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보이>는 사랑의 무력함에 관한 영화다. 아름답지만 마약 중독으로 인해 부서질 듯 연약한 아들과 그런 아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아버지가 이 영화에 있다. 부성이 지닌 성스러움에 비해서 정작 아버지에게 허락된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당혹스럽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과 자유를 동시에 느낀다. 두 개의 회고록에 기반한 뭉클한 실화이자 스티브 카렐, 티모시 샬라메라는 두 축의 아우라가 맞붙는 <뷰티풀 보이>의 미덕을 간략히 정리해봤다.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눠 쓴 이야기
영 앤 뷰티풀. <뷰티풀 보이>에서 닉(티모시 샬라메)은 거의 무결한 존재에 가깝다. 수려한 용모에 다재다능형의 인간인 그는 대학 입시에서도 번번이 합격 통보를 받으면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아버지 데이빗(스티브 카렐)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년의 천성은 우울과 허무를 좇도록 설계된 듯 하다. 중산층이자 백인 엘리트 계층의 삶 또한 그에겐 권태일 뿐인지 닉은 10대 후반부터 마약을 탐닉하기 시작한다.
한창 젊은 나이에 심각한 약물 중독을 겪고 있는 아들을 구제하려는 아버지의 노력, 믿기 힘들겠지만 <뷰티풀 보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데이빗 셰프가 <뷰티풀 보이: 약물 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는 한 가족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2008)를 썼고, 아들 닉 셰프 또한 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해 부자 각각의 시점으로 공동의 역사가 완성된 경우다.
연출은 <브로큰 서클>(2012) <벨기카>(2015) 등을 통해 드라마의 온도와 밀도 모두를 능숙하게 끌어올리는 재능을 보여줬던 벨기에의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이 맡았다. 실화가 지닌 재료의 풍족함 덕분인지 <뷰티풀 보이>는 외려 서사적 개연성이나 인과관계의 강박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영화다. 현실을 설명하기보다는 내면이 추동하는 기억과 감상을 환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을 통해 마약 중독자와 가족 드라마의 클리쉐를 희석했다.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닉은 왜 스스로 자멸을 택했을까? 데이빗은 어째서 끝까지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는 것일까? 대답이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이 무력한 질문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는 각기 다른 시공간을 엮는 교차편집을 활용한다. 이를테면 영화는 어둠 속에서 홀로 컴퓨터 모니터를 골똘히 바라보는 부자의 모습을 교차편집 속에서 제각각 등장시킨다.
인물을 화면 안에 담아내는 방식이 비슷할 뿐 아니라, 늦은 밤 두 사람이 마약에 관해 검색해보고 있다는 사실도 비슷하다. 그러나 닉은 직접 크리스탈메스를 제조해 투약할 의지를 갖고 있고, 데이빗은 약물 중독에 대해 공부해서 아들을 치료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온전히 서로의 반대편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다.
이처럼 영화는 기억과 희망의 평행선을 달려가는 부자 관계의 안타까움을 느슨한 몽타주 속에서 교차하고 충돌하는 이미지를 통해 말한다. 현재의 닉이 망가질수록 과거의 닉을 기억하는 데이빗의 애착은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불쑥 틈입하는 기억의 편린을 통해 시각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뷰티풀 보이>의 비선형적 내러티브는 치료와 재발을 반복하는 약물 중독의 악순환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스티브 카렐과 티모시 샬라메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닉은 <이유없는 반항>(1955) 속의 배우 제임스 딘과 닮았다. 그는 논리나 인과관계보다는 어떤 기운에 가깝다. 많은 디테일이 배제되어 있는 까닭에 영화에 심연으로 존재하는 닉은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서 보여준 매력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의 티모시 샬라메 역시 인물이 다소 제멋대로이거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상태에서도 관객이 다분한 애정을 품을 수 있게 이끈다. 닉을 둘러싼 탐미적인 묘사 또한 배우의 존재감이 빚어낸 필연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한편 스티브 카렐은 수다만큼이나 침묵 또한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사실을 <뷰티풀 보이>에서도 능숙하게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 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부자가 서로의 엇갈림을 확인하는 순간은 특별히 스티브 카렐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가능성에 절박했던 인물이 불현듯 불가능성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이 탁월하게 표출됐다.
애틋한 부자이기 이전에 서로가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음을 제시하는 드라마인 <뷰티풀 보이>는 스티브 카렐과 티모시 샬라메라는 영민한 배우들로 인해 더욱 긴밀한 감정의 결을 그려나간다. 일상과 파국 모두를 만족스럽게 연기한 두 배우는 뜨거우면서도 섬세한 에너지를 지녔다는 측면에서 부자처럼 닮았고, 결정적으로 영화 내내 장면을 쪼개어 피사체를 계속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잃지 않는다.
마약 중독 문제에 직면한 부자 지간의 절대적 사랑과 절망을 교차하는 <뷰티풀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서 빛나는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엔딩크레딧에서 티모시 샬라메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찰스 부코스키의 시 ‘Let It Enfold You’에 찬찬히 귀를 기울여 보자. 20세기 후반 최고의 미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찰스 부코스키는 평생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삶의 누추함을 아름다움으로 치환한 작가다. 버거운 삶의 격랑마저 따뜻하게 끌어안는 부코스키의 시를 빌려, <뷰티풀 보이>는 어쩌면 삶의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