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 시러 채소 시러!” 밥상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외침. 채소를 먹는 것은 물론,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이들로 인해 부모의 걱정은 쌓여만 간다. 아이의 건강을 지키고,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CJ프레시웨이 키즈 경로 전문 쉐프 김혜정 님이 떴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 작년 10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누리 채소학교’(이하 ‘채소학교’)를 열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의 열정,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요리보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다고?
“박수 세 번 시작! 짝! 짝! 짝!” 채소학교 프로그램이 열린 경기도 수원의 한 어린이집. 아이들 앞에서 서서 박수를 유도하며 집중시키는 김혜정 쉐프를 만날 수 있었다.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 채소를 만지며 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 진행 모습은 흡사 보육 교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에 힘을 얻는다는 그는 쉐프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는 것. 하지만 처음부터 그는 쉐프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었다. 피아노를 사랑했던 소녀였다.
어렸을 적 1순위는 피아노였어요.
그가 피아노보다 음식을 사랑하게 된 건 아버지가 족발집을 운영했던 중3 때 일이다. 아버지를 도와 주방에 들어갔다가 요리에 눈을 뜬 그는 요리사의 꿈을 키웠다. 호텔조리학과 졸업 후 타사 외식사업부, 오븐 회사 메뉴 개발팀 등을 거쳤고, 2010년 CJ프레시웨이 학교급식 경로 전문 쉐프로 입사했다. 단체 급식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김혜정 쉐프가 본격적으로 키즈 전문 쉐프로서 일을 한 건 결혼과 출산 이후 고객컨설팅파트로 온 2016년도부터다. 고객컨설팅파트에는 키즈, 급식, 외식 관련 전문가인 12명의 쉐프가 있고, 이들은 각각의 메뉴 개발과 부가서비스인 쿠킹클래스의 세부 콘텐츠(메뉴, 레시피 등) 기획 및 강의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키즈 경로 쉐프로서 지금까지 총 2,000여명 이상의 어린이 대상으로 300번 이상의 ‘아이누리 쿠킹클래스’를 진행해왔고, 지난해 10월에는 ‘아이누리 채소학교’를 신설해 운영하는 등 엄마의 마음으로 본인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당근 먹기 싫어하는 딸을 보고 생각해 낸 ‘채소학교’?
‘아이누리 채소학교’는 어린이집 만 4~5세 유아를 대상으로, 채소와 과일 섭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CJ프레시웨이만의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편식을 예방하고 바람직한 식습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김혜정 쉐프는 당근 먹는 걸 싫어하는 6살 딸이 채소학교 기획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딸에게 몸에 좋은 채소를 한 입이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바탕으로, 채소를 입에 넣지 않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채소학교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이었다. 채소 소믈리에는 채소와 과일의 가치와 매력을 알고 자연으로부터 식탁까지의 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주는 자격증. 일도 하고 아이도 케어 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자격증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전문성을 키워 수업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영업기획팀 유은채 영양사와 함께 도전했고, 약 6개월간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이후 둘은 채소학교 만들기에 돌입, 회의를 통해 다양한 채소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소학교가 기존 키즈 대상 쿠킹클래스와의 다른 건 영양교육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김혜정 쉐프는 기존 쿠킹클래스로만 진행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채소가 왜 좋은지를 알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야 채소에 친숙해지고, 잘 먹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유은채 영양사와 손을 잡고 채소 정보와 이로움을 전하는 영양교육, 식재료를 맛보고 음식을 만들어보는 오감(五感) 체험형 쿠킹클래스를 30분씩 진행하기로 한 것. 수업에 잘 따라와준 아이들에게는 수료증을 주는 등 성취감을 높이는 부분도 고려했다.
인터뷰 당일 진행된 채소학교 쿠킹클래스에서는 채소 부케 만들기와 토마토 김치 담그기 체험이 이뤄졌다. 김혜정 쉐프의 말에 따라 고사리 손으로 채소를 만지며 부케를 만들고, 토마토를 자른 후 준비된 양념을 버무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호기심과 재미, 그리고 뭔가를 만들었다는 성취감까지 엿보였다. 이것이 김혜정 쉐프가 채소학교를 만든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마음으로 공들여 기획한 채소학교지만 사기가 꺾일 때도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수업에 집중하기 보다는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채소를 먹은 후 바로 뱉어버리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수많은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고, 집에서 자녀를 키우는 베테랑 엄마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비웠다.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아이들이 채소 하나라도 알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려 노력하고 있다. 시행착오 끝에 얻은 그만의 깨달음이다.
환상의 짝궁(?)과 함께, 채소 전도사 역할은 계속~
김혜정 쉐프에게 유은채 영양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채소학교 특성상 그와의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소속 부서도 다르고, 같은 층에서 근무하고 있진 않지만 하루 평균 3~4통씩 전화를 하고, 시간 되면 만나서 업무 얘기로 꽃을 피우는 이들은 사내에서 ‘환상의 짝꿍’으로 불린다. 남편 보다 연락을 더 자주한다는 김혜정 쉐프의 말만 들어도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 수 있다.
9살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 잘 통한다는 이들은 업무상 가벼운 대화를 나눌지라도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인가 하는 기준선이다. 이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 때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추고 재미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위주로 아이템을 선별한다. 아이디어는 김혜정 쉐프가 실행은 유은채 영양사가 맡아서 진행하는 편이라고.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채소 부케다. 아이에 입장에서 만드는 재미와 성취감, 그리고 부모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강점이 녹아있다. 낫또를 활용한 메주 만들기 프로그램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키즈 교육 관련 영상이나 자료는 기본, 아이들과 외식을 할 때도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뭘 먹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다 정작 본인 아이들을 못 챙겨줄 때도 있다고.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채소학교는 타사 쿠킹클래스와의 차별화에 성공, 벌써 올해 상반기 교육 일정이 꽉 채워져 있을 정도로 CJ프레시웨이가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김혜정 쉐프는 유은채 영양사와 함께 채소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아닌 성인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다.
하루 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혜정 쉐프. 힘들 때도 많지만 해맑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자식 같다며 밝은 웃음을 내보이는 그에게 채소학교란 무엇일까?
아이들 관련 일은 정말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힘이 나죠. 앞으로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교육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채소 전도사의 길을 가보겠습니다.
김혜정 쉐프에게 채소학교를 진행하면서 잊을 수 없던 순간을 물어봤더니 수업시간 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다가 끝나자 마자 자신에게 걸어와 ‘꿀잼!’이라는 말을 남긴 아이를 얘기했다. 수업 진행 내내 그 아이가 신경 쓰였다가 그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꼈다고. 이 에피소드를 들은 후, 그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아이들에게 그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채소학교는 모두의 배움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