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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프랑스에서 800만 관객을 동원하고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극장에서 사랑받았던 영화 ‘아멜리에’가 20주년을 맞이해 국내 극장가에 귀환한다. 재개봉의 묘미는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세상의 변화를 살피는 데 있기도 한 법. 20년 전 프랑스는 물론 ‘뉴욕타임즈’, ‘타임’ 등의 미국 언론 또한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았던 이 달콤살벌한 동화는 장담컨대, 여전히 유년의 보물상자를 오랜만에 열어보는 듯 마음을 출렁이게 할 것이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이리언4’에 이은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네번째 장편영화, 배우 오드리 토투를 세계적 스타로 부상시킨 ‘아멜리에’를 돌아보았다.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아멜리에’를 처음 마주하는 이들에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멜리에, 그리고 오드리 토투(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몽마르트르 카페의 웨이트리스 아멜리에(오드리 토투)의 혈관엔 상상과 모험의 피가 흐른다.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죽은 어느날 밤, 욕실 벽 속에서 한 소년의 오래된 보물 상자를 우연히 발견한 아멜리에는 이젠 장년이 된 주인을 찾아 물건을 돌려준다. 무기력했던 남자의 얼굴에 추억의 온기와 달콤함이 서리는 순간 아멜리에는 깨닫는다. 남을 도와 행복하게 만들면 그 환희가 반드시 자신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성의와 재능, 시간이 넉넉한 스물 넷의 젊은 여자는 그렇게 이웃의 어려움을 돕는 일에 무엇하나 평범히, 그리고 허투루 임하지 않는다. 스스로 의뢰인을 점 찍은 탐정처럼 치밀하게 단서를 뿌려 누군가를 유인하거나, 사소한 것들을 조작하고 꾸며내 늘 똑같았던 일상에 획기적 변화들을 이끄는 게 아멜리에의 새 비밀 직업이다. 이름도 몰랐던 남자에게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는 것에서 시작된 이벤트는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 카페의 점원과 손님들, 단골 채소가게의 사장과 직원 등에게로 세력을 뻗친다.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이후 감독과 호흡을 맞춘 니노 역의 마티유 카소비츠는 배우뿐만 아니라 영화 ‘증오’, ‘크림슨 리버’의 연출을 맡은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모든 것이 대체로 순탄할 것만 같던 어느 때, 아멜리에에게도 최대 난제가 찾아온다. 파리 지하철역 마다 설치된 즉석 사진 부스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증명 사진을 모으는 의문의 남자 니노(마티유 카소비츠)와 만난 것이다. 저 남자는 도대체 무엇일까. 남을 돕기만 하던 아멜리에는 이제 자신에게도 도움이 필요함을 직감한다. 그녀는 아마도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장 피에르 주네의 이상하고 달콤한 나라 영화 ‘아멜리에’의 메가폰을 잡은 장 피에르 주네(우)와 주연을 맡은 오드리 토투(좌)(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기괴하고 암울한 이미지를 털어낸 자리에 ‘아멜리에’는 장 피에르 주네의 것이라기엔 한결 생경한 낭만과 행복을 심는다. 물론 표면이, 아니 적어도 표면이 그렇단 얘기다. 감독 스스로 “사적이고 행복한 영화”로 기획한 로맨틱 코미디 ‘아멜리에’는 극 중 캐릭터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취향을 집요하게 고백하는 단편 ‘쓸모없는 것들’(1989)의 아이디어를 확장한 결과다. 타인의 행복을 궁리하는 아멜리에가 벌이는 사건·사고는 분명 흥미진진하긴 하나, 이 영화의 정수는 그 과정에 깃든 세밀한 디테일에 있다. 너무도 사소하고 쓸모없는 것들, 하지만 그렇기에 결정적으로 각자의 자아를 이루는 조각들. 그 디테일의 감각에 천착하는 감독이 바로 장 피에르 주네다. 연애나 출세 같은 것엔 도통 관심이 없는 여자 아멜리에는 채소 가게에서 몰래 곡물 푸대기 속에 손가락을 쑥 집어 넣을 때, 냇가에서 물수제비를 뜰 때 삶의 기쁨을 느낀다. 그 오감의 희열만이 아멜리에를 진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멜리에’의 독특한 미장센과 색감은 20년이 지나도 유효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양식적인 미장센이 감독의 관점을 담아내는 강렬한 도구일 수 있음을 믿는 장 피에르 주네는 인공적 상상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이다. 그가 해석한 사랑스러운 몽마르트 풍경은 지극히 파리다운 한편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기차역과 카페,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된 오래된 주택처럼 실제 공간을 무대로 삼되 작은 간판과 소품, 벽면의 색감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보정으로 일일이 새로 만진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배경 미술은 장 피에르 주네 영화에서 차라리 수월한 작업에 가깝다. 극단적 클로즈업과 고속-저속 촬영, 내면을 이미지로 심상화하는 만화적 콘티, 상황을 속도감있게 스케치하는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편집 등 당시로서는 가히 하이테크적이라 할 만한 촬영 기술이 쉴 틈 없이 전면에 떠오른다. 이 지점에서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낸 MTV 출신의 비주얼리스트들과 장 피에르 주네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에겐 아날로그와 노스탤지어를 향한 독창적인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멜리에’에선 영화의 지배적인 색감과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있어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이 중대한 영향을 끼친 듯 보인다. 할리우드에서 ‘에어리언4’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장 피에르 주네가 10년 전(1991년)의 영화적 전범을 떠올리며 채색한 ‘아멜리에’. 그 속엔 자신을 감동시킨 향수 가득한 아이디어들을 과감히 뒤섞는, 포스트모던한 창작자로서의 장 피에르 주네의 특기가 서려있다.  고독한 도시인의 동화 ‘아멜리에’가 고립된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건 그녀 주변의 인물들만 봐도 알 수 있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아멜리에’를 구성하는 탁월한 시각적 아이디어들을 경쾌하게 늘어놓아보면 어쩐지 어색하고 초조한 기분이 찾아온다. 고독한 어른들의 이야기인 ‘아멜리에’가 보통 사람들의 불행과 비참함으로 꽤나 촘촘히 수놓아진 영화라서다. 외도 중 사고로 사망한 남편을 여전히 기다리는 집주인, 온갖 알레르기와 신경통을 앓는 카페 점원, 상대를 진정 사랑하지 못하고 늘 의심하는 손님, 아내와 사별 후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아멜리에의 아버지, 뼈가 약해 유리인간으로 불리며 가구마다 천을 덧대어 놓고 사는 은둔형 미술가…… 낭만의 덧칠을 걷어내면 ‘아멜리에’의 도시인들은 각자의 철저한 고독 속에서 탈진 상태다. 이들은 대체로 신경증을 앓고 있으며 가난으로부터도 그리 멀지 않다. 영화는 결핍 가득한 군상 속에 아이처럼 쾌활하고 순진무구한 아멜리를 세워두고 그러니까 우리에겐 동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몽상적인 반도네온이 선율을 지속하는 한, 장 피에르 주네의 시각적 판타지아가 지속되는 한, 이 영화엔 삶의 누추함을 잠시 제치게 하는 힘이 있다. 채소 가게 직원이 동네 사람들의 집 열쇠를 들고 빈집을 드나드는 문화, 아무렇지 않게 망원경으로 이웃집을 엿보는 설정은 지금의 시선에서 종종 위험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멜리에’ 속 관음과 침범의 행위는 그저 투박하게 교류 중인 것 같은 우리들의 생이 얼마나 서로 긴밀히 연루되어 있는지 드러내는 상징적 표지다. 아멜리에의 역할은 각자의 집과 일터에서 고립된 이들을 바깥으로 끌어내 무감해진 오감을 일깨우는 것이며, 그 행위를 통해 끝내 자신의 집에 결국 새로운 사랑을 끌어들인다. 타인의 행복과 사랑을 도와 비로소 자신도 그것을 얻는다는 이 우화적인 메시지를, 2021년의 당신은 믿을텐가. ‘아멜리에’를 보고 나면 믿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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