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잉 업> 리뷰
그간 영화는 예술가들의 삶을 신화화하는 데 앞장섰다. 사람들은 어떻게 위대한 예술 작품이 탄생되는지 배경을 궁금하게 여겼고, 폐쇄적인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쳤다. 꼭 실존 인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아마데우스>(1984)에서 모짜르트는 기괴한 목소리로 과장되게 웃었고, <블랙스완>(2019)에서 완벽에 대한 욕망은 그의 자아를 분열시켰다. 가장 자주 영화의 소재로 등장한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가난과 고독, 열정과 광기,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 최고가로 작품이 거래된다는 사실까지 모든 요소가 비극적인 예술가의 서사로 완벽했다.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술의 본질은 자주 누락되었다. 노력과 희생, 의심과 불안, 선명한 경쟁 구도까지 배치하고 나면 예술가의 서사는 스포츠 영웅의 성공담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예술의 목적이 걸작의 생산인 것처럼 납작하게 단순화되는 동안, 신화가 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남은 이들의 평범함은 무능과 실패로 등치 되어 잊혔다.
다른 동시대의 영화들이 거창하고 요란하게 우주로 떠나고, 시간 여행을 하고, 목숨을 건 게임을 시작하는 동안, 켈리 라이카트는 서사의 굴곡이 없는 미니멀리즘을 선택했다. 감독은 <쇼잉 업>을 통해 예술과 일상의 교차점을 모색한다. 포기나 희생을 들먹이지 않고, 예술과 평범한 일상이 사이좋게 균형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은 가능할까.
리지는 예술 대학의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첫 전시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바쁘다. 그런데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 끊임없이 그녀의 작업을 방해한다. 고양이 사료가 다 떨어졌고, 온수기는 고장 난 지 1주일째다. 또래의 집주인 조는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어쩐지 즐겁고 태평해 보인다. 아빠의 집에는 눈치 없는 손님들이 눌러앉았고, 오빠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리지가 시간을 배분하고 챙겨야 하는 일들은 매일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리지는 밤이 되면 작업실에 앉아 조각을 만들고 작품을 다듬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켈리 라이카트는 느슨한 전개 속에서 ‘예술이라서 가능한’ 예외적인 사소한 순간들을 유능하게 포착해 낸다. 리지의 습관은 연습과 훈련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 시간에는 한낮에 느낀 감정, 현실의 갈등, 시간의 흐름까지 잊어버리는 몰입이 있다. 진흙 반죽에 불과한 덩어리를 소녀의 형상처럼 빚으면서, 떨어진 팔을 다시 붙이며 미안하다, 중얼거리게 되는 것.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현실을 초월하고 있다.
리지는 데드라인에 맞춰서 간신히 작품을 제출한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은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안다. 하지만 데드라인이 없다면 – 영원히 아무것도 완성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전시는 최고의 걸작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습작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렇게 누적된 결과물들은 리지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소위 걸작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리지의 시간은 흐르는 대신 쌓이고 있다.
켈리 라이카트의 전작 <퍼스트 카우>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로 시작했다. “새에게는 둥지가, 거미에겐 거미줄이, 인간에게는 우정이.” 2022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쇼잉 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우정이다. 열광적인 호들갑은 없지만, 작품에 대한 존중이 있고 생계와 예술 작업의 균형을 모색하는 삶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있다.
- 영화사 A24, 미국 독립 영화 ‘퍼스트 카우’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 배우 미셸 윌리엄스가 완성했다.
-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2023년 전미영화비평가협회 선정 독립영화 10 리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 ‘쇼잉업’은 1월 8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