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애잔함을 전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헌데 이 작품 이전에 탄생한 형님(?) 영화가 있다. 오는 7일 개봉 예정인 <모리스>가 그 주인공인데, 놀라운 건 32년 만에 국내 관객에게 소개된다는 사실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영화는 또 한 번 가슴 저미는 사랑이야기를 전한다. 마치 자신이 있었기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처럼.
박지한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영화가 선물해준 빛나는 순간을 나눕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모리스>의 연결고리는 누구?
2018년 3월 4일(현지 시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이날 각색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5편. 2000년대 가장 기념비적인 컬트 영화 <더 룸>(2003)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제임스 프랭코의 <디재스터 아티스트>, 영웅을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헌사를 보여준 제임스 맨골드의 <로건>, 전직 스키 선수 출신으로 포커 세계의 실력자가 된 실존인물을 다룬 아론 소킨의 <몰리스 게임>, 미시시피의 인종차별을 배경으로 디 리스의 시대극 <머드바운드>(국내 넷플릭스 방영 제목은 <치욕의 대지>), 그리고 첫사랑의 서글픔을 마주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었다.
결과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수상했다. 참석자들의 박수와 함께, 각색 담당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무대로 걸어 나왔다. 역대 최고령 아카데미 수상자(90세)가 된 제임스 아이보리였다. 이 노감독은 <유럽사람들>(1979) <전망좋은 방>(1986) <하워즈 엔드>(1992) <남아있는 나날>(1993)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며, 자신만의 우아하고도 계급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담은 연출 스타일로 유명한 감독이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그 사이 어딘가의 사랑이든
우리는 첫사랑의 고통을 경험하고 극복한 적 있을 것입니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색상 수상을 하며 밝힌 소감처럼,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오는 법. 이를 증명하듯 감독은 이미 32년전에 첫사랑을 경험한 소년들의 이야기를 압도적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보여준 생동감 넘치는 감정의 향연이 그대로 담겨있는, 그의 대표작 <모리스>다.
<모리스>의 원작이 작가가 사망하고 나서야 출간되었던 이유?
선/삼위일체/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소년 모리스(제임스 윌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이어가던 중, 매력적인 동문 클라이브(휴 그랜트)를 만난다. 모리스는 클라이브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인지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191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용인되지 못한 이들의 관계는 예측하지 못할 방향으로 전개된다.
<모리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E.M 포스터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E.M 포스터는 소설 ‘하워즈 엔드’, ‘전망좋은 방’(<모리스> 보다 2년 전에 역시 제임스 아이보리가 영화화 했다> 등을 통해 영국 사회를 파헤침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파고를 섬세하게 더듬었다.
그러나 소설 ‘모리스’의 경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1914년에 작품을 완성하고 무려 57년 후인 1971년에 출간되었다. E.M 포스터가 1970년에 사망하고 나서야 출간 될 수 있었던 것.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이 소설이 완성된 1910년대 영국은 동성애가 범죄였고 엔딩에서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사회분위기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동성애 처벌법은 1967년에 가서야 폐지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동성애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된 시대에 와서야 대중들과 만날 수 있었다.
1952년에 출간되어 약 100만부가 팔려나간 레즈비언 소설 ‘소금의 값’을 쓴 클레어 모건은 40년이 흘러서야 이 책의 재출간을 맞아 제목을 ‘캐롤’로 환원하고 클레어 모건이 필명이며 자신의 이름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임을 밝혔다. 그러고 보면 소설 ‘캐롤’은 마치 ‘모리스’의 성별반전 판본처럼 (상류층과 노동계급의 만남, 결말에서의 파격 등. 물론 그 반대항도 성립할 것이다) 읽히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는 일견 신화적으로 까지 보이는 두 소설을 둘러싼 이야기들 한 켠에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을 쓴 작가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모리스>가 있었기에 <문라이트>의 영광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이미 그렇게 돼 있었어요.
– 영화 <모리스> 중에서 –
이런 맥락들에 비추어 보면, 소설 ‘모리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작품이나 동성애에 대해 진보적인 관점을 가졌다. 물론, 이 작품은 E.M 포스터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실제 자신의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작품의 주인공 모리스는 자신이 가진 클라이브의 대해 가진 감정에 대해 어떤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실제로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성향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들이 가진 감정을 용인 받거나 납득시켜야 할 어떤 성질의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모리스는 자신이 가진 감정이 ‘병’이라면 고쳐달라고 하지만 그건 자신이 겪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한 비유에 가까울 것이다. 원작자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도 자신들이 전개하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모리스를 어떤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2017년 영화 <문라이트>는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문라이트>는 LGBTQ 영화로서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그리고 현재까지는 최후의 작품상 수상작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샤이론(에쉬튼 샌더스)은 자신의 성적정체성을 고민하고, 그런 샤이론을 보호하려는 사려 깊은 어른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샤이론이 자신에게 ‘저는 호모인가요?’ 라고 묻자, 후안은 “그럴 수도 있지만 ‘호모’라는 말은 참지 마라”라고 당부한다.
동성애적 성향은 그냥 그렇게 된 것,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타인부터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 아니다. 그러므로 후안의 말은 경멸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단호한 당부에 가깝다. 2000년대가 지나고도 17년이 지나서야 LGBTQ 소수자들이 지켜온 메시지가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변화를 이끌어낸 셈. 여기에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해온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 ‘모리스’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자신들이 소설 내내 강고하게 지켜온 단호함을 엔딩까지 사수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제임스 아이보리는 자신의 방식으로, 원작자가 사수한 단호함을 그대로 승계 받는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다루는 이야기와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삶을 가치 있는 지점으로 옮겨놓는다. 그들이 지켜낸 삶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제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