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좋은 보스의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 직원을 가족처럼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사람? 눈앞에 보이는 직원의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그런 직원의 속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 직원의 가족문제까지 해결해주기 위해 앞장서서 발 벗고 나서는 사람? 말만 들어서는 세상에 이런 보스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지만 막상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영화 ‘굿 보스’의 주인공 블랑코(하비에르 바르뎀) 사장이 제목처럼 정말 ‘굿 보스’일지, 그의 모습을 통해서 좋은 리더의 자격에 대해 살펴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이중적인 목적 아래 펼쳐지는 ‘굿 보스’의 서사 전략
저울을 만드는 회사, ‘블랑코 스케일즈’는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 오른다. 생산 제품의 이미지를 따라 ‘균형’을 가장 중요시 여겨왔던 블랑코 사장은 반드시 이 상을 받고 싶다. 수상을 위해서는 모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데, 회사 운영의 중요도만큼 회사에 대한 직원들 개개인의 평가도 잘 관리해야 한다. 결국 이 평가의 핵심은 직원 관리에 있다는 점을 간파한 블랑코는 유독 직원들의 개별 상태에 신경 쓴다.
하지만 항상 위기는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 평가를 앞두고 신뢰하던 직원들 사이에 하나 둘씩 문제가 불거진다. 블랑코는 어떻게 해서든 우수기업상을 받기 위해서 직원들의 사적인 문제들까지 모두 해결해야만 한다. 그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굿 보스’의 중요한 서사 전략이다.
‘블랑코 스케일즈’의 가족 같은 직원들
블랑코 사장과 어릴 적부터 친구 관계였던 생산 팀장 미랄레스(마놀로 솔로)는 기업 평가 심사를 앞두고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한다. 그의 실수가 단순한 착오 판단이 아닌 가정 내의 불화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간파한 블랑코는 직접 미랄레스의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다. 직장 내 상사가 아닌 오래된 친구로서 타인의 문제를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해결하려는 블랑코의 태도는 무척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과연 정말 순수한 의도로 발현된 것일까?
블랑코 사장이 우수기업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기업의 이중적 태도를 폭로하는 기회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게 일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결과가 사장의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임을 영화는 폭로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자본주의 산업 구조가 어떻게 인력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이를 통한 잉여자본이 어떻게 한 개인에게 귀속되는지를 가차없이 풍자한다.
자본의 고착화에 대한 유머 넘치는 풍자
‘블랑코 스케일즈’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랑코 가문이 대를 이어 경영해온 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되물림은 부의 재분배와 재생산의 연결고리를 더욱 자본가 중심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제도와 법적 강제를 마련하고는 있으나, 결국 부가 만들어낸 권력망들을 통해서 이를 무력화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블랑코와 직원들의 관계 또한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블랑코가 직원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닌 권력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블랑코처럼 과연 직원들도 그를 가족이나 친구처럼 대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블랑코의 횡포를 오히려 역이용해서 자신의 기회로 이용할 수 있는 자는 그와 동등한 권력을 지닌 자들뿐이다. 좋은 보스의 조건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 ‘굿 보스’는 결국 원시적 형태의 자본이 어떻게 뿌리 깊은 계급 격차를 만들어내고 권력을 한 개인이 사유하는지 폭로하며 주제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훈인가?
평가 위원들이 회사를 방문한 마지막 순간, 전 직원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블랑코는 위원들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며 환영한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역이용해 회사를 돋보이도록 만드는 기회로 포장하고 그들에게 회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자랑한다. 이때 회사를 경험하는 평가위원들 뒤로 회사의 사훈을 가리키는 세 단어가 벽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풍경이 드러난다. ‘Esfuerzo, Equilibrio, Fidelidad’. 한국어로 “노력, 조화, 성실”이라는 뜻의 이 사훈은 흥미롭게도 가장 커다랗게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낡아서 지워지고 흐려져 있다.
블랑코 사장은 사원들에게 자신들이 만드는 저울처럼 모든 일에 있어 균형이 맞춰져야 한다며 강조한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 결국 그 이익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허울 좋은 말들은 결국 자신의 집에 ‘우수기업상장’ 하나 더 걸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과연 누굴 위한 사훈일까? 이 질문을 상징하듯 커다란 크기와는 상반되게 낡아서 닳아 있는 사훈의 글씨가 명징하게 다가온다.
‘굿 보스’의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은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감독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흥행 감독이다. 시나리오 감독 출신답게 탄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대중성 있게 풀어내는 그는 고야상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 최우수 감독상, 각본상 등을 수차례 수상하며 인정받아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감독이지만 ‘굿 보스’를 보고 나면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