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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볼까요?” 점심 약속을 잡을 때부터 점찍어 둔 집이 있었다. 개성 만두로 유명한 곳. 예약은 받지 않는다. 친구는 변호사다. 누구보다 시간을 쪼개 쓸 것 같은 그가 먼저 점심을 청했다. 식당 앞에서 줄을 서야 한다면 내가 먼저 가지 뭐. 그런데 너무 서둘렀나 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 몇 사람이나 줄을 섰나 확인하고 다른 골목들을 한 바퀴 돌아본다. 또 다른 만둣집이 보인다. 자욱한 김. 그래서 골목은 더 따뜻해 보인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끌어안아야 하는 동네다. 서로 다른 시간이 어우러져 매력적인 문화를 빚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식당 앞으로 가 줄을 선다. 내 앞의 커플은 프랑스어로 여행의 기쁨을 나눈다. 식당 안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창가에서 두 사람이 날랜 손으로 만두를 빚는다. 80년 넘게 손맛을 내던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맛은 남아 지구촌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자리를 잡고 전골을 주문한다. 전골은 부분의 총합보다 훨씬 큰 전체를 만들어낸다. 속을 꽉 채워 큼직하게 빚은 만두는 나물을 많이 넣어 담백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연인은 시원한 국물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훗날 문득 이 맛을 떠올리게 될까? 그때 한국까지 찾아올 만큼 시간과 돈이 넉넉지 않아도 다시 ‘코레’의 만두를 맛볼 수 있을까? CJ제일제당의 식품 냉동 인천공장을 찾아간다. 국내에서 가장 큰 만두 공장이다. 24시간 돌아가며 하루 400만 개의 만두를 빚어낼 수 있는 곳. 하루 수백 개의 만두를 빚던 달인들의 날랜 손은 무엇으로 대신할까? 그 손맛은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공장 입구에서 코로나 진단키트를 받아든다. 음성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1988년 제일냉동식품으로 출발한 공장은 30년 후 7개 라인을 갖춘 만두 전용 기지가 된다. 연면적이 7000평을 넘는다. 현장에서는 400명이 3교대로 일한다. 내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무균 복장을 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 들어가듯 흰 위생복으로 온몸을 감싼다. 머리는 삼중으로 가린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끈끈이로 훑고 에어 샤워로 털어낸다. 머리카락과 먼지에 대한 적개심이 치솟는다. 비비고 왕교자와 수제만둣집 만두, 찐만두, 물만두, 군만두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재료는 100가지 정도. 그것들을 씻고 썰어서 섞고, 만두피를 만들고 속을 넣어 쪄서 얼리고, 검사하고 포장을 마치기까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열두 단계 공정은 한 시간쯤 걸린다. 온갖 자동화 장비들이 사람의 눈과 손, 팔과 다리를 대신한다. 채소는 먼저 잘 씻어야 한다. 부추와 대파, 양배추는 계절과 신선도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잡초가 끼어 있거나 사람 눈에 안 보이는 벌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광학 선별기는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좋은 눈을 가졌다. 원료의 미세한 밀도나 색상 차이를 알아보고 이물질을 가려낸다. 돼지 뼈 같은 고기의 이물질을 골라내는 데도 이 눈이 필요하다. 채소와 고기는 갈지 않고 썬다. 돼지고기는 7×7×10mm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원래 가지고 있던 조직감과 육즙을 그대로 살려 씹을 때 풍부한 식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경쟁사의 갈아 넣은 소와 차별화한 제조법으로 이 공장의 큰 자랑이다. 채소와 고기에 양념을 넣어 고르게 섞으면 소가 완성된다. 향과 색깔, 단맛을 내기 위한 합성 물질과 방부제는 일절 넣지 않는다. 만두피는 얇으면서도 속이 터져 나오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왕교자는 밀가루와 전분을 배합한 전용분을 쓴다. 만 번 정도 치대고 진공 상태에서 반죽해 쫄깃한 피를 만들어주는 기계는 사람의 수고를 얼마나 덜어주고 있는 걸까? 이기혁 생산팀장은 “중국 만두는 피가 두껍다”라며 “최대한 얇게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왕교자는 조선 시대 임금에게 올리던 해삼 모양(미만두)으로 만든다. 참 그 옛날 만두는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한때 여왕이나 누릴 수 있던 실크 스타킹의 감촉을 이제 평범한 여성도 쉽게 누릴 수 있듯이 임금에게 올리던 만두의 맛은 이제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됐다. 왕자가 붙은 만두답게 35g으로 큼직하게 빚는다. 성분과 모양과 크기는 어떤 달인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일정하다. 이제 제 모양을 갖춘 만두의 열병식이 시작된다. 뜨거운 증기를 쐬어 쪄낸 만두는 윤기가 흐른다. 나를 매혹하는 향. 그러나 이 순간은 일단 정지돼야 한다. 만둣집에서 갓 쪄낸 것과 같은 맛을 대형 할인점과 슈퍼마켓, 편의점을 거쳐 가정의 식탁까지 배달하려면 그 시간 차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자면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영하 40도까지 떨어트리는 급속 동결 장치가 그것이다. 천천히 얼리면 얼음 입자가 커져서 식감과 맛이 떨어진다. 얼음 알갱이가 생기는 0도에서 영하 5도까지의 구간을 최단 시간에 통과하는 것이 관건이다. 금속검출기, 엑스레이 선별기, 중량 검출기를 거친 만두는 자동으로 포장된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 어느 날이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있었다. 만두는 동네 맛집이 아니라 할인점 식품 코너에 있다가 우리 집 냉동고로 왔다. 문득 그전의 여정이 궁금해졌다. 만두피를 만들 밀가루는 우크라이나나 미국의 대평원에서 온 것일까? 그 만두가 한국에서 다시 만두가 돼 그 지역 농부의 식탁에 오르게 될까? 만두 하나에는 온갖 역사가 얼어붙어 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과학과 기술의 변화가 어우러져 있고 누군가의 기쁘고 행복하고 슬프고 아픈 삶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아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잘하면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만두 공장을 찾아가 알아보리라 맘먹은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숱한 물음은 결국 한 가지로 수렴됐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바쁜 현대인에게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만두는 얼마나 큰 사치인가. 직접 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 일일이 빚어서 먹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까? 요리법을 배우고 제맛을 내는 데 필요한 축적의 시간을 뛰어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나와 있다. 수십 년간 만두를 빚은 장인의 손맛을 압축적으로 배워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해야 할 것이다. 이 공장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만두소를 퍼 올리는 호퍼라는 기계나 포장된 만두를 적재하는 로봇은 수십 명의 힘센 팔을 대신한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광학 선별기는 색상과 면적 데이터를 학습해 더 똑똑해질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사람이 한다면 엄청난 노동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만두의 맛과 식감, 향, 육즙, 피에서 축적의 시간을 단축하는 길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뿐이다. 그 결과 소비자가 절약하게 될 시간의 가치는 각자의 처지와 셈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은 이제 한 해 1조 원어치의 비비고 만두를 사 먹는다. 미국, 독일, 중국, 베트남, 일본이 글로벌 생산 거점이다. CJ제일제당은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 미국에서 오랫동안 그로서리 만두 부문의 절대 강자였던 일본의 아지노모토사를 제쳤다. 이때 만두는 K-푸드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CJ는 왕교자가 나온 2013년 국내 냉동 만두 시장의 5분의 1을 가져갔다. 2022년에는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인천공장 혁신팀 장광문 과장은 “새로운 제품이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워왔다”고 말한다. 1인 가구와 혼밥족이 늘면서 만두 속의 시간을 사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새삼 깨닫는다. 인천의 만두 공장은 진천의 햇반 공장과 본질적으로 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구나. 이 공장들은 사실 시간을 찍어내고 있구나. 인사동까지 다시 날아와 만두 맛을 볼 수 없는 프랑스의 연인도, 김치만두 하나를 터트리면 따로 육수를 낼 줄 몰라도 만둣국을 먹을 수 있다는 걸 배운 나도 슈퍼마켓에서 그 시간을 살 수 있다. 장경덕 |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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