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로 인해 사람들은 바쁘다. 화제작은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챙겨봐야 한다. 또, 남들은 잘 몰라도 나만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도 놓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시간도 부족하지만,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때그때 원하는 작품을 보기 위해 다수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가입하고 구독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최근엔 ‘메뚜기족’이란 말도 생겼다. 보고 싶은 작품이 나오면 해당 OTT에 가입했다가 금방 해지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수많은 메뚜기족들로 인해 OTT 플랫폼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강력한 ‘장르물’의 탄생에 있다. 장르물은 정교하고 치밀한 전개, 다양하고 놀라운 반전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만든다.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의 결정체’인 셈이다. 이용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도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폭발적인 화력의 장르물들이 잇달아 나온다면 해당 OTT에선 더 이상 메뚜기족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K장르물 ‘괴이’, ‘욘더’
티빙을 중심으로 한 한국 OTT 플랫폼도 이를 간파하고 장르물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티빙은 올해 ‘돼지의 왕’, ‘괴이’, ‘욘더’ 등 장르물을 잇달아 선보인다. 지난 3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김동욱, 김성규 주연의 ‘돼지의 왕’은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괴이’와 ‘욘더’는 국내 공개에 앞서 해외에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구교환, 신현빈 주연의 ‘괴이’는 프랑스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돼 많은 화제가 됐다. 2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열린 상영회에선 환호성과 박수가 연신 터져 나왔다. 이준익 감독의 첫 OTT 진출작이자 신하균, 한지민이 출연하는 ‘욘더’엔 글로벌 미디어그룹 ‘파라마운트’가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욘더는 티빙은 물론 파라마운트가 운영하고 있는 OTT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도 공개된다.
웰메이드 장르물의 탄생은 단순히 한 작품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고 다양한 분석을 낳는 킬러 콘텐츠가 돼, OTT 브랜드 자체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 몇 개 나오면 해당 OTT의 성장엔 가속도가 붙는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가 국내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비결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종이의 집’ ‘기묘한 이야기’ 등 각양각색의 장르물을 선보인 덕분이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이란 강력한 한국 장르물까지 더해지며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
장르물을 중심으로 한 킬러 콘텐츠는 ‘자물쇠 효과’도 만들어낸다. 자물쇠 효과는 마케팅 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용어로, ‘락인 효과(Lock-In Effect)’로도 불린다. 특정 브랜드에 매료된 충성심 있는 고객들이 시간이 지나도 다른 브랜드로 옮겨가지 않고 계속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자물쇠로 문을 잠근 듯 빠져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이탈하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고 귀찮게 여긴다. 다른 브랜드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보다, 기존에 이용하던 브랜드에서 앞으로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공급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스마트폰 신형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새벽부터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팬덤 현상이 있다. 이들은 해당 브랜드의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PC, 스마트 워치 등을 구매해 이용한다. 다음에 기기를 바꿀 때도 해당 브랜드를 고집한다. 이미 그 브랜드에 매료됐고,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이탈하지 않고 반복 구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신제품에 대한 기다림은 곧 일상이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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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대감 위에 탄생할 티빙의 장르물
아쉽게도 지금까지 OTT 시장에선 자물쇠 효과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도 그런 예가 있었다. 처음 tvN이란 채널이 생겼을 때만 해도, 지상파 중심의 견고한 시청 패턴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참신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시장에 균열을 일으켰고, 마침내 tvN은 시청자들의 확고한 신뢰를 얻게 됐다. 그리고 여전히 락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OCN 역시 국내 채널에선 보기 힘들었던 장르물을 꾸준히 선보이며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해냈다.
그런 의미에서 티빙은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tvN, OCN 등 채널의 콘텐츠를 모두 제공하며, 기존 채널 시청자들의 믿음을 고스란히 갖고 왔다. 여기에 장르물과 장르물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뛰어난 오리지널 콘텐츠도 다수 만들어내고 있다. ‘술꾼도시여자들’, ‘유미의 세포들’, ‘환승연애’ 그리고 지난 4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서울체크인’ 등은 입소문을 타고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예능은 글로벌 OTT들도 약세를 보일 만큼 쉽지 않은 분야지만, 티빙은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여기에 몰입감이 뛰어나고 화제성이 높은 장르물이 잇달아 나온다면, 티빙은 글로벌 OTT에 맞먹는 막강한 파급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결국 OTT 브랜드의 완성이자 확장의 출발점은 이용자의 믿음, 그리고 기대감이다. 이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티빙은 이제 강력한 장르물로 단단한 자물쇠를 걸어 잠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