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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도전적인 제목으로 다가온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니. 딴지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 사랑에 빠지면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불쑥 튀어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제목은 한편으로 타당한 주장일지도 모른다. 분명 누군가는 사랑에 빠질 때 최상, 또는 최악의 상태에 놓일 수도 있으니까. 이동윤 | 영화 평론가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메인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영화 속 주인공 율리에는 어떤 쪽에 속한 사람일까? 또 한편으로, 사랑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율리에를 통해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펼쳐 놓은 사랑에 대한 논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극히 공감 가는 율리에의 갈등 악셀의 만화 발표회장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는 율리에(출처: 네이버 영화) 항상 모범생이었고 공부를 잘해서 의대까지 입학한 율리에는 순간 자기 삶에 의심이 생긴다. 극심한 불안에 몰입할 거리를 찾아 헤매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가치였음을 깨닫는다. 진로를 정신과로 바꾸고 다시 공부하던 중 이번엔 사진에 흥미를 느껴 학업을 중단하고 장학금으로 사진기를 사서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남자들을 만나는데 결국 사랑을 느낀 사람은 만화가 악셀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지속되는가 했지만 율리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또다시 방황하고 갈등한다. 세상 최악의 인간, 율리에? 몰래 들어간 결혼식장에서 만난 에이빈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율리에(출처: 네이버 영화) 율리에는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녀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 할지라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가시처럼 모나게 돋아나 있는 그녀의 행동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찾지 못한 답답함에서 비롯된다. 고민 없이 만화 작화에 몰입할 수 있는 악셀을 부러워하지만, 막상 그가 율리에의 욕망을 분석하려 들면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을 판단하지 말라고 밀어낸다. 율리에의 행동은 상호모순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이기에 지극히 원제목이 뜻하는 바대로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세상 최악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세상 최악의 고양이, 밥캣 이별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눈 율리에와 악셀(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에는 또 다른 세상 최악의 ‘동물’이 등장한다. 바로 악셀이 그리는 만화 속 주인공 고양이 ‘밥캣’이다. 수컷인 밥캣은 성차별적인 캐릭터로 저질스러운 농담은 기본이며 정치적 올바름의 시선으로 비춰봤을 때 모든 일에 부적절하고 음침하다. 집고양이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야생 고양이로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캐릭터다.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상처를 주기도 하는 율리에의 어떤 모습들과 밥캣은 무척 닮아 있다. 분명 타인을 혐오하는 밥캣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율리에 또한 타인에게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상처를 주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행위를 옹호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한 번쯤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해보자며 관객들을 설득한다. 율리에가 갈등하는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 율리에의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에이빈드(출처: 네이버 영화) 율리에는 원하는 것을 정신적 가치 기준안에서 찾아 헤맨다. 물질적 세계는 시각적으로 분명하기에 모든 것을 단호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추상적 세계에서는 모든 가치에 대한 사유가 다양하게 열려 있지만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모호하기도 하다. 율리에가 느끼는 내적 갈등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녀는 고정적이고 안정된 모든 가치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그 틀 속에 가둬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이 인정하는 삶,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그런 삶이 아니라 간절히 욕망하고 내 모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그런 가치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된 에이빈드를 통해 깨닫는다. 자신이 그토록 애타게 쫓는 열정 가득한 삶이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율리에가 택한 모든 선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출처: 네이버 영화) 어쩌면 율리에가 사랑했던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원하는 바를 찾으려 했던 모든 과정에 대한 결과는 결국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깨달음. 그래서일까? 마지막 율리에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짓는다. 고통과 환희,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녀를 이런 상태로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의 감정이 오롯이 이해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바로 이 지점을 노렸을 것이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을 그 누구보다 가장 사랑한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기준과 가치들을 추구할 때 우리는 불행해진다. 마치 율리에가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게 된 원인처럼. 석양의 노을이 가득한 오슬로의 밤하늘, 그 앞에서 생각에 잠긴 율리에(출처: 네이버 영화) 만약 제목에 주어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나와” 일 것이다. 나와 사랑에 빠질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그 최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요아킴 트리에는 우리 모두 그러한 수준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라고 충동한다. 이야기만 듣는다면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도 쉽게 설득당해 버린다.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최악이 될 정도로 나 자신을 사랑해보고 싶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주인공 율리에 역의 레나테 레인스베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북유럽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제 22개 부문에서 수상하고 93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오는 8월 25일 개봉해 CGV 아트하우스 상영관 등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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