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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이즌 리얼>은 야심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영화다. 선과 악, 이성과 충동으로 유리된 인간 내면의 붕괴를 호러 장르의 접근법으로 풀어낸 대담함은 스스로를 장르영화 마니아라고 자처하는 신예 애덤 이집트 모티머 감독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한국을 찾았을 당시, <엑소시스트>(1973)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을 레퍼런스로 꼽고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2013)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들 영화에 담긴 불온하고 파괴적인 정서, 어둠을 탐미적으로 그려낸 태도가 모티머 감독의 영화에선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김소미 |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제각기 고유하고 무모한, 영화의 틈새가 궁금하다 악의 시점을 구현하다 다니엘 역의 패트릭 슈왈제네거(좌)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아들로 주목 받았으나, <미드나잇 선> 등으로 차츰 국내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마일즈 로빈스(우) 또한 팀 로빈스, 수잔 서랜던의 아들로 <할로윈(2018)>에 출연했었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니엘 이즌 리얼>의 오프닝 장면은 ‘다니엘(패트릭 슈왈제네거)’로 불리는 인격화된 악의 시점에 빙의한 듯 냉정하고 잔인하다. 어느 오후, 나즈막한 대화와 신문을 넘기는 소리가 흐르던 평온한 카페에 갑자기 한 남자가 들이닥쳐 총을 난사한다. 그 순간 화면에 기록되는 것은, 존엄한 인간의 죽음이라기보다는 ‘머리통이 깨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허무하고 적나라한 고어적 광경이다. 육체가 으스러지고 비명과 피가 튀어 오르는 그 찰나의 지옥도가 종료되면 영화는 갑자기 다시 조용한 집안으로 시선을 옮긴다. 주인공 소년 루크(그라핀 로버트 포크너) 집에선, 앞선 유혈사태를 전혀 알 리 없는 어떤 부부가 언쟁을 벌이느라 바쁘다. 주인공 루크는 자주 불화하는 부모 곁에서 저 자신도 모르게 불안감에 친숙해진 소년이다. 구성원 각자가 저마다의 신경증을 앓고 있는 이 연약한 가족도는 파경 직전의 부부가 아들을 잠시 관심 밖으로 밀어낸 사이, 초대받지 못한 손이 잠입하면서 본격적인 불행을 맞는다. 어린 루크에게 다니엘은 상상 속 친구이자, 소울메이트, 그리고 재앙의 시작이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보호자가 없는 소년은 홀로 거리를 거닐다 총격이 벌어진 카페 앞에서 피살된 피의자의 시체를 목격하고 만다. 이 순간, 루크 앞에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또래 소년 다니엘이 나타나 둘은 급속도로 친밀해진다. 이른바 ‘상상 속의 친구’가 등장한 것. 어린 시절에 누구나 꿈꿔 볼 법한 소울메이트의 등장은, 그러나 영화에서 재앙으로 풀이된다. 호러를 앞세운 영화의 무드를 통해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다니엘은 성인기에 접어든 루크(마일스 로빈스)가 아련하게 추억할 만한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비교하자면 다니엘은 괴테의 『파우스트』가 묘사한 악마, 일본영화 <데스토느>에 등장하는 사신에 가까운, 매혹적이고도 위협적인 존재다. 원작을 능가하는 핀헤드 캐릭터의 구현 호러 캐릭터의 레전드 ‘핀헤드’의 등장을 알린 <헬레이저>(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니엘 이즌 리얼>은 작가 브라이언 드리우의 소설 『인 디스 웨이 아이 워즈 세이브드(In This Way I Was Saved)』에서 출발했다. 모티머 감독은 원작자 드리우와 처음 만난 지 7년 반이 지나서야 영화를 완성했다. 그 오랜 준비기간에 걸맞게 <다니엘 이즌 리얼>은 비교적 저예산으로 완성된 신예 감독의 작품이라기엔 놀라운 수준의 시각적 디테일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모티머 감독은 다니엘 캐릭터에 확고한 영화적 취향을 반영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연상되는 것이 ‘핀헤드’ 캐릭터다. 핀헤드는 신체 강탈의 공포를 자극하며 특유의 괴이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헬레이저> 시리즈의 마스코트로, 얼굴 전체에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히 못이 박힌 모습이 유명하다. 목 아래로 검은 가죽옷을 길게 늘어뜨린 수도사(세노바이트) 캐릭터에선 고딕 호러의 영향도 다분히 느낄 수 있다. 이름인 핀헤드는 <헬레이저> 시리즈 첫번째 작품의 분장사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이후 대명사처럼 통용되기 시작했다. (우)다니엘의 모습은 지성적인 악을 묘사한 <헬레이저> 시리즈의 계보를 따른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전설적인 핀헤드 캐릭터의 상징성을 의식한 듯 모티머 감독은 <다니엘 이즌 리얼>의 다니엘에게 시종 몸 전체를 감싸는 검은 수트를 입히고, 반듯하게 빗어 넘긴 고전적인 헤어 스타일을 고수했다. 패트릭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다니엘은 덕분에 드라큘라 백작을 연상시키는 비주얼로 홀로 시대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다니엘 이즌 리얼>이 보여주는 악의 특성이 야생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지성적인 악을 묘사한 <헬레이저> 시리즈의 계보를 따른다. 성장기에 겪은 여러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루크에 비해 다니엘은 외려 차분하고 냉정하며, 평정심을 유지해 혼란스러운 현실의 자아를 쉽게 장악해버린다. 신체 훼손 호러로 폭주하는 장르적 야심 영화 속 신체 강탈 및 훼손의 시각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다니엘 이즌 리얼>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니엘 이즌 리얼>의 관전 포인트는 루크의 심리적 붕괴가 가속화되는 과정을 신체 강탈 및 훼손이라는 호러 장르의 하위적 특성에 기반해 시각화한 데 있다. 다니엘이 루크의 신체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거나 두 사람의 육체가 늘어지듯 뒤섞이는 모습은 신체의 정상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반 대중에게 ‘언캐니’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영화는 그 불편한 골짜기를 사뿐히 뛰어넘어 공포를 유발하려 한다. 호러 영화 마니아들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신체 훼손 모티브가 강력한 이유는 육체성이야말로 시각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인간의 조건을 설명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꿈 연구에 천착했던 프로이트나 문화권을 뛰어넘은 인간 원형의 무의식을 주장했던 융 같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보편적인 악몽 중에 주로 신체 훼손에 관한 것들이 많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꿈 속에서 머리카락이 전부 빠져버린다든가, 이빨이 모두 썩어 몽땅 빠져버리는 꿈들이 대표적이다. <다니엘 이즌 리얼>처럼 신체 훼손을 소재로 영화적 힘을 강화한 작품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이런 불편함은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다. 최근 호러 영화의 유망주로 떠오른 아리 애스터 감독 또한 <유전>에서 신체 훼손을 통해 오컬트 장르를 강화하고, <미드소마>에선 환한 대낮을 배경으로 적나라한 바디 호러를 펼쳐낸 바 있다. 호러 장르 바깥에서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동시대 감독 중에는 조나단 글레이저도 있다.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언더 더 스킨>이 대표적인 예다. 외계인 캐릭터를 다분히 할리우드적인 신체로 어필되었던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게 함으로써 본질과 신체 사이의 기이한 괴리감을 구현하는 작품이다. 미장센의 측면에서는 호러 영화의 독창적이고 성공적인 선례를 성실히 계승하고 있으며, 주제적 측면에서는 현대인의 심리적 위기와 자아분열에 관한 경고를 보내는 <다니엘 이즌 리얼>은 섬뜩하지만 결코 외면하기 힘든 속삭임을 들려주는 영화다. 공교롭게도 루크를 파괴하는 악의 존재 다니엘과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속 천사 다니엘의 이름이 같다는 점을 들며 이야기를 맺고 싶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연민했기에 불멸을 버리고 인간이 되기로 택하는 아름다운 천사 다니엘. 영화 역사에서 선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존재의 이름을 따 현대인의 붕괴를 상징하는 악의 존재에 붙인 모티머 감독의 선택은,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서늘해서 차라리 변태 감독의 지독한 농담이라고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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