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갓난아기부터 어린이,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은 물론 토끼, 거북이 같은 동물, 때로는 돌, 똥 같은 무생물도 만화에서는 살아 움직인다. 이 모든 캐릭터에 목소리만으로 감정과 성격,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성우다. 그런데, 만화에만 존재하는 이 캐릭터의 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올해 투니버스 11기 전속 성우로 선발된 김동현, 박이서 님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기회는 3년에 한 번뿐! 투니버스 11기 성우로 선발된 이들
Q. 조금 늦었지만, 성우 11기로 선발된 것을 축하한다. 선발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그간 어떻게 지냈나.
김동현 (이하 ‘김’) :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며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녹음이 있는 날에는 녹음에 참여하고, 없으면 주로 대본 연습을 한다. 오디션을 통해서 배역을 맡기도 하고, PD님들이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비중 있는 역할까지 다양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박이서 (이하 ‘박’) : 투니버스 작품 중 잠깐 등장하는 배역부터 조금씩 참여하고 있다. 동기 대부분이 ‘짱구는못말려:더비기닝’, ‘안녕! 보노보노 7’ 등의 작품으로 데뷔를 했는데, 내 경우에도 ‘짱구는못말려:더비기닝’을 시작으로 ‘명탐정 코난 2021’,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 지난 9월 16일 첫 방송을 한 ‘신비아파트 고스트볼Z: 어둠의 퇴마사’ 등에 참여했다.
Q. 이번 공채는 채용 방식이 기존과 좀 달랐다고 들었다.
박 : 투니버스 성우 공채는 1차 음성 파일 제출, 2차 동영상 심사, 3차 실기 심화, 4차 최종 면접 순으로 진행된다. 이번 공채는 코로나19 때문에 2차가 영상으로 대체됐고, 3, 4차가 통합됐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덕에 카메라 앞이 더 편했기 때문에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 준비는 1년 반 정도 했는데, 이번 공채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간절한데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되니 눈물이 나더라. 그래도 내가 즐거워야 심사위원도 즐거운 마음으로 볼 거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그 덕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김 : 어릴 때부터 성우가 되고 싶어서 마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방학 때마다 서울에 올라와 성우 준비를 했다. 기간으로만 따지면 4~5년 정도 준비한 셈이다. 중간중간 공채가 있으면 지원하기도 했는데, 1차에 합격한 건 투니버스가 처음이었다. 귀한 기회인 만큼 최종 면접까지 내 매력을 최대한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전형에 임했다.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 냈기 때문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Q. 두 분 모두 전속 성우로서 처음 활동하는 것인데, 첫 녹음을 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박 : 마이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을 잡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마이크에서 얼마나 얼굴을 떼야 하는지도 몰라 초반에는 마이크에 신경 쓰느라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행히 입사 후 한 달 동안 따로 마련된 트레이닝 시간에 동기들과 더빙도 해보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이제야 감이 좀 잡힌다.
김 : 투니버스 녹음실 마이크 성능이 너무 좋다는 게 문제(?)였다. 연기할 때 나도 모르게 몸을 많이 쓰는 편인데, 조금만 움직여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 녹음되더라. 이제는 액션 장면이 있어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려고 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수많은 캐릭터를 표현하는 비결은?
Q. 첫 대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
김 : 모든 성우들이 첫 대사는 기억하고 있을 거다. ‘짱구는못말려:더비기닝’ 20-3화: 로베르트랑 전골을 만들어요로 데뷔를 했는데, “처음 뵙겠소이다. 무사 백동수라고 하오맛!” 이 첫 대사였다. 보통 조연은 ‘앗!’, ‘으으’ 등 호흡 연기가 많은데, 데뷔하는 캐릭터에 이름도 있고, 대사도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첫 대사를 받고 신이 나서 ‘무사 백동수라고 하오!’라고 외치며 다녔는데, 정작 녹음실에서는 너무 긴장한 탓에 NG를 많이 내서 PD님한테 죄송했다. (웃음)
박 : 김동현 님과 마찬가지로 ‘짱구는못말려:더비기닝’ 7-2화: 철수랑 바꿔서 살아 봐요가 첫 작품이었다. 내 첫 대사는 “저쪽으로 가보자” 였다. 그 한 줄을 녹음하는데 너무 떨려서 몇 번이나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동기들이 틈만 나면 ‘저쪽으로 가보자!’ 이렇게 말을 하면서 놀리는데, 그만큼 성우들에게 첫 대사는 큰 의미다.
Q. 이제는 꽤 많은 작품에 참여했겠다. 최근에는 ‘신비아파트 고스트볼Z: 어둠의 퇴마사’ 녹음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김 : ‘신비아파트 고스트볼Z: 어둠의 퇴마사’ 2화에 등장하는 윤수 역을 맡았다. 저주받은 안경을 써서 귀신을 보는 아이인데, 놀라는 장면이 많아 ‘어어’, ’으악’ 같은 감탄사가 자주 나온다. 이런 감정을 연기하려면 이 캐릭터에 공감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공포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이전 ‘신비아파트’ 시리즈 영상도 찾아보면서 나름의 연구를 했다. 이를 기반으로 녹음할 때 윤수의 상황, 감정에 접목시켜서 연기했다.
박 : ‘신비아파트 고스트볼Z: 어둠의 퇴마사’ 1화의 유라, 2화의 양호 선생님, 4화의 현지 역을 맡았다. 유라는 극중 마지막에 회상하는 장면과 함께 귀신이 생긴 이유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짧은 시간 여러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데, 장면이 바뀌어도 유라의 감정선이 끊기지 않게 유라의 마음이 어떨지 되뇌며 녹음에 참여했다.
박 : 평소 주변에서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많이 관찰하는 편이다. 나중에 역할이 들어왔을 때 사용할 수 있게 다양한 사람들의 말투, 톤, 표정, 감정 등을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거다. 그리고 배역을 맡았을 때 이런 기억을 살려 캐릭터에 적용하려고 한다. 호흡 연습할 때에는 캐릭터와 비슷한 행동을 직접 해본다. 물건을 당기는 호흡을 연기할 때에는 집에서 이불이라도 끌어당겨 보고, 칼을 맞아야 하면 직접 배라도 쳐 보는 식이다.
김 : 캐릭터 분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캐릭터의 성격, 극 중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극의 흐름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이렇게 분석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법은 선배님들의 영상을 통해 많이 배운다. 또,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보는 연습을 한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내릴 때 차분하게 계단을 내려가면 되는데 ‘읏차, 읏차’ 이렇게 작은 소리를 내는 거다. (웃음)
목소리로 기억되고, 목소리로 소통하는 직업, 성우!
Q. 평소 목 관리, 발성 연습도 열심히 해야겠다.
박 : 혀가 굳어지지 않게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연습을 많이 한다. 책을 읽다 헷갈리는 발음이 있으면 바로 사전을 찾아본다. 이렇게 배움을 축적해 놓아야 처음 받는 대본도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 관리는 대단한 건 없다. 물을 많이 마시려고 노력하고, 배도라지 즙, 꿀, 등 목에 좋다는 건 잘 챙겨 먹으려고 한다.
김 : 목 관리를 위해 물은 하루에 2L는 먹는 것 같다. 이서 님처럼 배도라지 즙도 먹고. (웃음) 목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먹기도 한다. 발성 같은 경우에는 평소 발음이나 소리를 최대한 크게 내보려 하는 편이다. 동기들이 시끄럽다고 놀릴 때도 있지만 평소 웃을 때에도 일부러 소리를 내서 웃는 연습을 한다.
Q. 캐릭터 분석부터 연기, 발성, 목 관리까지 평소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게 만드는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김 :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도 공룡이나 똥 역할을 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성우는 가능하다. 최대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볼 수 있다는 게 성우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부터 팬이었던 선배님들과 같은 작품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다.
박 : 내 안에도 여러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성우라는 직업을 통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갓난아기부터 토끼, 똥 등의 역할도 맡았는데,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는 것들 것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Q. 앞으로 3년간 투니버스 전속 성우로 활동하게 될 텐데, 어떤 성우가 되고 싶은가.
박 : 투니버스 작품에 참여한 뒤로 주변 사람들, 특히 조카들이 정말 좋아한다. 내가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꿈을 갖고, 기쁨과 슬픔을 느꼈던 것처럼 내 끼와 재능을 살려서 많은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전달하는 성우가 되고 싶다.
김 : 지금은 선배님들을 따라가기 위해 애니메이션도 열심히 보고 더 연습하는 중이다. 이렇게 연기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서 누구에게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그런 성우가 되고 싶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내 목소리가 들리는, 목소리로 기억에 남는 성우가 목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투니버스 11기 전속 성우로 선발된 김동현, 박이서 님. 투니버스를 보며 자라고, 성우의 꿈을 키웠던 이들이 지금은 성우로서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처럼 투니버스 작품 곳곳에 생생한 목소리로 살아 숨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