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칼럼] 현재의 여성감독이 옛 여성감독에게 전하는 러브레터, <오마주>

영화 용어에서 오마주는 특정 영화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오마주는 절대 대상이 되는 작품을 감추지 않는다. 누가 봐도 그 작품인지 누구의 것인지 선명히 알 수 있도록 밝히고 오히려 관객들이 이를 알아봐 주길 원한다. 결국 오마주의 주인공은 표현의 대상이 되는 작품, 그 자체다.

이동윤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이동윤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영화 메인 포스터
영화 <오마주> 메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명왕성>(2012), <마돈나>(2014), <유리정원>(2017)의 신수원 감독은 오마주의 주인공으로 <여판사>(1962)의 홍은원 감독을 선택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의 두 번째 여성 감독으로 기록된 그녀. 하지만 홍은원 감독에 대한 평가는 2015년 필름이 발굴된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너무 늦은, 하지만 지금이라도 기억해야 할 그 이름을 신수원 감독이 <오마주>를 통해 오마주한 이유는 무엇일지 살펴본다.

대한민국 2호 여성 감독, 홍은원

영화 中 한장면
영화 <오마주> 中 한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홍은원 감독은 명문가 출신의 둘째 딸로 태어나 유복한 성장 시절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최인규 감독의 1948년 작 <죄 없는 죄인>의 스크립터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고 전쟁 후 다시 충무로 영화 현장에 들어간 그녀는 스크립터, 조감독, 영화 음악 작곡, 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역할로 작업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이후 실제로 존재했던 여판사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여판사>는 여러 언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감독으로서 그녀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5) 두 편의 작품을 연출했고 몇 편의 시나리오를 더 썼지만, 연출로서 작품을 이어가진 못했다. ‘환갑이 지나도 다람쥐처럼 영화계를 누비고 다닐 것’이라던 주변인들의 예상과 달리 50세도 못 되어서 현장을 떠났고, 결국 1999년 폐 질환을 앓다가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2015년 <여판사> 필름이 발굴되고 2016년 서울여성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이후, 한국 영화사 연구자들은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대중에게까지 그 이름이 가닿기란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다.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대중적으로 홍은원 감독의 존재를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첫 번째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여판사>의 가능성과 한계

영화 中 한장면
영화 <오마주> 中 한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오마주>에 등장하는 <여판사>는 여성 판사로서 남편의 질투,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멸시를 견뎌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개봉 당시 경향신문은 ‘여감독다운 섬세한 플롯의 전개에 명확한 커팅은 몇 사람의 중견 감독을 조감독으로서 길러낸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 연출력을 높이 샀었다. 하지만 <여판사>는 여성의 능력과 재능을 터부시했던, 동시에 가부장제 체제 속에 속박하려 했던 당시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판사는 자신을 멸시했던 시어머니를 적극 변호하며 그녀의 무죄를 증명해 내고 아내, 엄마, 며느리의 역할에 모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인정받는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능력만으로 증명해낼 수 없었던 시대, 영화 속 여판사는 곧 감독인 홍은원의 다른 모습이었고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여성의 모습이기도 했다.

신수원 감독의 <여판사>에 대한 오마주

영화 中 한장면
영화 <오마주> 中 한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신수원 감독은 <여판사>의 이러한 한계를 <오마주>를 통해 극복해낸다. 영화 속 주인공 지완은 중년 여성으로서 아내이자, 엄마이자, 영화감독이다.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세 편 모두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영화 만들기는 힘들어져 가는데, 그렇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때 그녀에게 들어온 일거리가 바로 <여판사>의 필름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사운드가 유실된 부분의 대사를 다시 채워 넣는 것이 그녀의 일이지만 그녀는 이를 허투루 하고 싶지 않다. 직접 사라졌던 대본을 찾아내고 심지어 검열로 삭제된 부분까지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유실되고 잘려 나간, 어떤 의미에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여판사>를 만날 수밖에 없지만, 영화 속 지완은 절대 상처뿐인 상태로 이 작품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대한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원본의 상태를 그대로 복원하여 공개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지완의 마음은 신수원 감독이 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옛 여성 감독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러 편경과 오해 속에서 제대로 된 평가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그녀들, 시대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러 왜곡의 절차를 거쳐 전달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의도가 이제라도 오롯이 원전 그대로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 <오마주>를 탄생시킨 것이다.

영화 메인 포스터
영화 <오마주> 메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오마주>를 보고 나면 분명히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KMDB 사이트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직접 영화를 찾아보고, 홍은원 감독에 대해 한 번쯤 검색해보는 것이야말로 신수원 감독이 <오마주>를 만든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동일 것이다.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꼭 한 번쯤 그 길을 따라가 보시라 권해드린다.

  • <오마주>는 한국 1세대 여성 영화 감독의 작품 필름을 복원하게 된 중년 여성 감독이 현재(2022년)와 과거(1962년)를 넘나드는 시네마 시간 여행을 그렸다.
  • <젊은이의 양지>, <유리정원>, <마돈나> 등 가장 현실적인 주제로 확고한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신수원 감독의 작품이다.
  • 이정은 배우가 데뷔 후 첫 단독 주연을 맡아 꿈을 좇는 여성 감독으로 열연을 펼쳤다.
  • 오는 5월 26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 상영관 등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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