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가 돌아왔다. 그것도 ‘콜바넴’의 히로인,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이것만으로도 그의 차기작 <본즈 앤 올>을 기다리는 이유는 충분한데, 작품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들의 러브 스토리라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선보인 감각적인 영상과 티모시 샬라메의 반항적인 메마른 몸을 떠올려 보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을 것만 같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하지만 <본즈 앤 올>을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실질적인 주인공을 맡은 테일러 러셀에게 있다. 한국에서는 큰 스크린으로 처음 마주하는 그녀의 매력까지 더해져 어쩌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또 다른 역작이 탄생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도 있는 영화, <본즈 앤 올>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매런의 여정
메릴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 갓 이사 온 매런(테일러 러셀). 아빠와 함께 단둘이 외롭게 살아가지만, 학교에서 막 친해진 친구들 덕분에 조금씩 학교에 적응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초대를 받은 매런은 아빠 몰래 친구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벌인다. 바로 친구의 손가락을 씹어 먹은 것.
인간을 먹으려는 본능을 숨기지 못한 그녀는 아빠와 함께 황급히 마을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매런의 아빠는 그녀의 출생 비밀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와 출생 신고서만을 남긴 채 곁을 떠난다. 부모조차 감당하기 힘든 식인 본능을 홀로 견뎌내야 했던 매런. 존재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엄마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
<본즈 앤 올>은 엄마를 찾는 매런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항상 변수가 많고 예상과 달리 흥미진진한, 때로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펼쳐진다. 그 어떤 완벽한 계획도 충분히 통용되지 않기에 로드무비는 신화적 모험 서사를 원형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모험 속에서 겪게 되는 인물의 성장 과정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미국의 북동부인 메릴랜드에서 시작해 오하이오, 인디애나, 켄터키, 아이오와를 거쳐 미네소타까지 다다르는 매런의 여정은 ‘이터(Eater)’로서의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식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본즈 앤 올>의 성장 서사에 담긴 사회 비판적 시선들
성장 서사로서 <본즈 앤 올>의 서사적 힘은 동명 원작에서부터 기인한 바가 크다. 카미유 드 안젤리스의 장편 소설, 『본즈 앤 올』은 미국 내에서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이틴 로맨스 소설 장르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살을 욕망한다는 다소 논쟁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장르 너머의 다양한 화두를 던진 작품이다. 하지만 <본즈 앤 올>은 몇 가지 중요한 설정을 변형시켜 매런의 성장뿐만 아니라 매런을 둘러싼 미국 사회까지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이터들은 그 자체로 아웃사이더이자 소수자이며 악마화된 타자들이다. 자신의 욕망을 거세할 수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살육을 이어가야 하고 이 과정은 그들을 절대 평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도록 한다.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철저히 낯선 존재로서 여정을 멈추지 않고 떠돌아다니던가, 사회와 고립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또는 시설에 감금당하거나. 그 어떤 선택도 그들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매런은 이러한 삶의 조건 속에서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 편 한 명만 있다면, 그 세상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리(티모시 샬라메)와의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가려 노력한다.
사랑의 세계와 괴물의 세계
<본즈 앤 올>은 “사랑의 세계엔 괴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매런의 엄마, 저넬의 목소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런의 행동을 통해 사랑의 세계와 괴물의 세계를 구분 지으려는 사회 체제 내에서 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종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저넬의 주장은 낯선 이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전 지구적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반면 경계를 해체하고 괴물로 타자화되었음에도 사랑의 세계에서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매런의 행동들은 각박한 삶 속에서 점차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인간의 속성들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여정 속에서 매런이 만나는 이터들은 매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웃거나 꺾어 버리려 애쓴다. 오직 그녀를 믿어 주는 단 한 존재, 리만이 곁을 지킬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매런과 리의 관계가 풋풋한 잔혹동화 속 러브 스토리로 간주할 법하지만, 감독은 둘의 감정을 단순한 ‘로맨스 장르’의 관습 속에 묶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가,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지키려는 연인들의 몸부림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 그 이상이다.
영화의 제목 ‘본즈 앤 올’은 이터들이 인간을 먹을 때 살부터 모든 뼈까지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먹는 행위를 말한다. 이렇게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우면 그 순간에 오는 희열이 상상을 초월한단다. 영화에서 이 행위는 말로만 언급될 뿐 한 번도 재현되진 않는다. 어쩌면 상상을 초월하는 희열은 (아무리 이터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잔인한 행위로만 도래하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곁을 지켜주고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존재만 있다면 그 모든 욕망과 꿈은 달성될 수 있지 않을까? <본즈 앤 올>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강렬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사자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 11월 30일 개봉해 CGV를 비롯한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