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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제목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일까?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작인 <경계선>의 첫 상영이 끝나자 누군가는 최고의 작품, 누군가는 올해의 괴작이라 평했다. 이처럼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는 경계선에 놓인 것. 국내 개봉을 앞두고 극명한 평가를 받은 이유와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옥미나 | 영화 평론가 영화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배웁니다 알리 아바시,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아웃사이더 영화 <경계선> 촬영 현장에서 티나 역에 에바 멜란데르(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알리 아바시(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경계선>의 감독 알리 아바시는 그 자신의 삶이 경계에 놓여있다. 이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20세가 되던 해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고, 애초 계획했던 건축학 대신 영화를 전공했다. 코펜하겐에 정착했지만, 영화 작업은 스웨덴에서 이뤄진다. 몇 개의 국경을 건너면서 그는 결코 내부자가 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서만 관찰할 수 있는 차이들을 예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알리 아바시는 여전히 이란 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경계선>이 이란에서 상영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가 이란으로 돌아가거나 종교 검열 아래 영화를 만들 리도 없을 것 같은데, 그의 고집에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복잡한 아웃사이더의 속내가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2018년 미국에 입국할 때에도 이란을 비롯한 6개국에 무기한 비자 발급을 중단한 트럼프 행정부의 여행 금지 조치가 그의 국적을 문제 삼았다. 결국 금지 조치 발효 이후, 최초로 예외를 인정받은 이란인이라는 뜻밖의 타이틀을 안고 제45회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참석했다.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한 알리 아바시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셜리>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어느 나라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않은 이 아웃사이더의 내밀한 진심은 첫번째 장편 <셜리>(2016)에서 드러난다. 덴마크 부부와 루마니아 대리모가 등장하는 불임을 소재로 삼은 공포영화의 표면 아래에는, 국경의 의미와 EU에 대한 질문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두번째 작품인 <경계선>에 이르러 알리 아바시의 경계는 이제 국경을 넘어 실존적인 차원으로 확대된다. 후각이란 감각이 중요한 장치? <기생충>에서 우리를 뒤흔들었던 ‘후각’이라는 감각이 이 영화의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국경에 서있다. 그녀의 직업은 입국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확인하는 세관원. 그녀에게는 감정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죄책감, 불안, 수치심 같은 냄새를 통해 익명의 타인들이 숨긴 비밀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엄청난 초능력을 과시하거나 도취하는 대신, 스스로를 ‘염색체 결함을 가진 인간’으로 정의하고, 내내 수치심에 시달리는 자기 방어적인 인물이다. <경계선>의 원작은 <렛 미 인>으로 국내에 알려진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로, 1인칭의 일기문 형식으로 작성된 글은 독자들을 티나의 머리 속으로 이끈다.(알리 아바시 감독은 린드크비스트의 당부대로 소설의 ‘영혼’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티나의 활약을 보여주는 범죄자 체포 장면을 추가하면서, 결말부분을 살짝 비틀어냈다.) 티나의 열등감은 다른 이들과 다른 외모, 말할 수 없는 신체적 비밀에서 기인한다. 티나를 맡은 스웨덴 배우 에바 멜란데르는 배역을 위해 20kg를 증량하고, 매번 2시간이 넘는 분장을 받았다. 인간처럼 보이는 하되, 정말 인간인지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 분장의 목표라 밝히기도 했다.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상, 그녀의 선택은? 보레(에로 밀로노프)의 등장과 함께 관능이 일깨워 준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계가 찾아온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런 티나 앞에 보레(에로 밀로노프)가 등장한다. 다른 인간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티나와 흡사한 외모. 하지만 보레는 티나와는 180도 다른 인물이다. 그는 내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음산한 미소를 짓고, 불결함을 과시하며,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야만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외모, 같은 흉터를 갖고 있는 보레에게 티나는 끌리기 시작하고, 보레는 티나가 ‘있는 그대로 완벽한 존재’라고 속삭인다. 관능이 일깨워준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계는 티나가 이제껏 속해 있었던 세계의 기만과 폭력을 드러내고, 티나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들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 같은 존재라면, 티나가 인간 세상 내부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자신의 ‘다름’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동안, 보레는 적개심으로 가득 찬 음모를 꾸미는 외부의 존재다. 경계선 너머에 있는 보레에게 인간의 가치와 윤리는 아무 의미도 없고, 인간의 고통은 그의 복수를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던진 ‘경계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경계선>은 얼핏 현대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신비로운 판타지 로맨스처럼 시작한다. ‘정상’ 혹은 ‘평범’의 정의나 범주에 대한 질문이겠거니 방심하는 동안, 티나의 변화와 맞물려 펼쳐지는 순수한 욕망, 순수한 분노, 격렬한 야생의 세계는 제목 그대로 경계선을 넘어, 잔혹하고 추악한 위반과 터부로 가득한 심연을 드러내어 관객을 직접 도발하고 공격한다. <경계선>은 국경, 인종, 성별의 구분에 대한 비유에서 멈추지 않는다. 두 세계의 경계에 서있는 고독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가 바라보는 세상, 모든 경계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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