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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상영을 앞두고 있던 ‘원 세컨드’는 별안간 출품 철회 의사를 밝힌다. 공식적인 이유는 ‘기술적 문제’. 중국 당국의 검열이 작동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1년 반이 지난 2020년 가을, ‘원 세컨드’는 중국금계백화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가 다시 ‘기술적 문제’로 상영이 취소된다. ‘영웅’을 연출한 이후 중국 공산당과 화해하고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으며 정부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은 것처럼 보였던 장이머우 감독의 작품은 어째서 지금 다시 검열의 대상이 된 것일까.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필름을 갈망하는 서로 다른 시선 딸이 나오는 1초의 장면을 찾아 다니는 장주성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언덕 너머에서 나타난 남루한 행색의 남자 장주성(장역)은 뛰는 듯 잰 걸음으로 바삐 사막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마침내 시골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 그는 영화 상영이 끝났는지, 다음 상영지는 어디인지 묻는다. 그리고 우연히 필름 캔을 훔쳐 달아나는 소녀(류 하오춘)를 발견하고 소녀를 뒤쫓기 시작한다.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소녀 역을 맡은 신인배우 류 하오춘(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남자와 소녀 모두 필름에 집착하지만, 둘 다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장주성은 영화 본편 상영 직전에 상영되는 뉴스 릴에 딸의 얼굴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노동교화소를 탈출해 사막을 건너 영화가 상영되는 시골 마을을 찾아온 참이다. 그러나 양곡포대를 옮기는 앳된 소녀의 얼굴이 스크린에 머무는 것은 단 1초에 불과하다. 장주성이 갈망하는 것이 뉴스 릴의 찰나에 존재하는 이미지라면, 소녀가 원하는 것은 영화의 이미지나 내용이 아니라 35밀리 셀룰로이드 필름, 영화의 물성이다. 동생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필름으로 전등갓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소녀에게는 필름 12미터가 간절하다.   시대를 투사하는 스크린의 면면 영화를 보기 위해 마을 회관에 모인 사람들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장주성 (사진 출처: 영화 ‘원 세컨드’ 메인 예고편 캡쳐) 소동 끝에 마침내 마을 회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영웅아녀’. 1964년 작품으로 ‘항미원조(抗米援朝)’ 영화의 대표작이다. 바진(巴金)의 소설 ‘단원’에서 부녀 상봉의 얼개를 빌려왔지만, 본질은 미국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중국인민지원군을 부각시키기 위한 국책영화다.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2019년에는 중국 중앙텔레비전에서 황금시간대에 긴급 편성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스크린에서 군인들이 합창하고, 객석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부르는 ‘영웅 찬가’의 맥락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20년, 국내의 여론에 밀려 결국 수입사가 개봉을 포기한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 영화인 ‘1953 금성 대전투(원제: 금강천)’에도 ‘영웅아녀’의 ‘영웅 찬가’가 주제곡으로 삽입되었다. 그래서 ‘원 세컨드’의 극장 시퀀스는 그저 노스텔지어로 소비하기에는 뒷맛이 쓰다.    필름을 추억하는 저마다의 프레임 이리저리 꼬이고 먼지까지 뒤집어쓴 필름을 힘을 모아 복원하는 마을 사람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원 세컨드’는 문화혁명 시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하고 소박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영화와 필름 시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스크린에 투사되는 그 순간에만 살아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의 환상이라는 영화·필름의 본래 속성을 지켜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운 경험이다.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열광이다. 영화가 유일한 오락이던 시절, ‘관객’이 되는 순간 별안간 유순해지는 사람들, 함께 영화를 관람하면서 같은 순간에 일제히 웃고 우는 공동체적 경험은 코로나의 시대에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영화(or 필름)으로 엮인 장주성과 소녀는 결국 영화를 통해 치유 받는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각자 뉴스 릴의 1초와 셀룰로이드 필름 12미터 때문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던 두 사람(딸을 잃은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딸)은 등을 맞대고 묶인 채로, 그제서야 온전한 영화를 관람한다. 부녀 상봉의 결말에 이르면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당장 묶여 있는 위급한 현실을 잊게 만들고, 그들이 내내 애써 삼켰을 눈물을 결국 흘리게 만드는 무엇이다. 2년 뒤 소녀가 남자에게 자랑스럽게 내미는 것은 신문지 조각뿐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경사와 위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시간의 흐름에 가장 취약한 사막은 역사를 상징하기에 가장 적절한 이미지다. 역사에 묻혀 사라진 것은 필름 프레임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가 가장 빛나던 시절, 필름을 보물처럼 여기던 시절도 이제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 세컨드’는 영화와 극장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필름 시대를 향한 장이머우 감독의 절절한 애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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