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개되는 대부분의 신작을 보면, 이미 익숙한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프랜차이즈 IP(지적재산권)가 콘텐츠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프랜차이즈 IP란 하나의 인기 IP를 중심으로 시즌제, 스핀오프, 리부트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며 장기적으로 IP 가치를 지속 확대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마블>,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CSI>,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 등의 장르물 미드 그리고 <원피스>, <포켓몬>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까지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스타워즈>는 테마파크로까지 확장되며 IP의 상업적 가능성을 극대화한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는 어떨까. 2000년대 초반 주요 방송사들이 실험적으로 시즌제 드라마를 도입했지만, 당시에는 시청률과 제작 환경의 한계 속에서 대부분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다수의 히트작이 시즌제를 기반으로 연속 제작되며 사실상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출발점에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가 있다. 지난 2007년 첫 방송돼 2019년 시즌 17까지 이어진 <막돼먹은 영애씨>는 국내에서 일찍이 ‘시즌제’를 대중적으로 안착시킨 선도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30대 중반 평범한 직장인 영애(김현숙)의 일과 사랑을 담아내며 현실 공감대를 자극한 것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영애’와 함께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하며 시즌 내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프랜차이즈 IP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애니메이션 세계관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 초기 성공 사례다.
■ 시즌제 드라마가 계속 나오는 이유
되돌아보면 신선하고 파격적인 형식이었던 시즌제 드라마는 주로 케이블 채널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특히 CJ ENM 계열 채널들이 이러한 시도를 주도하며 새로운 제작 흐름을 이끌었고, 히트작도 쏟아져 나왔다. 국내 대표 드라마 시리즈물로 꼽히는 tvN <응답하라>, <슬기로운> 시리즈는 물론, 국내 먹방 드라마 유행을 선도한 tvN <식샤를 합시다>, 미드 스타일의 시즌제 장르물 선두 작품인 OCN <보이스>, 웹툰 원작에 기반한 시리즈 로맨스물 티빙 오리지널 <유미의 세포들> 시리즈, 최초의 군슐랭 드라마 티빙 오리지널 <취사병 전설이 되다>까지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에서 프랜차이즈 IP의 가능성과 저력을 입증해왔다.
프랜차이즈 IP의 성공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공감의 정서와 보편성이다. 세 편으로 이어진 <응답하라> 시리즈는 1980~1990년대를 배경으로 당시의 문화와 감성을 담아내며 많은 시청자들의 추억을 소환했다. 당대를 달궜던 팬덤 문화,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 ‘남편 찾기’라는 추리 구조, 그리고 소품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신원호 감독 특유의 디테일한 연출은 세대적 공감을 강화했다. <식샤를 합시다> 시리즈 역시 윤두준, 서현진을 주축으로 1인 가구의 일상과 먹방 문화를 현실감 있게 담아내며 생활 밀착형 공감을 이끌어냈다. 프랜차이즈 IP와 공감의 키워드는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하나의 성공한 IP는 장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재생산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웹툰,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성공은 이미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tvN <폭군의 셰프>, <선재 업고 튀어>,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비롯해 티빙 오리지널 <스터디그룹>, <유미의 세포들> 등이 대표적이다. 5월 11일 공개를 앞두고 있는 <취사병 전설이 되다> 역시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tvN <오싹한 연애>처럼 영화가 드라마로 재탄생하거나,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처럼 드라마가 공연으로 확장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생>, <식샤를 합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과 같이 스토리 경쟁력 하나만으로 글로벌 리메이크 판권 수출 사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포맷이 곧 세계관’ 예능 IP의 변주
예능 역시 프랜차이즈 IP의 또 다른 강자라 할 수 있다. <신서유기>, <꽃보다> 시리즈부터 <삼시세끼>, <윤식당>, <서진이네>, <뿅뿅 지구오락실>까지 이어지는 나영석 PD의 예능들은 ‘아는 맛이 무서운’ 포맷 IP의 전형이다. 익숙한 구조 안에서 게임, 음식, 여행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꾸준한 확장성을 보여준다. <식스센스>, <언니네 산지직송>, <놀라운 토요일>은 물론, 연애 리얼리티의 새 지평을 연 티빙 히트작 <환승연애> 역시 이미 구축된 세계관과 팬덤을 기반으로 프랜차이즈 IP의 대표적 활로를 열었다.
오디션과 서바이벌의 명가인 Mnet 예능도 빼놓을 수 없다. 오디션 사상 시청률 신기록을 세웠던 <슈퍼스타K>부터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무대 뒤 댄서들을 조명하며 K-댄스의 세계화를 주도한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까지 모두 하나의 IP 세계관으로 확장된 사례다. <플래닛>, <I-LAND> 시리즈 역시 단순 오디션을 넘어 지속 가능한 아이돌 IP 생태계를 구축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 IP는 포맷 변주가 가능한 구조를 기반으로 신인 스타 등용문의 역할도 확장하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할로 주목받았던 박지훈 역시 Mnet 오디션 출신이다. ‘내 마음 속의 저장’을 외치던 화제의 ‘윙크남’이 천만 배우가 될 줄 누가 예상했을까.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예외는 아니다. 가비, 리정, 모니카, 허니제이 등 댄서 씬에서 새로운 셀럽군을 탄생시키며 ‘잘 키운 IP’의 무궁무진한 파급력을 입증했으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스타 셰프들의 탄생까지 이끌어냈다.
■ OTT가 확장시킨 프랜차이즈 IP
프랜차이즈 IP가 보편화된 배경의 중심에는 OTT 플랫폼의 급성장이 자리한다. OTT의 가장 큰 무기는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소비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이미 익숙한 프랜차이즈 IP가 상대적으로 클릭 장벽이 낮아 초기 유입에 유리하며, 이는 시청 시간 확대와 플랫폼 체류 증가로 이어진다. 나아가 전 시즌에 대한 역주행 소비까지 이끌어내는 경우도 많다. <신서유기>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케냐 간 세끼>와 <크라임씬> 등이 넷플릭스로 옮겨 제작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OTT가 리니어 작품과 연계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본 방송에서 다 다루지 못한 후속 이야기나 날것의 비하인드를 별도의 콘텐츠로 제작해 팬들이 자연스럽게 ‘덕질’을 이어가게 하는 방식이다. tvN <비밀의 숲>과 티빙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 Mnet <보이즈2플래닛>과 엠넷플러스 스핀오프 <플래닛C: 홈레이스>가 대표적이며, tvN과 티빙이 함께 선보인 <원경>은 프리퀄 <원경: 단오의 연인>으로 세계관을 넓혔다. 또 Mnet <쇼미더머니>는 역대 시리즈 최초로 OTT와 협업해 티빙 오리지널 ‘야차의 세계’를 선보이며 유료 구독 기여 측면에서 뚜렷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제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익숙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다만, 너무 높은 진입 장벽과 새로움 없는 반복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믿고 보는’ 프랜차이즈 IP 시대, 올해엔 또 어떤 변주가 판을 뒤흔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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