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영이 잘 하는 ‘풀 캐리’의 끝을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요.
성수에선 다 뺐어요. 대신 새로운 경험으로 그 자릴 채웠죠.”
올리브영은 성공 방정식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입니다. 철저한 회고 문화를 바탕으로 쌓은 레슨런을 새로운 프로젝트에 빠르게 적용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성수에 1400평 신규 매장을 기획할 땐 반전이 있었어요.
“가장 잘하는 것부터 버린다”
MD 배치부터 고객 동선 설계까지, 익숙한 공식을 모두 버렸죠. H&B업계 1등 브랜드 올리브영의 새로운 전략,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기존 매장과 완전히 다른 ‘올리브영N 성수’ 기획 비하인드, 크게 4가지로 짚어봤습니다.
전략 ① MD의 필살기 ‘풀 캐리’ 공식을 버리다
전략 ② 직관적인 동선 버리고 ‘흐르는 길’ 설계하기
전략 ③ ’50 버리고 50 채운다’ K팝·포인트오브뷰 입점 비하인드
전략 ④ 성수의 속도, 성수 팝업스토어 문법을 버리다
전략① MD의 필살기 ‘풀 캐리’ 공식을 버리다
Q. 일반 올리브영 매장보다 물건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김수주: 맞아요. 올리브영 MD들이 제일 잘하는 ‘풀 캐리(Full carry)’ 공식을 여기선 안 썼거든요.
Q. 풀 캐리(Full carry) 공식이 뭔가요?
김수주: 에디터님은 ‘올리브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매대에 상품이 가득 진열돼있는 모습일 것 같은데요. MD들은 그걸 풀 캐리(Full carry)라고 불러요. 좋은 상품을 최대한 많이,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저희 브랜드 경쟁력이자 MD의 필살기인데요.
여기선 기존 매장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큐레이션 방식’으로 상품을 진열하기로 했어요.
Q. 일반 매장보다 상품을 적게 진열하는 게 좋은 전략일까요? 고객이 찾는 상품이 없을 때 불편할 수 있잖아요.
김수주: 그럴 수 있죠. 다만 그건 집 앞, 우리 동네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일반 올리브영 매장에서 해소할 수 있다고 봤어요. 올리브영N 성수는 특별한 목적,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찾는 곳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러려면 일반 매장과는 완전히 달라야 했어요.
매장을 둘러본 고객이 ‘영감’을 얻어갈 수 있도록 기존 올리브영 매장에 적용된 레이아웃, 디자인, 진열 방법부터 버렸습니다.
타운 매장인 명동점과 비교하면 올리브영N 성수 면적이 훨씬 넓은데요. 상품 수는 그보다 적어요. 일반 올리브영에선 진열할 때 적용하는 촘촘한 그리드 가이드 대신, 상품 공간 사이를 넓게 벌리고 공간의 밀도를 낮췄거든요.
아마 할 수 있었다면 풀 캐리의 끝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웃음). 과감히 다 뺐어요.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 넣었죠.
Q. 그렇다면 일반 매장과 올리브영N 성수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이 많이 다른가요?
김수주: 상품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달라요.
첫째, 카테고리를 세분화했어요. 예를 들면 스킨 케어 카테고리는 ①피부 고민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기능성 상품 중심의 ‘액티브 스킨 케어’와 ②매일 루틴하게 쓰기 좋은 상품 중심의 ‘데일리 스킨 케어’ 둘로 나눴어요. 각 공간의 경험 요소도 다르게 설계했고요.
둘째, 카테고리 위계를 없앴습니다. 원래 MD들끼리 어떤 상품을 어떤 카테고리에서 다루는 게 맞을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끝장 토론을 하는데요.
예를 들면, 립케어 상품은 바디케어 카테고리에서 다뤄야 할지, 아니면 색조 카테고리가 맞을지.구강 유산균은 건강식품에서 다루는 게 좋을지, 구강 카테고리가 나을지 논의해요.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하나의 상품, 카테고리를 어떻게 해석할지 계속 고민해 보는 거죠.
Q. 카테고리를 다르게 해석할 때 MD가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뭔가요?
김수주: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는 거요. 최근 화장품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K뷰티 변별력이 약해지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요. 그 속에서 보석같은 상품을 발굴, 보여주는 게 MD의 역할입니다. ‘큰 기대 없이 샀는데 버리는 상품은 없다’는 게 저희 브랜드 강점이잖아요(웃음). 뷰티에선 저희만 믿고 따라와도 된다는 걸 경험해 보길 바랐고요.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카테고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본 결과 올리브영N 성수에서 K팝과 팬시, 뷰티 전문관을 나란히 배치할 수 있었어요. K팝 아티스트가 K뷰티 브랜드 모델이 되서 글로벌 시장에 상품을 알리고, K팝과 K뷰티 팬층이 팬시 카테고리도 큰 관심을 보이니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올리브영N 성수에선 이런 전략을 세운 겁니다.
고객 경험에 집중해 공간은 옆으로 넓게,
상품은 아래로 깊게 보여주자.
전략② 직관적인 동선 버리고 ‘흐르는 길’ 설계하기
Q. ‘공간은 옆으로 넓게, 상품은 아래로 깊게 판다’는 건 어떤 전략인가요?
김성민: 2가지를 하나씩 설명해 볼게요.
① 옆으로 넓게, 공간에 ‘흐름’을 설계하다
2층과 3층을 보면 ‘뷰티&컬처’, ‘스킨&웰니스’ 이렇게 여러 키워드를 연결해 콘셉트를 잡았어요. 일반 올리브영 매장에선 핫한 브랜드, 요즘 유행하는 상품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올리브영 N 성수에선 일부러 없앴어요. 고객이 이 공간 안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스스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탐색하길 바랐거든요.
김수주: 보통 매장에 가면 내가 찾는 화장품 브랜드를 찾고, 그걸 산 뒤 떠나는 게 일반적인 쇼핑 패턴이잖아요. 여기선 그 패턴을 한 번 바꿔보고 싶었어요. 내 피부타입이 어떤지 확인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성분을 직접 찾아보는 거죠. 만약 레티놀이라면 그 성분이 들어있는 브랜드를 찾는 방식으로요.
여기선 화장품만 사고 매장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몸에 필요한 것, 현재 내 컨디션에 대한 고민까지 더 깊게 이어지길 바랐어요.
김성민: 피부가 좋아지려면 화장품을 넘어 먹는 것, 잠자는 것, 내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상품까지 천천히 살펴볼 수 있도록 길을 설계했어요. 고객 동선이 뷰티에서 그치지 않고 헬스, 웰니스까지 옆으로 더 이어질 수 있도록요.
② 상품은 아래로 더 깊게, 12개의 전문관을 기획하다
김성민: 일반 올리브영 매장을 설계할 땐 정형화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의 공간을 12개의 카테고리에 따라 일률적이고 평면적인 방식으로 구성해요. 가장 빠르게 원하는 상품을 찾고, 편리하게 비교 구매할 수 있는 효율적 쇼핑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반면, 올리브영N 성수는 기존 공간 구성의 원칙을 벗어난 방식으로 기획했어요. 한 눈에 전체 공간이 파악되지 않고 다음 공간이 예측 불가능하도록, 기대감을 갖고 돌아다니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총 12개의 전문관을 기획해 1층에 하나, 2층에 6개, 3층에 5개를 넣었어요. 더 깊이 있게, 더 즐겁게, 혹은 더 전문성있게 경험하도록 각각 완결성 있는 카테고리 전문 스토어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카테고리별 전문관을 만들면 일반 매장에서의 단순 쇼핑 경험을 넘어, 훨씬 더 몰입감있는 뷰티·헬스 경험을 전할 수 있을 거라 봤어요. 잘 몰랐던 상품, 익숙하지 않았던 카테고리를 접했을 때 새로운 재미도 느낄 수 있고요.
Q.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요?
김수주: 올리브영N 성수를 기획하며 힘을 준 부분이 많은데요(웃음). 그 중 하나가 스킨 케어 전문관입니다. 스킨 케어 카테고리를 ‘데일리’와 ‘액티브’ 둘로 나눴어요.
올리브영N 성수는 일반 매장보다 공간도 넓고, 서비스 수준도 더 높일 수 있으니까 그동안 바래온 걸 마음껏 펼칠 수 있었어요. 그동안은 콘텐츠 단위 별로 있던 걸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 모든 걸 집약해 한 곳이 모은거죠.
그래서 에스테틱 브랜드 공간을 만들었고요. 스킨 케어 공간에 100만원에 달하는 뷰티 디바이스도 함께 진열해뒀어요.
Q.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가의 제품을 파는 게 두렵진 않았을까요(웃음).
김수주:
오프라인 매장에선 쇼룸화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돼요.
오프라인은 고객이 시간을 내서, 일부러 찾아와야 하잖아요. 그만큼 여기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걸 진열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요. 가격 경쟁력, 그에 맞는 서비스만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안 팔리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을 정면돌파할 수 있을거라 봤어요. 그걸 협상하고 기획하는 게 MD의 역할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현시점 스킨 케어 트렌드의 끝단은 고기능성 상품을 넘어 디바이스까지 포함한다는 결론을 내렸고요. 고가의 제품이지만 이것 역시 스킨 케어 카테고리 중 하나라는 걸 고객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전략③ ‘50은 버리고 50은 채운다’ K팝·포인트오브뷰 입점 비하인드
Q. 뷰티, 스킨 케어 뿐만 아니라 올리브영에서 볼 수 없던 K팝, 문구 전문관이 있는게 신기했어요. 새로운 카테고리를 보여준 이유는요?
김수주: 12개의 전문관을 기획할 때 ‘50:50’ 공식을 적용했어요. 뷰티, 스킨 케어, 헬스처럼 일반 올리브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익숙함으로 50%을 채우고요. 그 나머지에는 새로움을 넣기로 했죠.
가격 경쟁 대신 기존에 안하는 플레이를 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포인트오브뷰’, ‘옵젵상가’ 전문관을 입점시켰어요.
사실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올리브영도 2023년부터 일부 매장에 팬시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한 뷰티 제품이 오래 유행하면서 저희 고객이 팬시 제품을 좋아하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 팬시에선 MD 예상이 전부 빗나갔어요(웃음).
취향이 워낙 다양한 영역이라 일반적인 공식이 통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올리브영N 성수를 기획하며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뷰티와 팬시 모두 ‘디깅’이 필요하고, 시간을 오래 들이는 영역이라 고객들이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팬시업계에서 가장 잘 하는 두 곳을 매장에 모시고, ‘디깅’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어요.
K팝 전문관도 비슷했어요. 다들 색조 화장품, K팝 전문관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저희 입장에선 색조 화장품 모델이 전부 K팝 아이돌인 만큼, 같이 배치해도 카테고리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 봤어요.
Q. 100%가 아니라 50%의 새로움만 기획한 이유는요?
김수주: 새로운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요(웃음).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기존 것을 전부 버리면 안된다’는 건 대다수의 구성원이 동의하는 부분이었어요. 브랜드의 기존 강점을 잘 살리면서, 그 안에서 신선한 경험을 설계하는 게 저희가 그리는 새로움이라고 정의를 내렸어요.
김성민: 공간을 기획할 때도 같은 맥락의 새로움을 불어넣기로 했어요. 총 5개 층 각각의 기능을 정의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는데요. 사실 매출을 생각하면 모든 층을 쇼핑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요.
여기선 판매 기능을 잘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뷰티, 색조, 웰니스 전문관을 그래서 2~3층에 집중 배치했고요. 5층은 직원과 협력사를 위한 공간으로 분리했어요. 전체 공간의 50%는 올리브영에 고객이 기대하는 부분으로 채웠고요. 나머지인 1층, 4층은 저희가 의도한 경험을 채우기로 했죠.
Q.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일거라 생각했던 화장품 매대가 없어서 사실 당황했습니다(웃음).
김성민: 1층은 ‘광장’처럼 운영됐으면 싶었어요. 전체 공간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라 유연해야 했거든요. 고객이 N성수를 경험하는 시작점이자 마지막이 되는 곳이다보니 뭔가 가득 들어차기 보단, 약간 비워져있는 게 좋을 것 같았죠.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가진 단어잖아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는 개방적인 곳이기도 하고요. 비어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면서 변화무쌍한 이야기로 채워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꼭 목적이 있는 게 아니더라도 편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일상의 장소가 되길 바랐고요. 뷰티·헬스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1층 전체가 마치 매거진처럼, 새로운 콘텐츠를 넣었을 때 그 공간이 색다른 모습으로 바뀌길 기대했죠.
전략④ 성수의 속도, 성수의 팝업스토어 문법을 버리다
Q. 성수는 변화 속도가 정말 빠른 곳입니다. 트렌드가 순식간에 바뀌는 지역에서 새로운 매장을 선보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김성민: 성수에서 통하는 문법, 공식도 최대한 버렸어요. 성수는 빠르게 변하고, 콘텐츠도 꽉 들어차있는 곳인데요.저희까지 그 호흡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희 속도대로 움직이면서 고객에게 새로움을 주는 게 모토였거든요.
그래서 1층을 보면 지금도 일부러 비워 놓은 곳도 있고, 좌석도 많이 배치했어요. 공간이 비어 있어야 진짜 원하는 게 있을 때 제대로 채울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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