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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 (파우스트) “나는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언제나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파우스트>의 한 장면이다. 워낙 명작으로 꼽히는 고전 소설이다 보니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줄거리 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을 만큼 간결하다. 이야기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고결한 늙은 학자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도록 유혹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에 앞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처음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악이지만 선이기도 하다는 말은, 곧 선과 악은 늘 공존하며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선과 악, 그 절묘한 만남과 조합은 다양한 작품 속에서 꾸준히 이뤄져 왔으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티빙의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은 명실상부하게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찬란한 선악의 광시곡을 펼쳐 보이며 계보의 정점을 찍는다. 극한의 선과 악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폐쇄된 공간 안에 함께 하며 강렬하고 압도적인 스릴과 공포를 선사한다. 김희경|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돼지 꿈을 꾸고 마주한 연쇄 살인마 총 10부작으로 구성된 <운수 오진 날>은 티빙에서 24일 Part 1에 해당하는 1~6회분을 공개했다. tvN에선 지난 20일부터 월, 화요일에 차례로 방영되고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평범한 택시 기사 오택, 그에게 동행을 제안하는 연쇄 살인마 금혁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인업도 화려하다. 배우 이성민이 오택 역을, 유연석이 금혁수 역을 맡았다. 이정은은 금혁수로 인해 아들을 잃은 엄마 황순규 역을 연기했다. 제목 <운수 오진 날>이 현진건 작가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모티브 한 것처럼, 작품의 초반 이야기도 소설과 비슷하게 시작된다. 어려운 형편에도 택시 기사 일을 살아가고 있는 오택. 그는 ‘사람은 참 좋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착하다 보니 사기를 당해 감옥에 가기도 하고, 가족들을 크게 고생시켜 원망을 듣기도 한다. 그런 오택은 어느 날 돼지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에겐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운수 좋은 날이 펼쳐진다. 이 좋은 날의 끝자락에 우연히 한 남자를 태우게 되는데, 그가 바로 금혁수다. 금혁수는 오택에게 고액을 제시하며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묵포행 운전을 제안한다. 딸의 등록금을 급히 마련해야 했던 오택은 그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남자, 악의 끝을 보여주는 남자가 같은 차를 타고 캄캄한 도로 위를 달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으로도 섬뜩해지는 위험천만한 동행. <운수 오진 날>은 이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로 시청자들을 휘몰아치는 공포의 세계로 초대한다. 다채롭고 탁월한 변주로 빛난 로드 무비 작품은 ‘로드 무비(road movie)’의 형식을 띠고 전개된다. 로드 무비는 특정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의미한다. 로드 무비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동행자들의 대화와 행동, 예측 불허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핵심이다. <운수 오진 날>은 로드 무비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작품이다. 서울에서 묵포항까지 장시간 이어지는 이동 과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다채롭고 탁월한 ‘변주’를 통해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 변주에 활용된 첫 번째 주요 장치는 금혁수가 오택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살인 이야기다. 그는 처음 살인을 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 노숙자들을 잇달아 죽인 이야기, 이후 다른 형태의 살인을 하게 된 이야기 등을 차례로 늘어놓는다. 드라마는 과거 살인 장면들과 함께 두 사람이 이동하는 택시 안의 모습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금혁수는 과거 살인이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더욱 극악무도한 인물로 변해갔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그 얘기를 할 때엔 마치 영웅담이라도 늘어놓는 듯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반면 강제로 듣고 있어야 하는 오택의 표정은 갈수록 처참하게 굳어간다. 변주의 두 번째 장치는 금혁수가 놓은 덫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오택의 모습이다. 오택은 금혁수가 연쇄 살인마임을 깨닫고 그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비상 방범등을 켜기도 하고, 직접 도망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변수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오택의 도망-실패의 반복과 변주는 극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아들의 복수를 대신하려는 황순규의 추격, 금혁수의 범행을 알아챈 경찰의 추격까지 더해지면서 긴장감을 자아낸다. 선과 악, 그 강렬한 만남의 연결고리는? <운수 오진 날>의 진가는 오택과 금혁수의 만남에 작용한 연결고리가 나오며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연결고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드러나 큰 충격을 선사한다. PART 1의 4화부터 나오는 해당 이야기는 PART 2에 걸쳐 전개될 예정이다. 과연 선악이 한 지점에서 조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연결고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완성하며 드라마 전체를 아우를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이 작품은 배우가 가진 선과 악, 그 양면성의 이미지를 모두 끄집어내 적극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을 연기했던 이성민은 이번엔 너무 착해서 답답하기까지 한 오택 그 자체가 되어 열연을 펼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따뜻함을 가진 소아과 의사 안정원을 연기했던 유연석은 광기에 사로잡힌 희대의 살인마로 변신한다. 게다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처절한 추격전을 펼치는 이정은의 농익은 연기가 더해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만큼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운수 오진 날>. 많은 시청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의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와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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