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로 울고 웃는 건 축구만이 아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공을 던지고, 받아 치고, 잡고 던지는 등 둘레 23cm의 딱딱한 공이 주는 마력은 9회말 투 아웃 풀카운트에서 친 역전만루홈런만큼이나 어마무시하다. 이 감정의 파괴력은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이들의 희로애락에 비롯된다. 자신의 꿈을 위해 홀로 사회란 마운드에 오르는 천재 야구소녀의 이야기인 <야구소녀> 또한 주인공과 주인공이 던지는 한 구 한 구에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박지한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영화가 선물해준 빛나는 순간을 나눕니다
요기 베라와 록키 발보아의 공통 분모?
1973년 7월,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메츠’의 감독 요기 베라(Yogi Berra)는 기자들의 질문에 넌더리를 치고 있었다. 기자들은 시종일관 “이번 시즌은 최하위로 끝난 것 맞죠?” 라고 감독을 압박했다. 당시 뉴욕 메츠는 실제로 자신들이 속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최하위에 처져 있었고, 선두와는 7게임 이상 차이가 났다.
1940~50년대 왕조를 건설했던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핵심멤버이자, 15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지도자로서도 우승을 경험한 명장이자, 미국의 야구선수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자리인 ‘명예의 전당’ 멤버이기도 한 요기 베라는 아마도 부글거리는 속을 다스리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그리고 그해, 뉴욕 메츠는 기적의 역전으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해 대혈전을 벌인 끝에, 최종 7차전에서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 요기 베라와 뉴욕 메츠의 끝은 정규시즌이 아니라, 월드시리즈였다. 말 그대로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명언은 아직도 회자가 되며 재생산 되고 있다.
이를테면, 1970년대에 처음 시작해 아주 오랫동안 ‘프로파간다 우파 영화’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낡은 시대의 유산’의 대표로 매도되었던 영화 <록키> 시리즈(물론, 1편 이후 시리즈가 이런 비판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은 않을 것이다)는 2006년, 록키의 근원으로 돌아가 한 개인이 다시 긍지를 회복하는 인간 찬가 드라마 <록키 발보아>로 돌아왔다. <록키 발보아>의 포스터에는 바로, 요기 베라의 명언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록키 발보아>에서 노쇠한 록키는 자신을 증명할 생애 마지막 경기를 위해 다시 그 옛날처럼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계단을 뛰어올라 두 팔을 쳐들고 포효한다. 극중 록키의 태도는 2006년 기준에도 낡았지만, 자신이 믿는 과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올바른’ 방식으로 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 자체로 고색창연할 때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올드스쿨’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의 핵심은 아닐까.
<야구소녀>, 올드스쿨의 위대한 유산을 끌어 안다!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야구소녀>는 이런 ‘올드스쿨’의 ‘좋은 유산’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영화다. 20년만의 고교야구부 여자 야구선수인 주수인(이주영)은 프로 진출이 꿈이다. 하지만, 신체적 차이로 인한 ‘부족한 파워’와 ‘여자 야구선수’라는 선입견은 주수인이 계속 야구를 해나가는 데 장애물이 된다. 주수인은 새로 부임한 학교의 코치 진태(이준혁)와 함께 자신의 장점을 개발해 나가기 위한 특훈에 돌입하고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질주한다.
<야구소녀>의 주수인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근성 스포츠 영화의 주인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체를 단련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비록 돌아갈지 언정 장애물과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는 이 캐릭터는 어떤 전형에 가깝다. 물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캐릭터들도 있다. 이를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걸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서른이 넘은 웨이트리스가 복싱을 하기 위해 늙은 트레이너를 찾아오고, 늙은 트레이너는 처음에 거부했으나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 함께 투쟁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야구소녀>의 주수인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이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주인공 매기는 서른이 넘은 웨이트리스라는 차이가 있으나 아무도 그들이 해당 직업인(프로야구선수, 프로복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훌륭한 멘토의 도움과 그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세계가 자신의 삶을 황폐화 시키지 못하도록 저항한다.
이 저항이야 말로, 근성 스포츠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의 가치. 외부로부터의 ‘규정’에 저항하는 한 인간의 숭고함의 요체이다. 이 지점에서 <야구소녀>는 <록키 발보아>와 느슨하게 접촉한다. 낮은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주수인이 계단 위에 올라 포효하는 ‘록키’ 패러디는 처연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의 성장을 증거하는 재치 있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야구 소녀가 던지는 막강한 ‘변화구’의 실체는?
여기서, <야구소녀>는 이 장점에 한 가지를 더 한다. <야구소녀>는 올드스쿨 근성 스포츠 영화의 ‘좋은 전통’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다음, ‘낡음’을 피해가기 위한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고안한다. 앞서 언급한 <록키 발보아>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동성(性) 선수들간의 경쟁에 뛰어든 주인공을 다룬다. 그런데 <야구소녀>는 여기서, 한번 더 ‘변화구’를 던진다. 주수인은 남성들로 가득한, 정확히 말하면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고교야구 선수이며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자 경쟁하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주수인은 ‘여자 프로야구 선수’를 폄하하거나 혹은 흥미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시선들에 저항한다. <야구소녀>의 태도는 한 명의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닌 특성들로 인해 흥미거리가 되거나, 혹은 폄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에 기반한다. 그런데, <야구소녀>는 이러한 태도의 기반 위에서 조금 더 다채롭게 이야기를 운용하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 주수인과 코치의 갈등은 ‘더 빠른 공’을 던지려는 주수인과 그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코치의 대립이다. 영화 상에서 주수인은 시속 130km/h의 속구를 던지는 선수로 묘사된다. 사실 이 속도는 여자야구 선수로서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구속이다. 현재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원투펀치인 김라경의 최고 구속이 약 110km/h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130km/h대의 구속은 프로야구 기준에서 ‘아주’ 느린 편에 속한다. 공이 너무 ‘느려서’ 유명한 두산베어스의 유희관은 평균 구속이 120km/h후반대에서 130km/h 초반대다.
물론 유희관은 느린 공을 던지면서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10승 이상을 기록한 훌륭한 투수이나, 이것은 아주 희귀한 케이스이며 130km/h대의 직구를 가진 투수를 데려갈 야구팀은 그리 많지 않을 것도 자명하다. <야구소녀>는 주수인의 신체적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초반부를 전개하기 때문에 중반부 이후부터는 답변을 해야하는 입장에 처한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남성들로만 채워진 프로야구라는 판을 흔드는 선수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말이다.
<야구소녀>의 선택은 변화구다. ‘남성만큼’이 아니라 ‘주수인 이기에 할 수 있는’ 전략을 택하는 것으로 영화는 전진한다. 주수인이라는 여자 야구선수 앞에 놓인 벽을 피하지 않고 돌파하면서도, 그 돌파의 ‘방법’은 변칙적인 방법을 택한 이 영화는 실제로는 굉장히 위태로운 전략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난관을 돌파해 나간다.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접근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영화의 태도를 기쁜 마음으로 지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