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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트로피는 유독 무겁기로 유명하다. 무게는 3.8㎏, 높이는 34㎝에 달한다. 심지어 금 코팅이 벗겨지지도 않는다. 24K 금으로 도금한 이 트로피엔 미국 항공우주국(NASA)가 개발한 우주용 금 코팅 기법이 적용됐다. 묵직하고도 찬란히 빛나는 이 트로피는 곧 오스카의 권위 그 자체를 상징한다. 아카데미는 오늘날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영화 시상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스카 트로피 / 사진 출처 : 아카데미 공식 홈페이지 올해는 과연 누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될까?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3월 10일(현지시간) 화려한 막을 올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진행되는 이번 시상식엔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코세이지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후보에 대거 올랐다. 셀린 송 감독은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오스카에 당당히 입성,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여운 것들>, <추락의 해부> 등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최고상을 받았던 작품들도 오스카 수상을 노린다. 벌써부터 결과가 궁금해진다면, 수상작을 미리 예측해 보는 건 어떨까. 기획전을 통해 후보작들을 감상하며 결과를 점칠 수 있다. 그에 앞서 관전 포인트도 함께 살펴보며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을 찾아보자.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아카데미 기획전’을 보면 영예의 주인공이 보인다 오스카 시상식이 다가올 때면 영화 애호가들은 어김없이 주요 후보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데미 기획전’으로 향한다. CGV 아트하우스는 매년 이 기획전을 열어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엔 2월 14일부터 3월 12일까지 ‘2024 아카데미 기획전’이 진행된다. 기획전에선 <오펜하이머>, <플라워 킬링 문>, <바비>, <추락의 해부>, <엘리멘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이미 개봉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 <가여운 것들>, <바튼 아카데미>, <메이 디셈버>, <로봇 드림> 등 아직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 또한 감상할 수 있다. 기획전은 전국 각 지역에 걸쳐 진행된다. CGV강변, 용산아이파크몰, 신촌아트레온, 압구정, 여의도, 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광주상무, 대구아카데미, 대전, 서면 등 15개 아트하우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거장들의 빅 매치가 펼쳐진다 위쪽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코세이지 / 사진 출처 : Le Monde, INDIEWIRE 이번 아카데미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거장들의 빅 매치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단연 놀란 감독이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온 놀란 감독은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놀란 감독은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 수상을 한 적이 없다. 시각효과 등 기술 부문의 수상에 그쳐 사실상 ‘무관’의 설움을 겪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오펜하이머>로 설움을 씻을 수 있을까. 다행히 올해는 분위기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총 1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최다 후보가 됐다. 그중 작품상, 감독상의 수상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을 개발한 실존 과학자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영화이다. 놀란 감독은 CG 없이 핵실험을 재현, 큰 관심을 모았다. 나아가 핵실험 자체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펜하이머의 원자 폭탄처럼 터지는 내면과 고뇌를 그의 얼굴로 담아내 진정한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놀란 감독 못지않게 오스카와 유독 인연이 멀었던 스코세이지 감독도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올해로 82세가 된 그는 <갱스 오브 뉴욕>, <휴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아이리시맨> 등을 연출하며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런 그는 1981년 <성난황소>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디파티드>로 첫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오스카와 특별한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20년엔 <아이리시맨>으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올해엔 그 한을 풀 수 있을까. 이번엔 <플라워 킬링 문>으로 오스카의 문을 두드린다. <플라워 킬링 문>은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적 기록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오스카에선 작품상과 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걸쳐 후보로 지명됐다. 이 영화는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 족을 침탈한 백인들의 잔혹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깊고도 장엄한 한 곡의 인디언 레퀴엠(Requiem‧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을 펼쳐 보인다. 데뷔작으로 오스카 직행…<패스트 라이브즈>에 쏟아지는 찬사 글로벌 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며 오스카에 입성한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오스카는 오랜 시간 ‘백인들의 잔치’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벽을 깨뜨리며 더욱 높은 권위를 확보하게 됐다. 그 중요한 전환점은 2020년 <기생충>에 작품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2021년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수여하며 마련됐다. 그리고 이번 시상식엔 그 계보를 이어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오스카에 도전한다. 셀린 송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단숨에 아카데미의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 전부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뒤엔 숨은 공로자들도 존재한다. 이 작품은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 K 무비를 전 세계에 확산시켜 온 CJ ENM이 미국 제작사 A24와 공동 제작했다. 이미경 CJ ENM 부회장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 영화는 한국계 이민자(코리안 디아스포라) 출신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다른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품에 비해 훨씬 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 그 자체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셀린 송 감독 / 사진 출처 : HUFFPOST 영화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노라(그레타 리), 노라를 지켜주던 든든한 친구 해성(유태오)은 24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게 되며 본격 전개된다. 유년 시절에 느낀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 느끼게 되는 작지만 애틋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섬세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이어지는 탄탄한 구성, 아름다운 영상미가 한데 어우러져 뛰어난 조화를 이룬다. 동시에 한국적 정서를 정교하게 담아, 참신하고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셀린 송 감독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인연’이란 개념을 접목한다. 이를 통해 각자 다른 현실과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쉽게 잊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민자가 느끼는 감정과 정서도 영화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히 노벨 문학상을 꿈꾸던 소녀 노라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의미와 이민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거장들의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놀란 감독은 미국 주간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꼽았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미묘하게 아름다운 영화”라고 호평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나이트메어 앨리> 등을 만든 세계적인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지난 20년간 나온 작품 중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극찬했다. 국제영화제 최고상 수상작들의 출격 세계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던 작품들도 오스카에서 격돌한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번엔 아카데미의 작품상, 감독상 등 11개 부문에 도전한다. 란티모스 감독은 <송곳니>,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을 통해 기이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가여운 것들>은 과학자 고드윈(윌렘 대포)에 의해 죽었다가 되살아난 벨라(엠마 스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벨라는 부활을 통해 인간의 모든 세계를 경험하고 깨우치게 된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들은 재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각 작품에서 강렬하고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켜 왔기 때문이다. 올리비아 콜맨은 2019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으로 오스카에서 첫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올해엔 <가여운 것들>에서 여성 프랑켄슈타인으로 열연한 엠마 스톤이 여우주연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추락의 해부>도 오스카 유력 후보작이다. <빅토리아>, <시빌> 등을 만든 프랑스 출신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작품으로, 오스카에선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산드라 휠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법정에선 숨겨져 있던 부부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고, 카메라는 이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고 확증편향이 심화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밖에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감독들의 영화들이 오스카 후보작에 나란히 올랐다.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 주연의 <메이 디셈버>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차기작으로 영화 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1970년 바튼 아카데미의 교사와 학생들이 원치 않는 동고동락을 하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바튼 아카데미> 역시 잔잔한 울림을 주며 호평을 받고 있다. <스타 이즈 본>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도 유력 후보로 꼽힌다. 반면 논란이 되고 있는 노미네이트도 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는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거윅 감독과 주연 마고 로비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를 두고 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오스카가 8개 부문에 대해서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이 집중이 되고 있다. 오스카 트로피로 인해 웃고 우는 세계적인 영화인들. 올해는 누가 그 트로피를 번쩍 들고 환하게 웃게 될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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