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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처럼 솟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강남의 좁은 언덕 위 높은 건물들 사이에 둘러싸인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건물. 카페와 예술가의 작업실, 사람들의 삶의 공간들이 층마다 차지하고 있는 이 건물을 홍상수 감독은 하나의 작은 ‘탑’으로 상상한다. 불교에서 탑은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고 부처의 현존을 바라보며 기도했던 중요한 상징물이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영화 <탑>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그 탑이 현대 도시 중심에서 상상될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고 염원할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이 <탑>을 통해서 고백하는 자신의 속마음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혜영의 아담한 건물이 갖는 매력 영화 <탑>에는 홍상수 감독 영화의 친숙한 풍경들과 여러 잔의 와인들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들이 담겨있다(출처: 네이버 영화) 김병수 감독, 그는 중견 감독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에겐 별거 중인 아내와 관계가 서먹한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이 미술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쪽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 자신이 아는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혜영을 소개해주기로 마음먹는다. 딸과 함께 혜영을 찾아간 날, 김 감독은 혜영이 소유한 건물에 매료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멋진 옥탑 테라스를 가진 건물. 문득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자 그를 흠모했던 혜영이 흔쾌히 한 층을 내어 준다. 그렇게 시작한 건물에서의 삶. 김 감독은 1층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건물 2층에서 푸드 스튜디오와 식당을 겸하며 운영하는 선희, 부동산 중개인 지영을 만나며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관계들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중견 감독, 김병수의 세 가지 모습 <탑>에서 김 감독은 크게 세 번의 신변 변화를 겪는다. 첫 번째는 차기작을 준비 중인 상태로, 안정적이고 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하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다. 상까지 받았으니 약간의 자신감도 차올랐을 테고 이참에 딸과도 화해하고 싶다. 두 번째는 그 차기작이 엎어진,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상태의 모습이다. 딸과의 관계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당장은 암담할 뿐이다. 자신감을 잃은 그는 그의 작품을 좋아해 주는 선희에게 마음이 움직이지만, 그녀와의 관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신을 만난 뒤 삶의 새로운 원동력을 얻어 일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려는 모습이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주는 지영이 있다. 지영이 챙겨주는 건강식품과 음식을 먹으며 그는 인생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있을 수 있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중년 남성, 김병수의 공과 사 김 감독은 과연 세 가지 모습 중에서 어떤 모습을 가장 욕망할까? 사회적 성공과 안정을 취한 모습? 아니면 인생을 통달하고 초월적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모습? <탑>은 그 어떤 모습에도 강조점을 찍지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면서 한순간 공존할 수 없는 세 가지 모습들은 그 자체로 김 감독의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불안한 내면을 상징화한다. 이 내면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김 감독의 위치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병수와 딸 정수의 모습(출처: 네이버 영화)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중견 감독,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그의 존재는 어쩌면 중년 남성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룬 모습이다. 비록 준비 중인 영화가 엎어져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분명 차기작도 언젠가는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은 자이다. 그는 그 탑을 얼마든 높게 쌓을 수 있으며 그럴 수 있는 자격 또한 갖추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불안감을 부여잡고 하지만 한 존재로서 김 감독은 극심한 불안을 겪는다. 그 불안은 사회적 성취와 업적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를 고립시킨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람들로부터 잊혀질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그를 3층짜리 좁은 건물 안으로 더욱 가둬버리고 그 속에서 끙끙 앓도록 만든다. 무엇이 그를 해방시킬 수 있을까? 이 또한 <탑>은 쉽게 결론 내지 않는다. 한 존재로서 겪어내야 하는 불안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절대적이고 근본적이다. 뛰어난 절경이 펼쳐지는 마천루도 아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 옥탑의 풍경을 보며 감탄을 내뱉는 김 감독의 감동은 이미 그 자체로 삭막하고 메말라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감을 부여잡고 끝내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김 감독의 몸부림이 결국 종교적 신비 체험을 통해 극복된다는 설정 또한 지극히 풍자적이다. 김 감독의 딸처럼 제주도로 도피하는 것이 과연 해답일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힘든 도시인들은 어쩌면 지금도 건물들을 바라보며 각자의 소원을 간절히 빌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그 건물들이 부처의 사리를 간직한 탑들의 효험이 발휘될 수 있길 바라본다. 영화 ‘탑’은 홍상수 감독 28번째 작품으로 2021년 가을, 서울 논현동의 한 건물을 주 무대로 촬영한 흑백 영화이다.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제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으며, 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탑’은 11월 3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 등 전국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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