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사마에게>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전쟁 속에서 명징히 실현하는 영화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아츠 감독이 공동 연출하고, 와드 알-카팁 감독이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직접 출연하는 이 영화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약 5년 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공포의 포화 속에서 카메라의 초점이 또렷이 응시하는 것은 알-카팁 감독이 출산한 첫 딸 ‘사마’다. 파괴된 도시 알레포에 대한 슬픔과 그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새 생명에 대한 환희가 교차하고, 한 편의 사회 다큐멘터리이자 딸에게 남기는 엄마의 애절한 편지로서 내내 강렬한 이 영화. <사마에게>의 빛나는 지점들을 간략히 정리해봤다.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전쟁을 기록하며 삶을 사랑한다는 아이러니
2016년 2월 7일, 시리아 알레포(Aleppo)에서 사마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 <사마에게>는 이 경이로운 새 생명이 참혹한 내전 상황을 관통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아름답게 성장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비춘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와드 알-카팁 감독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후 꾸준히 알레포의 상황을 기록해 감독 데뷔 이전에 이미 신뢰받는 시민 기자로 자리잡았다.
와드 알-카팁의 영상에는 감정과 감상을 배제하는 균형 잡힌 시선, 촬영이 좀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카메라를 붙든 용기가 있었다. 그녀는 2017년 국제 에미상 뉴스 부문을 포함해 24개 상을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취재력을 인정받았다. <사마에게>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의 알레포를 기록한 결과물. 감독은 이 과정에서 의사이자 연인인 함자 알-카팁과 함께 조국인 시리아에 남아 끝까지 투쟁에 가담하고,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한다.
<사마에게>는 매일이 전쟁 중인 현실이란 어떤 것인지를 곧장 피부로 체감시킬 뿐 아니라,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평범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는 삶의 난제를 묵묵히 설파한다. 그렇다. 전쟁 중에도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소소한 환희에 전율한다. 감독은 악조건 속에서도 밝게 성장하는 사마를 보며 전에 없던 죄의식과 부채감마저 얻는다.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전쟁통에서 딸을 지켜야하는 엄마로서 두 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했던 와드 알-카팁 감독. 영화는 상충하는 두 개의 역할이 공존하는 순간을 선연한 필치로 담아낸다. 잠시 알레포를 떠났던 와드와 함자 부부가 갓난아이인 사마를 데리고 알레포로 재잠입을 시도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위협적인 폭격 소리가 들려오고, 사마는 울기 시작한다. 이 순간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있고 남편 함자는 사마를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구태여 알레포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투쟁 의지,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감독의 끈질긴 손, 그리고 총성 속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동요가 한 데 얽힌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비수처럼 날카롭고 아픈 장면 중 하나다.
<사마에게>가 그리는 시리아 내전
사마의 이름은 우리말로 하늘을 의미한다. 내전 중 알레포의 하늘이란 언제나 검은 연기와 흙먼지로 뒤덮인 암담한 풍경일 터, 사마는 그 존재 자체로 맑고 평화로운 하늘을 바라는 염원을 품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아랍·중동 전역으로 퍼진 민주주의 운동 ‘아랍의 봄’의 일환으로 2011년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풍자하고 민주화를 외치는 10대들의 낙서가 시발점이 됐다. 정부는 학생들을 체포해 잔혹하게 고문했고, 이에 분노한 시위대 역시 과잉 진압해 공포 정치의 위용을 과시했다. 무장투쟁에 나선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는 점점 거세지자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 역시 맞불 양상을 나타내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부풀렸다.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의 정치 대결이 개입하고, 내부의 종족·종파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리아 내전은 전세계에서 가장 풀기 힘든 장기 난제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사마에게>는 시리아의 반군지역 알레포의 풍경을 감독의 시선을 대리하는 듯한 카메라로 응시한다. 화면이 일순 포화 속에 잠기고 요동치는가 하면, 눈 앞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신문이나 뉴스 화면을 통해서는 감각할 수 없는 리얼리티가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순간,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하나만을 고르자면 후자에 훨씬 더 가까울 세계를 마주한다.
그럼에도 <사마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생명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남편 함자가 쏟아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주변 동료들이 매일 생사를 달리하는 와중에 감독은 사마를 부둥켜 안는다. 자유의지를 부여 받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런 비극 속에서도 구태여 자신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하며 염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영화가 시리아 내전의 실제를 소상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미와 조건을 묻는 영화인 것은 바로 한 명의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감독이 내린 이토록 어렵고 숭고한 결정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비극과 평범한 인간의 공존, 그 속에서의 진실 찾기
감독을 대표자 삼아 <사마에게>는 알레포에서 끝까지 살아가는, 혹은 눈물을 머금고 떠나가는 여러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담는다. 내전의 실상을 포획한 이미지들도 훌륭하지만, 전시 상황과는 관계없는 일상과 잉여의 순간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비중으로 담겨 있다. 아마도 감독은 이렇게 전방위적인 삶의 기록만이, 궁극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의 존재를 각인할 수 있으리라 내다본 것 같다.
이는 사마처럼 웬만한 포화소리에는 울지도 않고, 폭탄의 종류를 줄줄이 읊으며 전쟁이 마치 삶의 기본 조건인 양 인식하는 어린 아이들을 향한 감독의 깊은 슬픔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적 해석에만 집중하는 전세계 언론,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의 대응에 맞서 가장 보통의 초상들을 담아내는 것이 감독이 추구하는 유의미한 기록의 실천이다. 이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와드 알-카팁 감독이 딸 사마를 통해 자기 자신의 시선과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혈연 관계로부터 극대화된 진심이 나비효과처럼 다수의 시민들과 미래 세대로 연결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사마에게>는 제작 과정 자체가 타자와의 공존과 연대, 그리고 인간애의 위력을 품고 있다. 스스로 폐허를 생성하는 인간의 어두운 역사에서 자생해, 그 반대편에서 다시 인간을 사랑하고 긍정하려는 <사마에게>는 그래서 만든이 만큼이나 이를 환영하는 관객의 공력이 중요한 영화일 지 모른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로 지정된 <사마에게>가 더 많이 언급되고, 더 많이 공유되길 염원한다. <사마에게>는 오는 23일 국내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