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이 나오고, 이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그 대화 소재나 주제가 남성 캐릭터에 대한 것이 아닐 것! 이는 벡델 테스트의 3가지 조건이다. 영화 성평등 테스트로서 활용되는 벡델 테스트는 그동안 영화 산업 속에서 남성 중심 서사가 얼마나 많이 만들어 왔는지를 대변하는 척도로서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세 자매’ 는 벡델 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하는 작품인 동시에, 여배우들이 극중 자신의 이름을 갖고 긴장과 갈등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주연의 ‘세 자매’는 어떤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 보일까?
* 벡델 테스트(Bechdeltest) –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를 말한다.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세 자매’, 기억과 진심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
흔들리는 흑백 화면. 내복 차림의 두 소녀가 맨발로 어두운 골목을 내달린다. 제목은 세 자매인데 기억 속의 밤에는 둘 뿐이다. 나머지 하나는 어디 있을까? 누구의 기억일까? 어른이 된 세 자매, 희숙(김선영), 미연(문소리), 미옥(장윤주)를 소개할 때에도 카메라는 고집스럽게 매번 인물들의 뒷모습에서 출발한다. 그녀들의 얼굴과 표정을 확인하고, 각자 짊어진 일상의 무게를 지켜보는 동안에도, 조금씩 꼬여 있는 인물들의 속내를 쉽게 읽어 내긴 어렵다. ‘세 자매’는 누군가의 ‘나쁜 기억’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기억과 진심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인 셈이다.
자주 ‘기도하자’ 라고 반복하는 미연(문소리)에게 교회라는 커뮤니티는 ‘단란한 가정의 우아한 아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은 세계다. 자녀들을 엄격하게 몰아붙이고, 남편의 외도를 무시(용서가 아니다) 하는 동안에도, 유난히 미연의 목소리가 다정하고 살가워지는 것은 술 취한 동생 미옥(장윤주)를 상대할 때다.
미옥에게 유년 시절의 기억은 파편화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녀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와 서사를 알지 못해서 자꾸 식당 이름을 묻고, 왜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냐고 미연에게 묻는다. 미연은 기억의 진실과 맥락을 알려주는 대신 대답을 얼버무리고,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미옥은 그런 언니에게 짜증을 부린다.
아마도 평생 반복되었을 동생의 투정을 달래고 비위를 맞추는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제 엄마와 딸처럼 변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을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어 미연이 간절하게 기도를 했던 적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나쁜 기억’의 정체를 묻는 미옥에게도, 그 상처가 여전히 선명한 미연은 기도하자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얼룩진 세 자매의 ‘나쁜 기억’
두 사람에 비하면 돌림자도 다른 맏언니 희숙(김선영)은 따로 외떨어진 존재다. 얼핏 비굴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매번 눈을 내리깔고, 언제나 모든 게 미안하다. 닮은 곳도 겹치는 추억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자매들이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지방에 내려가면서, 그녀들의 과거에 도사리고 있었던 ‘나쁜 기억’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난다.
아버지의 외도로 두 어머니를 둔 네 명의 자식들. 처음에는 아내를 대상으로 했던 폭력이 쉽고 만만한 상대인 아이들에게 옮겨가면서 자녀들은 패가 갈렸을 것이다. 직접적인 구타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에게 육체적인 외상과 정신적인 트라우마는 평생 유효한 상처로 남았으며 그 곁에서 매번 그 상황을 지켜봐야했던 이들에게도 복잡한 상흔은 또렷하게 남았다. 언제든 나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 폭력의 대상이 된 이들에 대한 죄책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까지. 죄책감과 비밀이 자매들 사이의 거리감이 되었다.
좋은 기억은 나쁜 기억을 이긴다!
이승원 감독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진정한 사과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세 자매’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아버지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다. ‘너희 아버지 요새는 안 그런다’는 말로 사과의 요구는 묵살되고, 수 십년만에 폭발한 응어리진 감정들은 아버지의 자해로 중단된다. 아버지의 자해는 참회가 아니라 평생 반복되었던 폭력적 충동이 이번에는 자신의 신체를 대상으로 삼은 것에 불과해서, 과시적이기까지 한 폭력의 행태 앞에서 자매들은 말을 잃는다.
‘세 자매’의 결말에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반성이나 사과는 없다.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통쾌한 처벌이나 대단한 화해도 없다. 그렇다고 자매들이 새삼 비장하고 결연한 연대를 다짐하지도 않는다. 그녀들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가족들에게 돌아가 자신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인생을 헤쳐 나갈 것이다. 대신 그녀들은 해변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앞으로는 자주 사진을 찍자는 약속도 한다. 충분히 긍정적인 결말이다. 이제 세 자매에게는 좋은 기억들이 하나씩 늘어날 것이다. 좋은 기억은 나쁜 기억을 이기는 법이다.
‘세 자매’는 갖고 있는 이야기의 흡입력만큼이나 세 배우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배우에서 감독, 이번엔 제작자로 영역을 확장한 문소리, 특유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기를 마음껏 펼칠 캐릭터를 마침내 만난 김선영, 그리고 결연해진 배우 장윤주의 조화는 영화 내외적으로 절묘한 호흡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가 아닌 오롯이 각자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세 배우의 호연도 기대하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