나트륨, 합성착향료, 합성보존료 등 6가지 식품첨가물을 뺐습니다. 국내산 순돈육 함량을 90%까지 높이며 고기 본연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살렸죠. ‘어린 자녀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햄’이란 입소문이 나면서 자녀를 둔 30대 주부층의 재구매율이 특히 높았습니다.
‘무첨가’ 트렌드를 주도한 ‘The더건강한 햄’은 출시 6개월 만에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고 출시 28개월 만에 누적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냉장햄 시장에서 단일 브랜드로 출시 3년도 채 안 돼 누적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것은 The 더 건강한 햄이 최초였습니다.
이제 육가공품은 단순히 밥에 곁들여 먹는 밥반찬의 지위를 넘어섰습니다. 고기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죠.
제일제당은 2018년 5월 ‘The더건강한 델리카트슨 시리즈’를 런칭해 이탈리아식 판체타,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소시지 등 가정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유럽 정통 레시피를 선보였습니다. 출시 한 달 만에 35만 개 판매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화제가 됐죠. 밥반찬에서 식탁의 화려한 메인 요리까지. CJ제일제당은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발맞춰 한계 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