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 산업의 지형도를 그려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2~3년 전만 해도 꽤 단조로웠다. 기획사, 플랫폼, 방송사 등 각자의 영역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연결된다 해도 그 고리가 약했다. 굳이 선으로 이어본다면 아티스트 육성부터 음원 발매, 방송 출연까지 단계별로 연한 선을 그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뤄진 작업들을 토대로 선을 그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기획사, 플랫폼, 방송사가 서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커다란 그물망이 그려진다. 이뿐 아니라 음악 산업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까지 선이 이어지기도 한다. 연결이 무한하게 확장돼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하나의 IP로 5개의 공간을 관통하다
국내 음악 산업에서 ‘연결’이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방송 채널 Mnet을 통해 음악 사업을 지속해 온 CJ ENM은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키워낸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지난해 합작법인 ‘빌리프랩’을 설립하고 아티스트 육성에 나섰다, 그리고 첫 아티스트인 ‘엔하이픈’을 함께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올해 CJ ENM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 지고 있다.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와 연내 합작법인을 세운다. 방송사와 게임 업체가 손을 잡고 음악 사업을 한다는 발상은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일. CJ ENM은 기존의 콘텐츠 제작 노하우에 엔씨소프트의 IT 기술을 더해 이전엔 볼 수 없었던 K팝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CJ ENM 뿐만 아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카카오M 등은 다양한 협업에 나섰다. 함께 투자하고 서비스를 공동 개발한다. 전통적인 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퀀텀 점프를 해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결의 수와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 국내 음악 산업이 아우르는 공간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 음악 산업은 오랫동안 두 가지 공간에 갇혀 있었다. 한국,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K팝 열풍이 불고, 기업 간 합종연횡(合從連衡)이 활발히 이뤄지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수평적으로는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직적으로는 오프라인, 온라인, 가상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동일한 아티스트와 하나의 지식재산권(IP)만으로 5개의 공간을 모두 관통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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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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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버렸어
발자국이 지워진 거리
여기 넘어져있는 나
혼자 가네 시간이
미안해 말도 없이
오늘도 비가 내릴 것 같아
흠뻑 젖어버렸네
아직도 멈추질 않아
저 먹구름보다 빨리 달려가
그럼 될 줄 알았는데
나 겨우 사람인가 봐
몹시 아프네
세상이란 놈이 준 감기
덕분에 눌러보는 먼지 쌓인 되감기
넘어진 채 청하는 엇박자의 춤
겨울이 오면 내쉬자
더 뜨거운 숨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발이 떼지질 않아 않아 oh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Like an echo in the forest
하루가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Yeah life goes on
Like an arrow in the blue sky
또 하루 더 날아가지
On my pillow, on my table
Yeah life goes on
Like this again
이 음악을 빌려 너에게 나 전할게
사람들은 말해 세상이 다 변했대
다행히도 우리 사이는
아직 여태 안 변했네
늘 하던 시작과 끝 ‘안녕’이란 말로
오늘과 내일을 또 함께 이어보자고
멈춰있지만 어둠에 숨지 마
빛은 또 떠오르니깐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발이 떼지질 않아 않아 oh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Like an echo in the forest
하루가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Yeah life goes on
Like an arrow in the blue sky
또 하루 더 날아가지
On my pillow, on my table
Yeah life goes on
Like this again
I remember
I remember
I remember
I remember
이런 의미에서 CJ ENM과 엔씨소프트의 연결은 참신한 동시에 시의적절 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CJ ENM은 지난해 ‘케이콘택트(KCON:TACT)’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비대면으로 진행하며 혼합현실(XR), 볼류메트릭(Volumetric) 등 최첨단 기술을 선보였다. 여기에 엔씨소프트의 IT기술이 결합되면 한 단계 더 진일보한 무대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현실과 가상을 잇는 3차원의 공간 ‘메타버스(Metaverse)’의 시대가 열린 만큼, 두 기업은 이 공간에서 무한한 K팝의 세계를 펼쳐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신속하고 능동적인 K팝 연합체
이 같은 국내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과거엔 업종을 불문하고 국내 기업 대부분이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먼저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선점한 해외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음악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은 ‘패스트 팔로우’ 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른 제조업 등에 비해선 느렸다.
그런데 최근엔 확연히 달라졌다. 전 세계 어느 기업들보다 빨리 움직이며 색다른 연결과 융합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빠른 속도만큼 폭도 크다. 현재 해외 시장에서 5개의 공간을 동시에 관통하는 시도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우’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 ‘패스트 무버(fast mover)’가 국내 음악 산업에서 탄생한 게 아닐까. 아직은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세계 1등까진 아니고, 세계 최초로 뭔가를 발견해내진 못했다. 그러나 서로 힘을 합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패스트 무버’ 연합체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이 수많은 연결과 조합 중 모든 것이 성공할 순 없다. 그러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고 다양한 지역을 탐사하며 석유가 날만한 곳을 발견해 내는 석유 시추 과정과 비슷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 판을 통째로 바꿔버릴 강력한 카드가 어디선가 불쑥 등장할지 모른다.
혼자라면 그 탐사 과정이 지난하고 성공 확률도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친 상태에선 다르다. 몸집이 커진 만큼 더 높이, 멀리 볼 수 있게 됐다. 전 세계 음악 산업을 뒤흔들 K팝 패스트 무버들의 힘찬 발걸음이 이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