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남부의 휴양 도시 팜 스프링스. 사막과 암석 지대, 야자수, 그리고 고급 리조트가 경계 없이 공존하는 그 곳에서 신인 감독 맥스 바바코우는 한 편의 요상한 백일몽을 꾸었다. 팜 스프링스에서 열리는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남녀가 영문을 모른 채 그 하루 안에 영원히 갇혀버린다는 이야기인 영화 ‘팜 스프링스’는 익숙한 타임루프 장르 안에 별난 캐릭터와 코미디를 뒤섞어 돌파구를 찾았다. 벌어지는 일들은 거창하고 신비롭지만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는 점에서 황당한 꿈의 속성과 꼭 닮았다.
아무리 깨어나고 또 다시 깨어나도 계속해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설정은 어느덧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팜 스프링스’에는 장르의 컨벤션을 뛰어넘는 생기가 있다. 미국 코미디 드라마 ‘브루클린 나인 나인’으로 사랑받는 배우 앤디 샘버그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크리스틴 밀리오티, ‘위플래시’의 J.K. 시몬스가 펼치는 노련한 재간도 여기에 일조한다. 선댄스 영화제와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사랑받았던 ‘팜 스프링스’의 매력을 소개한다.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팜 스프링스’, 꿈인가? 장난인가?
영화가 시작되면 나일스(앤디 샘버그)는 여자친구 미스티(메레디스 해그너)가 바쁘게 단장 중인 광경을 보며 호텔의 침대에서 깨어난다. 바깥은 리조트 결혼식을 준비 중인 사람들로 분주하다. 이윽고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린다. 무료한 나일스는 모범생처럼 보이는 신부와 달리 집안의 골칫거리임이 분명한 신부의 언니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둘은 곧 밤의 사막 한가운데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서부극의 악당처럼 분장한 로이(J.K. 시몬스)가 나타나 나일스를 향해 활을 쏘기 시작한다. 꿈인가? 장난인가? 그 사이 나일스는 피를 철철 흘리며 도망치다가 악마의 입처럼 붉은 기운을 내뿜는 어느 동굴 속으로 사라진다. 눈 앞에서 나일스가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세라는 혼비백산한 채로 우선 그를 따라간다.
여기까지가 (겨우) 영화의 초반 설정이다. 설정 소개에 가까운 전개만으로도 ‘팜 스프링스’는 고약한 기운을 유쾌하게 피어 올린다. 아름다운 결혼식은 갑자기 B급 활극으로 바뀌더니, 대놓고 조악한 티를 내는 CG와 함께 비밀 동굴이 주인공들을 잡아 삼킨다.
‘사랑의 블랙홀’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점은 이것!
코미디인지 호러인지 분간도 할 수 없는 이 교란의 시간이 끝나면 그제야 이 동굴을 매개로 나일스가 실은 100만번째 똑같은 하루를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동네 주민이자 결혼식 하객이었던 로이는 어느날 나일스가 실수로 함께 동굴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나일스와 함께 똑같은 매일을 살게 된 인물로, 나일스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품고 있다. 한편 이 해프닝에 세 번째로 휘말린 주인공인 세라는 나일스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타임루프의 동굴은 사랑이 일으킨 지진 속에서 점차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1993) 이후 타임루프물은 똑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살게 된 인물들이 결국 자신의 과오를 목도하고 ‘인간됨’의 교훈을 얻어내는 주제로 풀이돼 왔다. ‘사랑의 블랙홀’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던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어느덧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면서 결국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고 사랑을 배우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팜 스프링스’의 인물들은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괴짜들의 타임루프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지독한 아웃사이더인 둘은 하루를 아무렇게나 망쳐도 좋고, 죽어도 좋은 매일의 지속에 우선 열광부터 한다. 똑같은 하루를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만약 행운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거기에 걸맞은 놀라운 쾌락의 장을 펼쳐낼 것이다.
나일스의 삶에서 보이는 우리의 모습?
이처럼 단순하고 뻔한 전제(장르)로부터 놀라운 생기를 도출해내는 능력이 ‘팜 스프링스’가 가진 최고의 자질이다. 나일스는 수백 수천번의 하루를 경험한 끝에 타임루프 세계관에 순응하는 삶을 택한 인물이다. ‘어차피 다시 깨어날 거, 오늘 하루도 대충 웃기게 산다’라고 마음먹은 남자의 하루는 그 자체로 장르의 컨벤션을 비튼다.
문제는 그런 나일스의 모습이 실제 우리 삶과 아주 다르지도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내일이 없는, 그래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나일스가 느끼는 체념과 권태, 그리고 묘한 도피성 일탈은 보면 볼수록 익숙한 무엇이다. 남의 잔치에 가서 들러리가 되는 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은 지루한 일상에 파묻히는 일,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점점 더 방어적인 사람이 되는 일. 시간의 굴레에 붙잡힌 나일스의 모습은 펼쳐진 시간 앞에 고통받는 보통의 우리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결국 나일스와 세라에게도 한계점이 찾아온다. “이건 모두 가짜”라고 여기기 시작한 세라는 어떻게든 탈출의 방법을 모색하는 데 반해 나일스는 계속 안주하길 바라면서 둘은 갈등한다. 때가 되면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둘은 그렇게 각자 숨기고 있던 과거의 상처, 특히 관계의 실패와 실수를 꺼내 놓게 된다. 두 사람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 그래서 결코 대면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라고 ‘팜 스프링스’는 말한다.
독배인지 성배인지 끝까지 구분이 불가능하지만 일단 삼켜야만 하는 것. ‘팜 스프링스’의 타임루프는 얼른 그 사랑이라는 묘약을 삼키라고, 그러면 놓아주겠다고 주문하는 신의 재촉에 가깝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한 두 ‘루저’의 소동극을 보고 있으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이제는 가히 통속적으로도 들리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하라, 단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과거로부터의 자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팜 스프링스’는 미래까지 통제하기에 나선 결과물이다. 그 결과 나일스와 세라는 이런 실천도 보여준다. 사랑하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