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암전 화면 위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좀 어울리고 싶다.” 고독에 몸부림치다가 서른 일곱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람. 그림을 그린 10년 동안 900여점의 작품을 남긴 화가. 생전에 단 한 점의 작품만이 팔렸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열렬히 사랑하는 스타. 천재성과 광기의 아이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목소리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감독이자 화가이기도 한 줄리언 슈나벨의 신작,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이처럼 독백처럼 들리는 고흐의 고독한 편지로 시작한다.
고흐의 신화적 삶을 영화화한 작품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스스로 자른 귀나 권총 자살과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순간 그의 본래의 삶은 잊혀진 채 광기라는 신화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른 이유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고, 그의 죽음이 널리 알려진 바의 자살이 아닌 타살 또는 사고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만큼, 그의 진짜 삶을 궁금해 하고 있다. 고흐는 그의 성실한 태도로 동생 테오에게 많은 편지를 썼는데, 그 글들이 일찍이 서간집으로 출간된 덕분에 우리는 그가 어떤 감정과 생각 속에서 살았을 지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고흐의 삶은 지금껏 많은 영화들을 통해 되살아났다.
고흐의 삶을 세상에 알린 최초의 전기소설은 미국 작가 어빙 스톤이 쓴 책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Lust for Life)이다.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파리의 미국인>(1951)으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감독 빈센트 미넬리가 이 책을 바탕으로 커크 더글러스를 주연으로 한 동명의 영화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1956)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성직자가 되려 했던 고흐의 청년기부터 자살에 이르는 전 생애를 충실하게 그려낸다. 그는 실제로 고흐가 머물렀던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작품의 배경을 재현했으며,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이들에게 촬영을 허락 받아 2백여 점에 달하는 진품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고흐의 사망 100주년을 기념하는 1990년에는, 미국 인디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만이 연출한 <빈센트>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팀 로스)와 그의 동생 테오(폴 라이스)의 교감과 갈등을 주요하게 다루며, 고흐가 죽은 후에도 끝나지 않고 6개월 뒤 테오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까지 계속된다.
이듬해에는, 젊은 시절 촉망받는 화가였던 프랑스 감독 모리스 피알라가 <반 고호>(1991)를 발표했다. 죽기 전 두 달을 보낸 프랑스 오베르에서의 시간을 다룬 이 작품은 고흐(자크 더트론)의 광기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에 고독한 예술가의 일상, 창작에 대한 생각, 그를 둘러싼 세상의 모습, 세상과 그의 불화를 관찰자적 시선으로 매우 담담하게 그려낸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전기 작가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가 2011년, 고흐의 새로운 전기 소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Van Gogh: The Life)를 출간한다. 사실을 복원하기 위해 15년간 방대한 자료를 검토한 두 사람은 이 책에서 고흐의 자살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70년 전 어빙 스톤의 책에서 ‘열망Lust’을 제거하고 ‘삶The Life’에 대해 말함으로써, 부여된 광기의 신화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2017년, 총 제작기간 10년에 이르는 대작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가 개봉했다. 100명이 넘는 화가들이 3년간 그린 6만여 점의 유화로 만들어진 이 감동적인 작품은 고흐의 그림들이 일렁이며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고흐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그의 말년을 추적하는 서사를 박진감 있게 그림으로써, 새로운 전기소설의 내용을 받아들인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인간 고흐를 그린 작품!
<러빙 빈센트>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더 이상 신화가 아닌 인간 고흐를 들여다 본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고흐, 영원의 문에서>이다. 이 영화의 연출은 미국의 유명 화가 겸 감독인 줄리언 슈나벨. 그는 일찍 세상을 뜬 동료 화가, 장 마이클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로 영화에 입문했다.
이후 쿠바의 하층민으로 태어나 작가이자 동성애자이자 반체제 인사로 살았던 레이날도 아레나스(<비포 나잇 폴스>(2000)), 유명 패션지 편집장으로 화려하게 살았으나 전신마비로 왼쪽 눈꺼풀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잠수종과 나비>(2007)) 등, 그는 실존인물의 삶을 영화화 하는 데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그에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잠수종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가 눈을 깜빡여 써내려 간 그의 책을 바탕으로 한다. 이 작품은 그가 보았을 현실과 꿈의 이미지들, 그가 소리 내지 못했던 말들을 상상하여 넘치는 기교로 그려낸다.
오는 26일 개봉예정인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서 감독의 상상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본 세상의 이미지로 향했다. 영화가 시작한 뒤 암전 화면 위에서 독백의 목소리가 끝나고 나서 보이는 것은 고흐(윌렘 대포)의 얼굴이 아니다. 들판을 둘러보고 저기 있는 한 여성에게 다가가는 고흐의 눈에 들어온 이미지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 뜨는데,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그린 어느 그림의 제목이다. 난로 앞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 또는 눈을 감싸 쥔 한 노인의 모습을 그린 것, 고흐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던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좀 이상하다. 얼굴이나 눈은 인간의 개인성이 드러나는 곳인데, 이것을 가린 인물화를 여전히 인물화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원의 문’이라는 경계는 어쩌면 이 얼굴이 사라지는 지점, 인물화와 풍경화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그림이 촉발한 이런 생각에 동의하듯, 영화에서 아를의 들판을 종일 걷던 고흐는 석양이 지는 땅에 드러누워 자신의 얼굴에 흙을 뿌린다.
그는 풍경에서 영원을, 유대의 힘과 신의 목소리를 느끼며, 자신의 개인성을 잊어간다. 이 풍경 앞에서 고흐와 폴 고갱(오스카 아이작)은 창작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언급하고 논쟁하기도 한다. 그 자신이 화가인 감독은 영화를 통해 고흐의 예술철학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이며, 동시에 그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윌렘 대포, 그리고 예수
세계적 거장들과 수많은 작품들을 함께 해온 배우, 윌렘 대포는 주로 개성 강한 조연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미처 알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얼굴은 다른 영화에서 고흐를 연기한 그 어떤 배우보다도 더 고흐처럼 느껴진다. 더없이 선하고 천진한 표정, 먼 곳을 갈망하는 눈빛, 얼굴의 깊은 주름들, 그리고 고흐의 미들네임이 ‘Willem’이기도 하다는 우연의 일치 때문일까?
한 가지 더 있다. 고흐는 사제(매즈 미켈슨)와의 대화에서, 하느님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든 것 같다’고 말하며, 예수님도 살아있을 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듯 보이는 고흐가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목사를 꿈꾸었던 고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속을 거부했으며, 이후에는 그림을 구원이자 빛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윌렘 대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2002)에서 숱한 유혹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 예수의 역할을 했던 배우다. 그러므로 빈센트 반 고흐와 예수 그리스도는 윌렘 대포를 통해 비로소 만났다고 할 수도 있을 지도.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윌렘 대포에게 제75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고흐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더이상 광기어린 신화적 존재보다는 신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들었다는 신념 하나로, 고통과 인내를 거듭하며 그만의 예술을 창조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존경과 경외심을 갖게 하기 보단 그 또한 보통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소개한다. 올 연말 관객을 찾아온 인간 고흐. 111분 동안 영화를 통해 그가 바라봤던 세상을 같은 시선으로 지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