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슈로 극장 및 영화 산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전체 관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89.4% 감소한 179만 명,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1월 기준 최저치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신작 부재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오는 17일부터 CJ CGV의 ‘시그니처K’를 통해 과거 극장으로 관객들을 불러모았던 국내 명작들이 스크린으로 컴백한다는 것! 그 첫 영화는 4K 영상으로 중무장한 ‘태극기 휘날리며’다. 17년 만에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한 콘텐츠존 장지욱 대표는 과거 우수한 한국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4K 옷을 입기까지!
Q.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한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 2004년 2월 10일에 이 영화가 개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천만 영화(11,746,135명)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았다. 주변에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을 생각하니 설레고, 감회가 새롭다.
Q. 그동안 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극장을 비롯해 IPTV와 VOD 등 부가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볼 수가 없어서 이번 개봉 소식이 더 반가운 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말 한대로 그동안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유는 이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강제규 필름’이 문을 닫은 후, 저작권 관련 문제로 인해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약 7년 전부터 1980∼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들의 2차 저작권을 확보해 리마스터링을 진행해왔는데, 그 중 신현준, 신은경 주연의 ‘블루’(2003)(제작사 강제규 필름, 지오 엔터테인먼트)의 리마스터링 작업을 담당하면서 지오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통해 강제규 감독님과 연락이 닿았다. 이후 지속적으로 조율을 했고, 과거 필름이 아닌 좀더 좋은 화질과 사운드로 영화를 만나보고 싶고, 관객들도 함께 누렸으면 한다는 감독님의 바람으로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게 되었다.
Q. 최근 재개봉한 ‘화양연화’ 등 오래전 사랑받은 작품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무엇이며, 어떤 작업을 거쳐 관객들을 만나는지가 궁금하다.
일단 리마스터링이란 복원의 개념으로 기존 촬영한 원본 필름을 화질 및 음질상 문제점을 개선해 더 나은 퀄리티로 만나게 해주는 마법 같은 작업이다. 일단 저작권자와 협의 이후, 원본 필름을 받으면 먼저 세척 과정을 거친다. 이때 필름에 붙어있는 먼지 등의 이물질을 없앤다. 이후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국내에 딱 두 대 밖에 없는 스캔 기계를 통해 한 컷 한 컷 디지털로 스캔을 받는데, 보통 2~3일 걸린다. 이후 2~3일 이어지는 색보정 작업을 거친 후에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간다.
스캔을 받은 컷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손상된 부분을 보완하거나 먼지 등을 없애는 등의 세부 작업에 들어간다. 이 기간은 약 보름 정도 걸린다. 이후 음향 등의 문제점도 잡아주며 일련의 작업들이 끝나면 결과물이 완성되는데, 원본 필름 상태 및 컷 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 한 달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시그니처K를 통해 국내 명작을 선보이는 의미는?
Q. 시그니처K를 통해 극장에서 한국영화 부흥기를 이끌었던 명작들을 다시 본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남다른데,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태극기 휘날리며’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기로 했을때는 극장 개봉을 염두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리마스터링 작업 관련해서 CGV와 미팅을 가졌는데, 그 때 시그니처K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이슈로 신작 개봉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고, 보여줄 영화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상황에서 그동안 작업했던 작품을 관객에게 큰 스크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Q. ‘태극기 휘날리며’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선보일 예정인데, 이 작품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2004년 당시 지금처럼 DCP(Digital Cinema Package)영사기가 아닌 필름 영사기를 통해 전국 극장에서 상영했다. 앞서 소개했듯이 천만 영화로 기록될 만큼 다수의 극장에서 필름을 계속 돌려가며 상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필름이 마모가 되거나 색감이 극장 영사기 상태에 따라 색감이 둔탁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현재 리마스터링 색보정 담당자가 당시 이 작품을 타 지방 극장에서 봤는데, 당시 화면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보였다더라. 근데, 이번 작업을 할 때 뒤늦게 원본 색감을 알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
이처럼 과거 필름으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분들이라면 더 좋은 화질과 음향으로 다시 한 번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처음 보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이 신작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당시 15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지금 봐도 손색없는 전쟁 장면 등 즐길거리가 많을 것 같다. 이 같은 뷰 포인트들이 있기 때문에 극장에 오셔서 영화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Q. 개인적으로는 장동건, 원빈 등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라 생각한다.
두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과 더불어 故 이은주 배우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기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2월 말에 강제규 감독님과 리마스터링 작업 중간 체크를 했는데, 그녀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가슴 아파하시더라.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스크린을 통해 우리 곁을 떠난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건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Q.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유수의 우리나라 영화가 시그니처K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세대를 넘어 다시 극장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 의미라 남다를 것 같다.
영화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작품성과 완성도 높은 한국영화를 마주했고, 그 영화들이 극장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다수의 작품이 선보일 예정인데,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정진우 감독의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자녀목’ 등이 있다. 이 세 편은 에로 영화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모두 작품성을 인정 받은 수준 높은 작품이다. 이 밖에도 정식, 정범식 감독의 ‘기담’ 등이 예정돼있다. 이번 기회에 잊혀진 한국 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침체된 영화산업, 극장이 살아야 한다!
Q.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30년 동안 이 업에 종사했는데, 우리나라에 좋은 작품이 너무나 많다. 이런 작품을 좀 더 좋은 퀄리티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7년 전부터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까지 한 200여편이 되는 것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원본 필름이 잘 보관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은데, ‘몽정기’는 원본 필름이 따로 없어 영상원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할 예정이고, 곽재용 감독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도 필름을 찾기 위해 수소문한 끝에 천안에서 가져온 케이스다.
Q. 꼭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는 꼭 해보고 싶다. 1998년 개봉작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쉬리’를 꼭 해보고 싶다. 이 작품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문을 연 작품으로,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을 갖고 있다.
또 한 편을 꼽자면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이다. 최민식, 장백지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도 당시 마니아 관객층을 형성할 정도로 이슈가 된 작품인데, 이들의 가슴 아픈 멜로 연기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두 작품은 현재 저작권 조율 중에 있는데, 하루 빨리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선보이고 싶다.
Q. 시그니처K를 통해 과거 한국영화들이 재개봉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둘 수 있는데, 여기에 새로운 한국영화도 극장에서 함께 상영하면 더 의미가 깊을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극장에서 신작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해외와 더불어 한국영화 기대작들도 개봉이 밀리면서 관객수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산업 자체가 극장이 주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야 그 다음에 부가서비스까지 이어지며 선순환이 되는데, 신작들이 자취를 감춰 순환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고, 그로 인해 새로운 영화 제작도 딜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기대작들이 하루 빨리 극장에서 상영하기를 바라며, 그 단초를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시그니처K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 마련해 예전처럼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같이 울고 웃고 우는 분위기를 찾았으면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앞으로도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겸비했던 한국 영화를 선별해서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쭉 이어나갈 예정이고, 이번 시그니처K를 통해 선보이는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에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 찾아오기를 바라고,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MZ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장지욱 대표는 유럽 출장 때 벨기에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다시 한 번 한국영화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과 극장이란 한 공간에 모두 모여 우리나라 영화를 봤을 때의 그 묘한 감정이 생생하다며, 그때 한국영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영화산업계가 침체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잠재된 콘텐츠의 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장지욱 대표처럼 시그니처K를 통해 한국 영화의 힘을 극장에서 다시 만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