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이 뭐죠?” 10년 뒤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삐삐, MP3 플레이어처럼 밥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밥보다 맛있는 밥, ‘햇반’ 때문이다. 22년전 햇반이 처음 출시됐을 때 만해도 그랬다. “누가 밥을 사먹어?” 지금은 “누가 밥을 해먹어?” 한다. 어느덧 비상식에서 일상식으로 자리잡은 햇반은 우리네 식탁 위 빠질 수 없는 음식! 이러한 햇반의 성공 신화를 쓴 주역이 있다. 바로 CJ제일제당 식품개발센터의 햇반컵반팀 정효영 수석연구원. 그에게 맛있는 밥맛의 비결을 들어봤다.
15년간 햇반을 짓고 또 짓다
헷~! CJ제일제당 식품개발센터 햇반컵반팀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햇반에 반해도 단단히 반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전분 화학을 연구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CJ제일제당에 입사했다. 그때가 2000년 6월. 처음엔 부침 가루, 튀김 가루 등 프리 믹스 제품을 개발하다가 2005년에 쌀가공팀으로 왔다. 쌀가공팀은 현재 햇반컵반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15년째 햇반을 연구 중이다.
정효영 수석연구원이 이끌고 있는 햇반컵반팀은 햇반부터 ‘햇반 잡곡밥’, ‘햇반컵반’, ‘비비고 죽’ 등 쌀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총 14명의 구성원들은 밥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들! CJ제일제당이 ‘밥부심(밥에 대한 자부심)’ 충만할 수 있게 된 건 이들의 오랜 노력 덕분이다.
햇반이 지금껏 성장한 결과가 그들을 증명한다. 1996년 12월 출시부터 2018년 12월까지 무려 22년간 판매된 햇반의 개수는 약 25억 개. 5천 만 국민이 1인당 약 50개를 먹은 셈이다. 이를 나란히 배열하면 지구를 8바퀴나 돈다고. 지난 한 해 동안 만해도 4억 1,700만 개가 팔려, 국민 1인당 8개 이상씩 먹었다고 볼 수 있다. ‘즉석밥=햇반=맛있는 밥’이라는 공식이 해마다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햇반의 맛있는 밥맛의 비결, 도대체 뭘까?
당일 도정! 맛있는 밥의 이유 있는 진화
햇반 한 그릇에 담긴 원료는 오직 쌀과 물. 단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안엔 20년 넘게 축적된 CJ제일제당의 기술력도 차곡차곡 담겨 있다. 밥이 한결같은 맛을 내기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마다 기후 조건이 다른 건 물론 벼농사 컨디션도 제각각. 같은 지역, 같은 품종의 쌀이라도 품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햇반은 늘 똑같은 밥맛을 자랑하지 않은가. 쌀의 품종별, 지역별, 계절별로 공정 조건을 최적으로 맞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 조건을 달리한 밥을 지어 먹어보곤 한다.
회사 연구소라 하면 신제품을 꾸준히 만들어 내야 하죠. 그런데 햇반은 흰쌀밥 만해도 굉장히 오랫동안 기초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졌습니다. 햇반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기본부터 쌓아 올린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죠.
그는 해마다 틈만 나면 지역, 품종별로 가장 우수한 쌀을 찾아 나섰다. 매년 햇곡이 나는 추수철이 되면 어떤 쌀을 사들일지 정하고, 쌀을 수확하는 방법도 재배 농가들에 미리 공유하고 기준에 맞춰 수확한 쌀을 수매했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쌀은 현미를 도정한 백미. 그러나 햇반 원료 쌀은 나락에서 왕겨만 제거한 현미 그대로 들어온다. CJ제일제당 햇반 공장에서 백미로 직접 도정하기 때문이다.
햇반의 맛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쌀 도정 기술이야말로 밥맛을 좌우하는 핵심! 2008년 CJ제일제당은 쌀 품질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자가 도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래서 해마다 달라지는 쌀의 컨디션에 따라, 품종에 따라 도정 조건을 달리한다. 이렇게 품종별로 맞춤식 도정을 하기 때문에, 좋은 밥맛을 낼 수 있는 쌀을 햇반의 원료미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도정 시스템은 햇반 제조 공정 바로 앞에 갖춰져 있다. 도정하자마자 바로 햇반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저온 보관된 신선한 현미를 최고의 기술력으로 직접 도정하고, 도정된 백미를 바로 밥으로 짓기 때문에 햇반은 맛있을 수밖에. 쌀은 도정하는 순간부터 품질이 떨어진다. 최상의 밥맛을 내기 위해 당일 도정한 쌀로 바로 제조하는 것, 이것이 집밥 보다 맛있는 햇반의 비결이다.
세계인의 ‘밥심’ 책임질 그날까지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집에서도 가족과 식사할 때 햇반을 먹는다. 가장 간편하면서도 안전하고 맛있는 밥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간혹 마트에 갔다가 카트마다 햇반이 가득 담겨 있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집에서도 말해요. 햇반 쌀이 진짜 좋은 쌀이라고. 쌀 배송조차 하루 중 기온이 낮은 새벽에 할 만큼, 하나하나 최적으로 관리하고 직접 도정해서 갓 만든다고 알려주죠. 가성비를 떠나서도 품질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부합니다.
최근엔 잡곡밥에 대한 연구도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기반으로 출시된 발아현미밥, 흑미밥, 오곡밥 등 다양한 잡곡밥은 물론 지난 해엔 현미, 보리, 흑미가 고루 들어간 ‘햇반 매일잡곡밥’도 선보였다.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우리나라 토종 잡곡을 더 많이 제품화해 알리고 싶단다. 좋은 품종이 개발되고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 지은 만큼, 잘 활용해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다. 잡곡밥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기에 햇반의 잡곡밥 카테고리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다.
저희가 품종에 늘 관심을 갖는 이유도 품종 개발자, 농민들 모두 함께 가자는 마음 때문이죠. 해외의 슈퍼 곡물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몸에 좋은 토종 잡곡들도 좋은 게 많습니다. 우리나라 잡곡을 더 많이 알려 드리고 싶어요.
아직 끝이 아니다. 그의 최종 꿈은 햇반의 세계화다.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 흔히 먹는 찰기 있는 단립종 쌀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주로 먹는 찰기가 없어 흐트러지는 식감의 장립종 쌀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전 세계인이 먹는 밥이 햇반이 될지도?!
햇반의 맛 비결, 알고 보니 아주 간단하다. 갓 구운 빵이 맛있듯! 갓 도정해 바로 만들었기 때문에 맛있는 것. 우수한 원료와 기본에 충실했던 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성장한 햇반은 이제 전 세계의 주방에 놓인 밥솥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엔 2년 전부터 준비한 획기적인 햇반 제품도 나올 예정이라고. 햇반의 밥심, 슈퍼 파워로 거듭나고 있다. 당일 도정한 밥맛,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