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밤을 왁자지껄하게 책임지고 있는 tvN <코미디빅리그>. 양세형, 박나래, 장도연, 이국주, 황제성, 이용진, 이진호 등 코너마다 각양각색의 개그 퍼레이드가 펼쳐지며 재미를 더한다. 개성 넘치는 이들의 무대를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프로그램 초창기 멤버이자 2017년부터 쭉 연출을 맡은 김민경 PD. 웃기지는 못하지만 웃길 걸 알아보는 능력은 있다고 말하는 그의 연출 노하우는 무엇일까?
코미디 프로그램 PD가 된 건 주성치 덕분?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9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코미디빅리그>(이하 ‘<코빅>’)은 공개 코미디로서 특히 주요 타깃층인 2049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만 보더라도 세 쿼터 연속 남녀 2049 타깃 시청률이 케이블·종편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고 있다.(2019년 1쿼터, 2쿼터 24주 연속, 3쿼터 5주 연속 tvN 타깃 남녀 2049 시청률 케이블·종편 동시간대 1위 기록, 전국/유료플랫폼/닐슨코리아 기준).
제가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다 주성치 덕분이죠!
tvN 프로그램 중 알토란 같은 <코빅>의 수장 김민경 PD가 학창 시절 코미디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주성치 때문이다. <도학위룡> <주성치의 파괴지왕> <서유기> 시리즈 등 B급 감성과 슬랩스틱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주성치의 연기는 매력 그 자체. 주성치를 통해 홍콩 영화 및 문화를 동경해 대학도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갔을 정도니 그를 향한 애정의 넓이는 짐작 가능하다. 주성치 영화와 양대 산맥을 이뤘던 건 과거 예능 프로그램이다. <일밤>의 ‘몰래카메라’ 세대라 소개한 그에게 TV 보는 건 유일한 낙이었다고. 그러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로 많은 사람을 웃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예능 PD를 하겠다 마음먹었다.
그 꿈이 이뤄진 건 2008년. MBC <세바퀴> 막내 조연출로 시작한 후, <색션 연예 통신>을 거처 2011년 CJ ENM으로 이직했다. 새로운 채널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던 생각에 일터를 옮긴 그는 <코미디빅리그> <롤러코스터> <초인시대> 등 tvN 대표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지만, 조연출을 거처 <롤러코스터>를 통해 야외 촬영을 담당했던 경험, 로 생방송 운영을 배웠던 계기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거쳐오며 쌓인 노하우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힘이라 말할 수 있다.
<코미디빅리그>의 동력은 개그맨들과의 신뢰?
9년 동안 한결같이 코미디를 사랑하는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코빅>의 한 회 제작은 어떤 방식으로 탄생하는 걸까? 매주 화요일 공개 코미디 녹화가 끝난 후, 수요일부터 차주 녹화를 위한 준비를 한다. 일단 개그맨과 작가 등을 포함한 4~50명이 모여 이전 회차 프로그램을 리뷰하고, 차주 녹화에 보여줄 코너 아이템 회의를 연다. 목요일은 개그맨들이 준비하고 연습한 각 코너 검사를 하는데, 김민경 PD는 각 코너마다 피드백을 전한다고. 다음 주 월요일은 피드백을 잘 이행했는지, 수정할 건 없는지 확인하는 최종 점검에 들어간다. 그리고 대망의 녹화 날인 화요일, 3시간 정도 리허설 무대를 하며, 무대 동선이나 소품 체크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 과정에 있어서 김민경 PD만의 가이드라인이 있을 터. 그는 최대한 개그맨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 방송이기 때문에 누구나 봤을 때 불편한 소재나 코미디는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야 일요일 저녁 남녀노소 누구나 웃고 즐기며 프로그램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런 기준이 있지만, 개그 포인트라는 게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그 기준이 불명확할 수밖에 없다. 개그맨들이 대박 아이템을 가져왔다고 보여줘도 정작 본인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 이럴 때는 자신보다 개그맨들의 감을 믿는다. 워낙 무대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기 때문에 큰 신뢰를 한다고. 이는 그만큼 많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는 게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개그맨들 역시 김민경 PD를 신뢰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한 코너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오고, 이를 콩트로 승화시키며, 프로그램 시청률을 올리려는 개그맨들의 노력에 그는 매주 놀라운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양세형과 황제성 같은 경우,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아이디어를 잘 뽑는다고. 문세윤이나 양세찬은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자신을 찾아올 정도로 프로그램에 열성적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순위제를 통한 경쟁 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들은 경쟁 보다 동료애를 통한 원팀으로 생각한다. 타 방송사 출신이기는 하지만 선후배 개그맨들이 서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무대 에너지로 발산하며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김민경 PD는 이들과 함께 한 주씩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 또한 긍정적 에너지 받는다고. 그에게 가장 보람된 일을 묻자 작년 겨울, <코빅>의 모든 식구와 함께 괌으로 포상 휴가를 떠난 것이라 말했다. 지금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과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더불어 <코빅>을 거쳐 간 선배 PD들과 개그맨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전체 예능의 좋은 인재를 키우는 양성소?
전반적으로 공개 코미디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다양한 소재와 주 시청자 타깃층이 확실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그리고 유튜브 등 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코빅>은 2049세대 시청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셈. 김민경 PD는 애드리브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고 방청객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게 성공의 요인이라 말한다.
최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국주의 거짓말’, ‘니쭈의 ASMR’ 등이 대표적이다. ‘국주의 거짓말’은 후반부 방청객의 인스타그램을 공개하며 웃음을 자아내고, ‘니쭈의 ASMR’은 직접 방청객을 무대로 초대, 개그맨 이상준과 프로그램을 함께 한다. 특히 ‘니쭈의 ASMR’은 유튜브 형식을 가져온 사례로, 직접 유튜브를 운영중인 이상준의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 코너를 만든 것. 김민경 PD는 이처럼 공간의 제약에 따른 공개 코미디 제작의 어려움을 새로운 플랫폼과 아이디어를 통해 다변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타파해 나가고 있다.
<코빅>은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잇는 프로그램이자 전체 예능의 좋은 인재를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양세형, 박나래, 장도연을 비롯해 최근에는 황제성, 이용진, 이진호, 김용명까지 각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에서 역량을 펼치는 중. 김민경 PD는 <코빅>을 발판으로 다른 예능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 게다가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코빅> 무대에 서고 관객들과 소통하며 개그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개그맨들을 보면 대단함을 느낀다며, 그래서 이들과 하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고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매년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코빅>의 인기는 식지 않았어요.
그만큼 개그맨과 작가진, 선배 PD님들이 잘해줘서 가능했다고 봐요.
앞으로도 <코빅>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정이 든 <코빅>과 잠시 안녕을 준비하고 있는 김민경 PD. 임신 6개월차 예비 쌍둥이 엄마이기 때문이다. 곧 출산휴가를 떠나는 입장에서 친정과도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예정.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을 터. 김민경 PD의 순산을 기원하며, 업무 복귀 후 재미있고 유쾌한 프로그램으로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