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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하얀 설탕이 쏟아지던 날.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습니다. 종합식품회사에서 식품·생명공학·유통·엔터테인먼트의 4대 사업군을 선도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CJ가 걸어온 도전과 개척, 창조와 성취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콘텐츠 강국입니다. 90년대 내수 위주의 협소한 시장에서 분투하던 우리나라 문화 산업은 30여 년간 눈부시게 도약했죠. ‘소프트파워 강국’이란 수식어가 낯설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21년 한국을 두고 서구 문화 소비자에서 주요 문화 수출국으로 탈바꿈한 ‘문화적 거물(Cultural juggernaut)’이라 표현했고요. 영화 ‘기생충’ 이후 할리우드에선 “창고에서 빛을 못 보던 한국 대본을 모두 꺼내 재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 시작점에 CJ가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 문화 불모지에서 영화 사업에 뛰어들며 세계 시장 진출의 밑그림을 그렸고, IMF 등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도 뚝심 있게 투자했죠. 개별 사업 수준에 머무르던 한국의 문화 예술을 ‘산업’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역사를 말할 때 CJ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오랜 구호가 피부로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K컬처 세계화의 시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CJ뉴스룸이 CJ 문화사업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스필버그와 합작” 영화계를 뒤흔든 소식 1995년 드림웍스 1995년 4월 29일, 우리나라 문화계와 산업계를 놀라게 한 외신이 전해졌습니다. 제일제당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합작회사를 ‘드림웍스’를 설립한다는 ‘뉴욕 타임스’의 보도였죠.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 영상 시장을 주무르는 거물이었습니다. 국내 언론사들은 이 소식을 확인하느라 쉴 틈 없이 제일제당 사옥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세계 제일의 흥행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종합식품회사로 이름난 제일제당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사흘 뒤인 5월 1일, 제일제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영상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제일제당은 이제 과감한 자본 투자를 통해 영상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을 발굴·확보할 것입니다. 영상소프트웨어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낙후된 우리나라 영상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영화와 영상물을 세계시장에 선보일 것입니다.” 1995년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모습 90년대 중반 선진국의 영화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앞선 시스템으로 중무장하고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았습니다. 반면 ‘충무로’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영화 예술 인프라는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1969년 한 해 229편에 달했던 우리나라 영화 제작 편수는 1995년엔 65편으로 줄었습니다.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는 5억 원에 불과했고요. 외국의 일급 영화 제작비인 780억과는 비교가 안 됐고 할리우드 평균 제작비인 160억 원과도 30배 이상 차이가 났죠. 합리적인 액수의 자본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환경이었습니다. 영세하고 낙후한 제작·배급 시스템도 뿌리부터 재정비해야 했죠. 제일제당의 최고경영진은 문화 산업을 살리고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영화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청바지에 피자 협상으로… 할리우드의 파트너가 되다 1995년 드림웍스와 투자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시작은 이랬습니다. 독립경영 이후 영화 사업 진출을 검토하던 제일제당에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월트디즈니 영화사 대표인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 업계의 마술사라 불렸던 데이비드 게펜이 뭉쳐 ‘드림웍스SKG’를 설립하고, 총 투자금 10억 달러 가운데 30%의 지분을 투자받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파트너가 되어 노하우를 배울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제일제당 최고경영진은 곧바로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상무였던 이재현 회장과 이사였던 이미경 부회장이 협상의 주축을 맡았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창의성을 존중하는 할리우드 분위기에 맞춰 당시 기준 파격적인 방식으로 협상에 나섰습니다. 협상 장소는 스필버그의 개인 스튜디오인 ‘앰블린’으로 정했습니다. 운동화에 청바지, 티셔츠를 입고 피자와 콜라를 주문해 먹으며 논의했죠. ‘동양의 경영자는 권위적’이라는 틀을 깨기 위함이었습니다. 크게 만족한 드림웍스도 마침내 제일제당과의 협력을 확정하게 됩니다. 제일제당은 드림웍스SKG의 공동 설립자가 되어 영상소프트 시장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총 자본금 10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됐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죠. 종합식품회사였던 제일제당이 영화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과감한 도전이 결국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죠. “글로벌 엔터기업으로” CJ엔터테인먼트 출범 1994년 4월 제이콤의 사업계획을 소개한 기사(경향신문) 제일제당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1990년대 최고 인기 드라마인 ‘모래시계’의 김종학 감독과 송지나 작가와 함께 종합영상소프트 회사 ‘제이콤’을 설립했습니다. 석 달 후인 8월엔 선진국에 직접 영화를 배급하는 홍콩의 거대 영화사 ‘골든하베스트’와 협력해 아시아의 영상소프트산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죠. 불과 5개월 사이 제일제당은 설탕 이미지로 대표되는 종합 식품 회사에서 국내 문화산업계를 이끌 블루칩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8월 1일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가 신설됐습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CJ ENM의 전신입니다. 조직은 이재현 상무와 이미경 이사가 직접 진두지휘했습니다. 영화의 제작·수입·배급 등 주로 영상 사업뿐 아니라 극장 사업, 음반 제작, 케이블 TV, 게임 등 멀티미디어 사업 전 분야를 담당하는 조직이었죠. 드림웍스의 노하우를 빠르게 흡수하며 세계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마침내 1996년 9월 1일,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를 확대·개편한 ‘CJ엔터테인먼트사업부’가 새롭게 조직되었습니다. 제일제당이라는 기업명에서 제조업과 식품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축약어인 ‘CJ’라는 이름을 사용했죠. 제일제당이 ‘ONLYONE’ 철학을 발표하며 ‘제일제당그룹’을 출범한 지 4개월 만이었습니다. “문화가 없이는 나라도 없다” 1998년 한국 최초로 개관한 멀티플렉스 극장 CGV의 모습 제일제당이 문화 사업에 진출한 데엔 문화 예술에 깊은 안목과 애정을 가졌던 이병철 선대회장의 영향이 컸습니다.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 문화는 그것이 창조되고 수용되어 모든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죠. 이재현 회장도 평소 직원들에게 선대 회장의 철학을 인용하며 “역사적으로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 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오픈, 국내 상영 영화 총 관객수 역대 1위, 국내 유일 종합콘텐츠 기업 출범, 세계 최대 K컬처 페스티벌 개최, 대한민국 영화 역사 최초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등 우리나라 문화 산업의 굵직한 발자취들이 CJ에서 이뤄졌습니다.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달 1~2번씩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매일 1~2곡의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상에서 한국 문화를 즐기게 하는 것’. 1995년부터 품어온 CJ그룹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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