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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무법자, 할리우드 악동, 영화 천재. 동시대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이며 작가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를 대중적으로 만들어내는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적절한 별명을 붙이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직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고유명사만이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감독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꼽히는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서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천재적 기질의 영화광, 비디오 가게 점원이 되다! <저수지의 개들> 연출 당시의 쿠엔틴 쿠엔틴 타란티노. 이렇게 젊다니~~(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는 9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다. 더 이상 학교가 재미있지 않았다. 관심사는 오직 ‘영화’였기 때문. 그가 관심을 둔 유일한 과목은 역사였는데 이 조차도 영화적 소재 거리로 여겼다. 학교를 그만 둔 감독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결국 맨하탄 비치 부근의 쇼핑몰에 있던 비디오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다.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서의 일은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일자리였다.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가게 한 켠에 놓여 있던 상영공간에서 자신만의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짜고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손님들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는 평론가로서의 면모를 자랑할 수 있었다. 특히 할리우드 작품뿐만 아니라 유럽, 제 3세계의 작품들까지도 섭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비디오 가게는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영화학교이기도 했다. <저수지의 개들>은 이러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네필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그는 시나리오 첫 장에 자신이 영감을 받은 이들을 나열했는데,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1956) 원작자인 라이오넬 화이트와 주인공이었던 티모시 캐리, 주윤발, 장 뤽 고다르, 장 피에르 멜빌, 로렌스 티니에(조 역할로 등장)와 같은 하드보일드 장르의 거물급들이 다수 언급됐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하드보일드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적 변칙과 실험까지 하나의 결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비디오 가게에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작 전부터 이미 유명해진 시나리오 <저수지의 개들> 중심 인물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기 전 이미 <트루 로맨스>(1993)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판매한 엄연한 작가였다. 원래 <트루 로맨스>도 본인이 연출하기 위해서 쓴 시나리오였지만, 결국 <저수지의 개들>를 선택했고 감독 데뷔 기회를 얻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여러 인터뷰에서 데뷔 감독으로서 첫 작품은 반드시 그 시대를 압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가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은 자신이 익히 보아왔던 남성 중심의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를 만들 생각이 확고했고 이는 연출자이자 작가로서 어떤 성향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가장 먼저 염두한 배우는 ‘미스터 화이트’ 역의 하비 케이틀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곧바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후 미팅에서 출연을 승낙했다. 무명의 감독에게 하비 케이틀 같은 거장 배우가 캐스팅 된 것은 전적으로 시나리오의 힘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150만 달러를 투자 받았고 이로서 제작이 본격화되었다. 하비 케이틀은 이후 캐스팅까지 도움을 주며 제작에 큰 힘이 되었는데, 사실 시나리오가 할리우드 캐스팅 매니저 사이에서 유명해졌던 터라 배역을 맡기 위해 오디션을 보려는 배우는 이미 줄을 선 상태였다. 그때 오디션을 봤던 배우들 중엔 조니 클루니, 사무엘 L. 잭슨도 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제작자뿐만 아니라 배우까지도 매료될 정도의 시나리오를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가 수없이 많은 영화를 섭렵했기 때문이었다. 하비 케이틀이 첫 미팅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는지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런 영화를 많이 봤어요” 생동감 있는 대사와 캐릭터, 흥미로운 상황 설정 등은 모두 그가 영화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실의 반영이 아닌 오락거리로서의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좀 더 살펴보려면 그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 봐야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어린 시절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사정과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 코니 맥휴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알코올 중독 어머니 사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14세에 결혼 한다. 그리고 몇 개월 만에 쿠엔틴 타란티노를 임신하고 이혼한다. 어린 나이에 아이와 함께 단둘이 남겨진 코니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강인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좌: <킬빌 – 1부> 우: <데쓰 프루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러한 엄마의 삶을 영화로 옮기면서도, 실제 삶과는 정반대의 강인하고 단단한 복수하는 여성들로 그려 넣는다. 결혼식 날 처절하기 죽임 당한 이들을 위해서 대신 복수를 감행하는 <킬빌>(2003-2004)의 브라이드(우만 서먼), 여성들만 살해하는 살인마에게 집단으로 복수하는 <데스 프루프>(2007)의 강인한 여성들은 전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영향이 다분히 반영된 작품들이다. 흑인 하위문화가 잘 반영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좌부터 <펄프픽션> <재키 브라운> <장고: 분노의 추적자>)(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코니의 두 번째 남편인 커트 자스토우필 또한 쿠엔틴 타란티노에겐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바로 그를 통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하위문화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를 진심으로 애정 했고 잘 따랐다고 회고한다. 특히 그 즈음 함께 살게 된 커트의 남동생과 코니의 남동생으로 인해 쿠엔틴 타란티노 주변엔 남성들이 가득해진다. 이들은 함께 모여 심야 영화를 보러 가거나 리듬앤블루스를 연주하는 라이브 바에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항상 함께 했다. 그가 <펄프픽션>(1994), <재키 브라운>(1997),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와 같은 흑인 B급 영화적 전통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두 번째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킬빌>처럼 반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 제작의 주된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그에게 영화는 철저한 엔터테인먼트였다. 관객들이 현실의 시름을 놓고 극장에서 마음 것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영화인 셈. 영화는 현실이 아니란 점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좌부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래서 그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킨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는 히틀러를 잔인하게 살인하는 장면을 삽입하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를 살해하려 했던 히피들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를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는지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의 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줘야 하고 삶의 고루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관객의 위치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저수지의 개들>은 이러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성향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다. 지극히 장르적으로 충실하며 장르적 쾌감을 극한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영화는 일련의 작가주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어떠한 사색도, 고뇌도, 삶에 대한 통찰도 거부한다. 오직 그의 작품엔 엔도르핀이 극한으로 분출되는 폭력과 그로 인한 불쾌감, 원초적인 감정들의 향연만 가득할 뿐이다.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설마 <저수지의 개들>과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을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다면,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남았다. 오는 11월 7일부터 20일까지 2주간 전국 CGV아트하우스 전용관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전’을 개최한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 <킬빌_1부> 등 대표작 7편과 집요하게 그의 삶을 따라간 다큐멘터리 <쿠엔틴 타란티노 8>도 만나볼 수 있다. 늦가을 찾아오는 쿠엔틴 타란티노 표 뜨거운 핏빛 선물 꼭 만끽하길 바란다. ※ 참고자료: 톰 숀, [쿠엔틴 타란티노: 시네마 아트북], 윤철희 번역, 제우미디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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