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은 갖고 있다. 중요한 건 이루려는 의지와 해보자는 용기다. 김민경 작가는 자신의 의지와 용기를 소재 삼아 오펜(O’PEN) 2기 합격이라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도시설계 관련 일을 그만두고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에 올인한 그는 오는 2월 2일 tvN에서 그의 첫 단막극 <파고>가 방영되는 기쁨을 만끽할 예정. 걱정이 많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신인 작가로서 첫 작품을 공개한다는 것 자체에 설레는 표정이었다. 즐겁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이로써 그의 삶은 충만해 보였다.
도시설계 일에 종사하다 펜을 잡은 사연?
일하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김민경 작가님이시죠?’ 하더라고요.
만감이 교차했다. 선망의 직업이었던 작가가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을 줄 누구 알았으랴. 오펜에서 걸려온 전화로 2기 합격 소식을 알게 된 그는 그날을 회상하며 잠시 울컥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겐 마음속에 품은 꿈이 드디어 행복한 부화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을터.
초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영화 보는 걸 낙으로 삼았다. 여리여리한 소녀 감성에 맞을 만한 멜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을 것이라는 예상은 접어둬라. 그는 호러, 스릴러 등 강도 센(?) 장르만 섭렵했다. 다수의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씩 습작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관련 학과를 택하진 않았다. 사회적, 예술적 합일을 이루면서 할 수 있는 일이 ‘건축’이라는 생각에 건축학과를 들어갔고, 대학원에서 도시 설계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도시디자인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전공을 살린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보람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속품처럼 움직이는 자신이 미웠다.
회사 생활의 염증은 글 쓰는 재미로 치유했다. 퇴근 후 글을 썼고,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으면 자신의 작품을 제출하며 작가의 꿈을 이루려 노력했다. 매번 낙방은 했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에 기분은 좋았다. 아마도 이런 노력 때문에 오펜 2기 멤버가 된 것은 아닐까.
오펜의 적극적인 지원 받으며 완성한 <파고>
오펜 당선작인 <파고>는 연도라는 섬으로 전근을 온 한 경찰이 도덕적 불감증으로 만연된 섬 주민들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생기는 일을 그린다. tvN ‘드라마 스테이지 2019’의 마지막 편을 장식할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 ‘염전 노예 사건’을 접하게 됐는데, 잔상이 오래 남았어요.
우연히 시사 프로그램에서 염전 노예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이런 비슷한 사회 문제들이 연이어 생기는 것에 분노 아닌 분노를 했다. 회사 휴직 후, KOICA 해외 봉사활동을 떠난 그는 봉사활동이 끝날 무렵 닫힌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엮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고 한 달 여 만에 초고를 완성 했다. 이후 우연히 오펜 지원 소식을 듣고 원고 수정 후 작품을 보냈다. 그 작품이 바로 <파고>였던 것이다.
오펜 2기 드라마 작가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모두 tvN ‘드라마 스테이지 2019’ 방영의 행운을 안은 것은 아니다. 20명의 작가 중 10명에게만 그 혜택이 부여된다. 김민경 작가는 운이 따랐다고 말하며, 오펜의 지원이 없었다면 드라마로 제작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가 오펜 2기에 들어와 지금까지 단막극을 완성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펜 당선 이후 김민경 작가는 단막극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현업 연출자들과 작가들의 멘토링, 특강 등을 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tvN <라이브> 김규태 감독, OCN <블랙>의 최란 작가의 멘토링을 받으며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캐릭터 설정, 이야기 구조 등의 기술적인 조언도 들었다. 특히 시각(영상)적으로 극중 사건이 잘 읽히는 것에 반해 캐릭터 구축에 약점이 노출된다는 김규태 감독과 오펜 센터장님의 피드백은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이 밖에도 서울지방경찰청, 해양 경찰청, 청주 여자 교도소 등 현장 취재 등을 다니면서 단막극 외 앞으로 써나갈 작품에 도움 되는 것들을 많이 얻었다.
‘드라마 스테이지 2019’ 방영 선정이 확정된 8월 중순부터 김민경 작가의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었다. <파고>의 연출자인 영화 <무산일기> <산다>의 박정범 감독을 만난 그는 이 작품을 놓고 각자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협의했다. 그 결과를 통해 각본을 재차 수정하며, 기존 스릴러 요소가 강했던 이야기에서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엮어나가는 드라마 요소가 강한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주인공인 경찰의 성격도 변모했다. 여기에 발맞춰 오펜을 통해 해양 경찰청 관계자를 만난 후 기존 경찰에서 해양 경찰로 변경했고, 의상, 미술 등 해양 경찰청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11월 크랭크인 후에도 촬영 변수에 맞춰 감독과 함께 수정을 이어나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작업을 이어나갔다.
감독님과의 작업을 통해 작가가 아닌 연출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계기가 되었어요. 해양 경찰청의 도움도 받으며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협업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오펜을 통해 이런 것을 배울 기회가 열려 좋았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시작점!
오펜 이전과 이후, 김민경 작가의 글쓰기 작업은 크게 달라졌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힘든 몸을 이끌고 홀로 방에 앉아 글쓰기에 전념했던 과거와 달리, 24시간 오펜 작가들에게만 개방된 개인창작실에서 오롯이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작업실 안에 침대까지 놓여있어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타 지역에 올라온 작가들은 이곳에서 짐을 풀고 글쓰기에 열을 올린다고. 이밖에도 간단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동열람실도 이용할 수 있다.
<파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은 개인창작실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물론 글쓰기 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지만요.(웃음)
<파고> 작업 이후 그가 매진하고 있는 건 미니시리즈 기획안이다. 단막극 보다 긴 호흡인 미니시리즈는 그에게 또 하나의 도전. 자신이 쓴 기획안이 선정되면 오펜에서 또 한 번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고, 오펜 1기 출신으로 <왕이 된 남자>에 참여 중인 신하은 작가처럼 미니시리즈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기회를 잡고자 그의 집필실에는 오펜 3기 모집 심사 방향 키워드를 붙여놨다고. 오펜 3기에 지원하지 않는 그에게 이 문구는 어떤 의미일까?
최근 글을 쓰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펜 3기 심사 방향 키워드를 보며 계속 되뇌고, 쓴 글을 보면서 저와 대중 모두가 좋아하는 글인가라는 생각을 계속합니다.
오는 2월 19일부터 26일까지 모집하는 미래의 오펜 3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저 같은 경우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로 오펜 합격을 이뤘거든요. 오펜 3기에 도전하는 분들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남들과 다른 개성과 장점을 무엇인지 파악하고 글을 쓰시면 좋은 성과 거두실 수 있을 겁니다. 모두 힘내세요.
오는 2월 2일(토) 밤 12시 tvN에서 방영 예정인 <파고>. 자신에게 큰 행운을 안긴 이 작품과 이별을 준비 중인 김민경 작가는 오늘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내려간다. 게으름을 떨쳐내고 영감이 ‘띵’ 올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으로 장르물에 특화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김민경 작가.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살아있고,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플랫폼에 어울리며 독특한 캐릭터가 살아있는 현대적 감각의 문제작이 그의 손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