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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보> 리뷰 영화 <국보> 메인 포스터 ‘가부키를 관람할까’ 즉흥적인 마음을 먹은 적 있다. 아마 어지간히 일본을 드나든 다음이었을 것이다.  일본인 친구가 손사래를 쳤다. 전통적인 공연은 4-5시간이 기본인 데다 30만 원 남짓 하는 일등석은 일찌감치 매진되어 구하기도 어렵다는 것. 사실 그보다도 과장된 말투와 음조, 고어로 이루어진 일본어 대사를 알아듣는 것이 제일 큰일이었다. 오디오 가이드 혹은 영어 태블릿을 유료로 대여할 수 있다지만, 무대 장면마다 커닝하듯 내용을 확인하면서 만족스러운 관람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히토마쿠미’였다. 가부키 전체 관람하는 것은 일본 젊은 세대들에게도 드문 경험이라서 대신 1시간 남짓 견학 삼아 1막만 관람하는 ‘히토마쿠미’라는 관람법이 있다는 것.  그런데 거기까지 듣고 나니 어쩐지 김이 샜다. 가부키는 자국민 소수 엘리트 관객들에게만 한정된 폐쇄적인 문화 같았고, 사정이 그렇다면 나는 좀 몰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상일 감독의 <국보> 탓이다. 이상일 감독은 <악인>(2011), <분노>(2017)에 이어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에서 출발했다.  <국보>는 남성 배우로만 이루어진 가부키 극단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전문 배우 ‘온나가타’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온나가타’는 외모와 체격, 목소리 등의 신체 조건을 기본으로 각 개인의 소질, 가문의 요구에 따라서 선발되며, 여성 캐릭터를 정교하게 재현하기 위해 10대 시절부터 고도로 양식화된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보>는 키쿠로와 슌스케라는 두 소년의 우정과 질투, 경쟁과 대결, 성장과 성공의 과정을 메인 서사로 삼아 평생을 바친 치열하고 화려한 가부키의 세계를 정교하게 펼쳐 보인다.  영화 <국보> 스틸컷 그러나 소년들의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유능한/유명한 가부키 실력자의 명성은 ‘가문’을 중심으로 상속되는 것이라서, 개인의 실력과 기량보다 ‘혈통’이 우위에 있다. 생물학적 가계도에 오르게 되는 것은 출산의 완벽한 우연이지만, 가부키 가문에서 ‘피’는 즉시 실력과 지위를 보증하는 것으로 작동한다. (이쯤에서 재일 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의 입지를 가늠하게 되는 것은 우연 같지 않다)  혈통의 논리에 따라 현재와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면 키쿠로는 온나가타 대신 야쿠자가 되어야 마땅하고, 슌스케는 ‘저절로’ 장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삶은 단순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이 집단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인정받을 수 있을까, 혹시 결국 (내정된 이에게) 밀려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키쿠로의 모습은 관객 대부분에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결국 밝고 명랑한 소년들의 반복과 훈련, 열정과 집념의 시간들을 지나면 성인이 된 키쿠로와 슌스케 사이에는 긴장과 질투, 의심과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영화 <국보> 스틸컷 영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예민한 천재 예술가들의 괴팍한 습성과 마찬가지로 – 가부키를 목표로 삼은 키쿠로에게 개인의 삶과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의 성공과 실패의 극단적인 감각만 있을 뿐이다.  후원자를 자처했던 게이샤와 딸을 외면하고,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기 위해 제작자의 딸을 품을 때에도 키쿠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부키일 뿐이다. 그에게는 타인의 희생을 돌아보는 아량은 없다.  ‘국보’로 지정된 이후, 마침내 대면하게 된 딸이 ‘아버지로 생각한 적 없다’면서도 그의 무대에 매료되고 위로받았으며,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축하하고 존경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 이르면 – 아무래도 이 맥락은 남성 예술가들의 괴랄한 환타지 같다 -예술가의 성취와 성공에는 (죄책감을 품은 적도 없던) 개인적인 과오에 대한 면죄부까지 주어진다는 논리로 비춰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영화 <국보> 스틸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보>의 가부키 공연에는 숨을 멈출 만큼 절대적으로 황홀한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가부키에 인생을 바친 이들의 성공, 좌절, 절망의 순간은 모두 무대와 겹쳐지고 무대 위의 죽음은 현실의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다.  가부키의 온나가타라는 특수한 세계는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지 않고, 소리와 침묵이 공존하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나란히 공존하는 세계다. 혈연의 강조는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굽어보는 무대를 구축한다. 가장 화려한 무대를 끝낸 키쿠로는 얼핏 심해에서 빛을 탐하는 작은 생명체처럼 보인다.  마침내 그가 목격한 ‘아름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국보> 스틸컷 <국보>의 가장 눈부신 성취는 가부키의 전통 공연 무대를 스크린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는 데 있다. 카메라는 일반 관객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극장 내 공간과 무대 뒤편, 객석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배우의 시선과 동선을 번갈아 조망하고, 전통적인 형태의 무대 관람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점을 제시한다.  또한 영화 편집의 리듬감은 가부키 서사의 순발력을 강화하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국보>가 1,200만명을 돌파하며 일본 영화사의 흥행 기록을 다시 쓰는 현재 진행형의 현상이 된 것은 소년들의 우정과 경쟁, 예술가의 번민과 좌절, 성공담과 같은 서사적 요소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게 재현된 무대 공연들,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된 가부키 관람 경험 탓일 것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가부키가 흥미로운 소재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국보>를 볼수록 가부키 무대가 궁금해질 것이다.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요시다 슈이치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일본에서는 개봉 102일 만에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하며 새로운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11월 19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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