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숙인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갖고 있다. 집 없이 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행색이 누추하고 지저분한 옷차림의 사람들일 거라는 편견 말이다. 영화 <홈리스>는 그러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홈리스, 집이 없는 자, 단어의 정의는 노숙인을 뜻하지만 서민들의 ‘집 없음’이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하는 유목민과 같은 삶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긍정하며 내다볼 수 있을까? 바로 <홈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꽉 막혀버린 집 잃은 자들의 선택지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월셋집을 마련하고 이사를 앞둔 이들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다. 입주 날, 막상 찾아간 집은 재개발로 굳게 닫혀 있고 뒤늦게 보증금 사기를 당했음을 깨닫는다. 경찰에 신고해도 잡을 수 있을지는 오리무중. 심지어 아이까지 사고로 다치자 없는 돈에 비싼 병원비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결은 배달 일을 하며 간간이 집을 봐주던 할머니가 한 달간 집을 맡겼다며 고운과 함께 임시로 머문다. 그런데, 그 집… 뭔가 이상하다.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의 근원
임승현 감독은 한결과 고운을 통해서 젊은 세대의 꽉 막혀버린 미래를 은유한다.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고 함께 살게 되었는지 서술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그들의 삶의 조건과 선택지들을 펼쳐놓고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제시할 뿐이다.
<홈리스>의 서사적 긴장감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영화 속에 극적 장치로 심겨 있는 반전과 범죄들은 그저 극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부수적인 장식에 불과하다. <홈리스>는 그런 서사적 흐름에 크게 힘을 쓰지 않는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한결의 심리적 압박감,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보란 듯 살아보고 싶은 고운의 지극히 평범한 욕망. 인물들이 품고 있는 내적 감정들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긴장시키며 안타까움과 연민을 넘어선다.
가난의 대물림과 철저히 고립된 인물들의 현실
영화에서 잠시 등장하는 그들의 부모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가난이 어떻게 대물림 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서다. 현재의 상황은 그들이 야기한 실수나 잘못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조건일 뿐이다. 그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홈리스>는 이를 잘 활용해 인물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집은 구해야 하는데 아이는 다쳐서 아프고, 어렵게 들어간 집에선 언제 쫓겨날지 모르며 심지어 은폐시킨 비밀도 언제 들킬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돈이라도 구해보려 하지만 도움받을 주변인들은 하나도 없고 철저히 고립된 두 사람은 그렇게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철저히 비극인 삶,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미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며 오지만 그렇다고 스크린을 외면할 수 없다. 분명 스크린 너머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니까.
꿈같은 결말, 하지만 반드시 도래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
임승현 감독은 감독의 의지로 그들에게 조금의 행복과 평화를 선물한다. 그 기간이 얼마나 갈지 우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독이 선사한 잿빛 미래에 잠시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누군가에겐 이러한 결말이 판타지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망해 일어날 힘조차 없는 이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라 강요하는 것은 도움이 아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감독은 그런 작은 손길이 얼마나 현 사회에 필요한지, 보이지 않은 채 사회 곳곳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아내려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얼마나 간절한지 직접적으로 체험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홈리스>를 꼭 봐야 한다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홈리스’는 전 세계의 독립영화들을 주목하는 국제영화제인 <제5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가 됐다.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다.
- <2022 경기인디시네마 CGV·KT 상영 연계 지원> 선정작으로, 오는 9월 15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 상영관 등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